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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론
목소리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론
  • 전솔비
  • 승인 2022.08.16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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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전솔비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논문의 원형은 편지였다는 사실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연구는 혼자 책을 보고 글을 쓸 때조차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최근 내가 쓴 글들 속에 예술가들과의 대화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관점으로 내 이론의 난점을 질문하고, 덜 익은 문제의식을 비판하거나, 자신의 창작물에서 유사한 문제의식이 있었음을 알려주며, 문자로 발현된 사유가 사운드나 이미지로 어떻게 변형 가능한지 감각하게 한다. 이들과의 대화는 보통 내가 기획하거나 의뢰받은 프로젝트의 사전 리서치 과정에서 일어나거나 예술가와 활동가, 연구자가 협업하는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연구자의 자리에서 발신되는 언어가 예술가들의 작업에 어떤 식으로 수신되는지, 참조되는지, 반영되는지 감각하고, 그로 인해 나에게 일어난 사유의 변화를 이론적 학술적 글쓰기로 다시 가져오는 순환을 연구 주제이자 연구 방법론으로 여기고 있다. 진득하게 앉아서 글을 써도 모자랄 시간을 쪼개어 여러 예술가를 만나고 학교 바깥에서 공동작업, 프로젝트, 워크숍, 토크 등을 이어가는 이유이다. 연구자의 자리에서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한창 과거의 아카이브를 파고들어 논문을 쓰던 2019년 즈음이었다. 충분히 의미화되지 않은 과거의 사례를 현재에 길어오며 어떻게 재위치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기에 나는 제주에 도착한 예멘 난민 이슈를 접했다. 그것은 새삼 한국 사회에서 투명하게 드러나는 타자에 대한 배타성, 한국 사회 깊숙이 내재한 인종주의를 목격하게 해준 사건이었다. 과거를 어떻게 참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구체화해줄 시의적절한 현장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는 아디(ADI)는 공개되지 않는 자료를 개방해주고 문제의식을 나눠준 고마운 단체이다. 아디는 2017년 미얀마 군정부로부터 로힝야 대학살사건이 발생한 이후, 심각한 인권 유린 실태 파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위해 인권 기록을 진행해왔고 그 과정에서 로힝야 난민 여성들이 대학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심리사회 지원을 수년간 진행하고 있다. 우리(아디의 활동가, 예술가, 연구자 혹은 기획자로서의 나)는 ‘목소리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론’이라는 제목으로 단체가 난민캠프에서 수집한 자료와 프로젝트 보고서에 담긴 난민 여성의 이야기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지 탐구했다. 시각적인 것으로 재현하거나 자료를 단순히 외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자료들을 마주했고 ‘보는 것’의 무력함을 느꼈지만, 방향을 틀어 ‘듣는 문제’에 집중하고, 먼 현장으로부터 어떤 말과 글, 기억들이 오고 있는지 그것의 경로와 매체성을 탐구했다. 현재는 아디가 보유한 캠프의 자료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대중적, 학술적, 예술적 글쓰기로 각각 변환하는 과정에 있다. 

4년 남짓의 시간 동안 난민 단체를 포함해 여러 소수자 운동 단체들과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들과 만나며 많은 말을 했고 그것보다 적은 글을 썼다. 주로 난민 인권 운동을 하는 단체들과 협업을 했지만 난민 문제는 이주민, 노동, 장애, 퀴어, 여성 운동과 많은 부분 의제가 겹쳐 있었고 무엇보다 동시에 여러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이 많았다. ‘난민’에 대한 연구와 활동을 하며 나는 강정과 홍콩, 대만,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을 알게 되었고 청량리, 청계천, 노량진, 소성리, 동두천, 군산, 월성, 고리, 진도 등등 수많은 현장 위에 어떤 목소리들이 존재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동시대 소수자 운동이라는 생각보다 넓고 복잡한 현장의 연결을 감각하며 협업과 갈등, 당사자성과 작업의 소재화, 대상성에 대한 비난과 지나친 윤리 의식들이 어떤 작업들을 만들어내고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지 ‘수행성’이라는 키워드로 연구 주제를 세공하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단체의 활동가들은 가장 현장을 잘 알고 있지만 많은 자료를 어떻게 공유 가능한 자료로 변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고, 예술가들은 말할 수 없는 것, 글로 쓸 수 없는 것을 다른 감각으로 재현하길 시도하지만 자신의 작업이 갖는 윤리성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고민한다. 연구자는 흩어지고 분열된 정보들을 통합하고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때로는 자료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의 불완전성이 협업의 이유이자, 예술의 표현/재현과 학계의 지식/이론, 그리고 현장의 운동/실천이 상호작용하는 동력이 될 거라고 믿는다. 

 

전솔비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문화연구자 스튜어트 홀의 예술적 실천에 관한 석사 논문을 썼으며, 협업의 대상으로서의 예술, 방법론으로서의 예술을 연구 주제로 이어가고 있다. 동시대 소수자 운동에서 생산되는 이미지 텍스트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탐구하며 시각문화 연구와 기획 활동을 한다. 최근 함께 쓴 책으로는 『난민, 난민화되는 삶』, 『생명연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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