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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21세기 색채의 시대- ③산업으로서의 색
[테마] 21세기 색채의 시대- ③산업으로서의 색
  • 교수신문
  • 승인 2001.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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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3 10:43:53
한동수/한국색채연구소장

1800년대만 해도 색을 표현할 때 ‘미켈란젤로가 그린 어느 그림에 나오는 여자의 치마 색깔’이라고 대충 설명했지만 1900년대 대량 생산시대가 열리면서 색채를 정량적인 기호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기호만으로도 색채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것이다. 밝기와 혼합율을 계량화하여 전화나 문서만으로도 색채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의 경우 색채의 언어화 작업을 마무리해서 교육과 산업의 현장에서 적용시키고, 그로 인해 자국의 제품들이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데 이바지 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색채가 산업을 지배한다”

요즘 “고감성시대”라는 단어는 이제 새롭지 않다. 또한 상품 구입의 세계적인 추세가 감성의 만족도에 두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다가왔다. 한국색채연구소가 5회에 걸쳐 전국 1천 2백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민 색채의식 조사’에서는 설문자의 47%가 물건을 고를 때 우선적으로 “색채”를 고려하고 있다는 결과를 볼 수 있다.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일수록 색채를 상품의 구매기준 1순위로 두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는 강남의 한 특정지역에서 많은 아이들이 외국산 도시락만을 산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능과 내구성이 아니라 바로 ‘예쁜 색깔’이기 때문이다. 예쁘고 고급스런 색의 요소만으로도 상품의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색채가 산업을 지배한다”, “색채로 세계를 석권한 베네통”, “기업 색채로 승부한다” 등 색채산업과 관련된 기사 또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최근 모 대기업의 중역과 얘기를 나누던 중 해외에 수출할 때 기술은 충분히 경쟁할 수 있지만, 색채에서는 너무 큰 벽을 느낀다고 자탄하는 말을 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색채는 문화의 한 단면이고, 색채문화란 하루아침에 색깔을 고르는 테크닉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투자와 교육만이 이를 생성해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민족의 지표를 ‘전 국민의 미적 감성교육’으로 정하고 “만일 지금 우리가 이것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게르만 민족은 앞으로 전혀 기대할게 없다”고 했다. 독일 문화정책의 성공은 지금의 독일을 통해 알 수 있다. 독일 어디든 한 사람의 코디네이터가 설계한 것처럼 색채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전 국민의 색채감성이 평준화되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반세기나 1세기 전부터 색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색채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제품의 소비 경향, 소비 계층의 선호색, 수출국 국민들의 색채 선호경향 등 산업과 관련된 색채 부분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데이터가 축적되어왔다. 제품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생산·판매에 이르기까지 색채가 관건이 되는 ‘컬러마케팅’이 오래 전부터 정착돼 세계의 오지까지 누비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야 그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새삼스러워하고 있는 형편이다. 산업의 색채란 단순히 제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 벽마다 아우성치고 있는 ‘슈퍼그래픽’, 저마다 튀지 못해 안달인 간판들. 아름다운 해변가에 난립한 어지러운 천막들.
2001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정한 관광공사는, 관광 한국을 키우는 지름길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경관, 시설물, 하다못해 휴지통이나 벤치까지 고려된 ‘아름다운 환경’ 조성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일까.

‘기호화’가 색채산업의 관건

색채의 중요성을 인식한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 특위’같은 기구를 만들어 색채의 선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산업 구조는 몇 개 기업의 관심만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전체의 산업, 전체의 기업, 그리고 모든 국민의 색채의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이웃 나라인 일본만 해도, 문제가 생기면 당장 교육제도를 바꾸고(입시제도가 아닌) 산업의 각 분야에서 사용될 ‘색채 표준’을 만들어 공급해 주는 기관들이 있어 색채의 국제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섬유만 하더라도 면사의 표준색, 실크의 표준색, 나일론의 표준색, 폴리에스터의 표준색들을 매년 혹은 격년으로 섬유 진흥회에서 공급해주고 있다. 외국에서 주문해 오는 한가지 색상을 수없이 반복 보정해 바이어가 OK해야 비로소 생산에 들어가는 소모적인 노동집약의 우리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현상이다. 색채가 관리되지 않는 중소기업에서는 기능성 위주의 제품을 생산해 오고 있으며, 색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제품들이 적어도 70%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기에 일부 대기업의 제품을 제외하고는 조악한 색채의 제품이 생산되어 싼값에 팔리고 있는 것이다.
색채의 개선만으로도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이를 뼘으로 재는 것과 같은 ‘원시적 불편함’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색채산업 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모든 산업과 교육·문화에 필요한 색채의 자(尺)를 대량 보급하는 것이다. 색채의 기호화가 색채산업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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