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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에 대한 인식 오류는 본능”…진실은 데이터·자기 의심에 있다
“사실에 대한 인식 오류는 본능”…진실은 데이터·자기 의심에 있다
  • 김선진
  • 승인 2022.08.19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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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팩트풀니스』 | 한스 로슬링 외 2인 지음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474쪽

사실보다 감정·신념을 더 신뢰하는 시대
사실 충실성과 반대 사실의 데이터 필요

인간의 합리성을 인정하는 근거 중 하나는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려면 일단 우리의 감각기관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보고 들은 것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투명한 유리잔에 물이 담겨있고 거기 젓가락이 담겨 있다. 젓가락은 곧은가, 굽어 있나? 보이는 대로만 얘기한다면 그 젓가락은 분명 굽어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직접 본 것이므로 젓가락은 굽은 것이라고 얘기한다면 이게 사실이라 말할 수 있는가?

 

빛은 매질에 따라 굴절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본 대로 굽은 것을 사실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사실은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감각기관->인식->판단’ 의 여러 단계를 거쳐 처리되는데 단계마다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늘 상존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잘못된 사실을 사실로 믿었던 대표적인 예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믿었던 천동설이다. 잘못된 믿음은 무려 1400여년 동안이나 계속됐는데 이 역시 직관적 경험을 사실로 믿었던 탓이다.

요즘처럼 ‘사실’ 자체가 의심받는 시대가 있을까. 가짜 뉴스가 버젓이 사실인 양 SNS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고, 지금 시대를 심지어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신념을 더 신뢰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에 대한 의심은 팩트 체크같은 불필요한 확인을 요구하고 사회적 갈등과 의견 양극화를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연 인간은 이러한 왜곡과 편견, 거짓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제시해 줄 만한 책을 찾다가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factfulness)』를 떠올렸다. 의사이자 뛰어난 통계학자인 저자는 사전에도 없는 ‘factfulness’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사실에 충실한 태도가 우리의 왜곡된 삶을 바로잡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다. ‘팩스풀니스’는 말 그대로 ‘사실 충실성’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풀어서 설명하자면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와 관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실은 절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실은 의견과 뒤섞여 특정 관점으로 굴절된 사실로 왜곡되기 십상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의 사실에 대한 인식 오류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진 본능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특성은 또한 어떤 의미에선 진화생물학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축적돼 인간의 뼈속 깊이 내재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인간의 본능적 요소로 저자는 무려 열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려는 간극 본능,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집중하는 부정 본능, 세상의 흐름이 직선으로 바뀔 거라는 직선 본능, 극적이고 무서운 뉴스에 끌리는 공포 본능, 큰 수 하나에만 집중하게 되는 크기 본능,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에 빠지게 되는 일반화 본능, 특정 집단의 운명은 정해진 거라고 여기는 운명 본능, 하나의 각도에서만 문제를 보게 되는 단일 관점 본능,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개인을 비난함으로써 찾고싶어 하는 비난 본능,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다고 생각해 서두르게 하는 다급한 본능 등이다.

 

세상에 대한 이해는 고착화

이렇듯 우리 인간들에겐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쉬워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이 제공하는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한 가지 사실을 의심의 여지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데이터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세계의 소득, 보건, 교육 분야의 데이터 분석을 천착해 온 통계학자로서 저자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다른 다양한 실제 데이터를 보여줌으로써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고착화돼 있고 왜곡돼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 가지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세상은 우리 편견과 달리 나아지고 있다는 저자의 낙관적 견해조차 얼마나 사실에 충실했는가 하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데이터를 통해 신뢰를 담보할 수 있지만 데이터도 결코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사실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사실에 대한 데이터뿐 아니라 반대 사실에 대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데이터 역시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관점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의 책은 기정사실로 확인된 세계적 소득 양극화와 불균형 문제에 대해서는 관련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고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소득이 높아지면 사회와 상관없이 보건, 교육 문제가 개선된다고 보는 경제결정론적 시각은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라 지적받을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미덕은 ‘사실 중심 사고(fact based thinking)’의 중요성과 사실은 데이터로 말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사실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습관적 본성을 거슬러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조차 의심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김선진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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