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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위 사건’이 드러내는 사이버 민족주의…이념을 시각화해 놀다
‘쯔위 사건’이 드러내는 사이버 민족주의…이념을 시각화해 놀다
  • 임대근
  • 승인 2022.08.18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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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아이돌이 된 국가: 중국의 인터넷문화와 팬덤민족주의』 류하이룽 지음 | 김태연 외 2인 옮김 | 갈무리 | 320쪽

20세기 유물인 민족주의는 사이버·팬덤으로 부활
동시대 중국의 민족주의를 8가지로 이해·분석하다

커피 전문점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메뉴판을 바라보다 책장을 넘겨보다 스치는 생각의 꼬리를 붙잡았다. 아메리카노에서 화이트 초콜릿 모카를 거쳐 디카페인 바닐라 카페라테에 이르는 긴 여정을 보고 있자니, 이들을 모두 ‘커피’라고는 부를 수 있되, 그저 ‘커피’라고만 불러서는 안 되는 명명의 이중성이 두드러진다.

‘커피’라는 말에 ‘민족주의’를 대입해 보았다. 류하이룽이 중국 연구자들을 불러모아 편집한 책의 핵심어는 민족주의다. 이들의 연구는 동시대 중국의 민족주의를 그저 그렇게만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민족주의의 수식어가 다종다양하게 분기하면서 만들어내는 긴 이름들이 등장한다. 민족주의이되, 민족주의라고만 불러서는 안 되는 명명의 이중성!

팬덤 민족주의, 사이버 민족주의, 중국 민족주의, 관 주도 민족주의, 대중 민족주의, 소비자 민족주의, 온라인 민족주의, 인터넷 민족주의, 인터넷 중심 대중 민족주의, 신세대 민족주의, 박식한 민족주의, 이미지 중심 민족주의, 시각적 민족주의… 책을 다시 훑으면서 찾아낸 민족주의의 장르들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민족주의’라는 포괄적 용어만 다룰 수는 없게 되었다.

 

 

민족주의의 장르들

민족주의라고 하면 베네딕트 앤더슨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리훙메이가 「중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이해」(2장)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민족, 민족국가, 민족주의는 물론 구별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앤더슨이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일갈한 순간, 민족주의 또한 허구적 개념으로 전락하는 위기를 맞이한 것은 분명하다. 앤더슨의 이론이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흘렀고, 민족주의는 20세기의 유물로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 책의 증명처럼, 오늘의 세기에도 민족주의는 여전히 활황이다. 책은 중국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이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세계인은 민족을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 이념이자 개념으로 간주한다. 이론의 오류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이론과 현실의 낙차에 따른 지체 현상일까?

 

대한민국 걸 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 2016년 소위 쯔위 사건으로 인해 큰 내홍을 겪었다. 사진=위키백과

민족주의의 다양한 메뉴 가운데 이 책의 ‘시그니처’는 사이버 민족주의와 팬덤 민족주의다. 책은 2016년 1월 일어난 ‘쯔위 사건’(쯔위가 한국 예능프로그램 유튜브에서 청천백일기를 흔든 사건)에서 시작한다. 뒤이어 대만 총통 선거에서 쯔위를 지지했던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이 승리하자,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 커뮤니티 ‘디바’(帝吧)의 멤버들이 차이잉원과 대만 언론과 SNS에 이른바 ‘출정’을 감행하여 수많은 댓글을 올린 사건을 다룬다.

류하이룽 중국 런민대학 교수는 ‘디바 출정’에 관한 8편의 글을 모았다.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은 한국어판 서문과 옮긴이 서문에 자세히 실려 있다. 양궈빈의 「21세기 중국에서 사이버 민족주의의 수행: 디바 출정의 사례」(1장)도 ‘디바 출정’에 관한 전후 사정을 소개한다. 그는 이것이 ‘유희적인 정치적 스타일’로 주류화된 까닭을 ‘문화적 기술’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또 이 사례가 보여준 “언어와 이미지는 과거 제국 특유의 담론의 흔적을 감추지 못했다”(47쪽)고 비판한다.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중국 청년 세대가 중심이 된 사이버 공간에서의 민족주의는 ‘유희’의 형식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진지한 이념을 놀이로 전화하는 방식으로 대중적 전유를 실천한다. 왕저의 「“오늘 밤 우리는 모두 디바 멤버들이다”: 온라인상에서의 감상적이고 유희적인 행동으로서의 사이버 민족주의」(4장)는 양적 분석 방법론을 원용하여 그 유희를 분석한다.

유희의 주체는 인터넷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중국 청년 세대다. 우징 등의 「팬에서 ‘소분홍’으로: 뉴미디어 상업 문화 속에서 국가 정체성의 생산과 동원 메커니즘」(3장)은 심층 면접 방법을 활용하여 미디어의 변화, 상업 문화의 성행 등의 환경적 조건이 국가 정체성을 생산하고 민족주의라는 이념으로 중국의 청년 세대를 통합하는 상호작용에 관해 설명한다. 

유희의 도구는 시각화다. 궈샤오안·양사오팅의 「사이버 민족주의 운동에서의 밈 커뮤니케이션과 합의 동원」(5장)은 ‘디바 출정’의 사례에 나타난 이미지의 시각화를 밈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들의 밈이 ‘교육과 훈계’, ‘풍자와 아이러니’, ‘공격과 위협’ 등의 의미를 생산해내는 과정과 기술, 조직 등을 밝힌다.

이념의 유희화와 시각화가 사회적 상호작용인 ‘집합행동’의 양상을 보인다고 분석하는 글도 있다. 류궈창은 「집합행동: 사이버 공간에서의 상호작용 의례」(6장)를 통해 사회학자들의 이론틀을 가져와 ‘디바 출정’의 사례를 통해 ‘집합행동의 정체성 의식’과 ‘담론’을 분석한다.

사이버 민족주의와 팬덤 민족주의라는 용어와 개념은 ‘민족주의’로부터 분기된 것이다. 리훙메이의 「중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이해」(2장)는 ‘디바 출정’을 입구로 삼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펼쳐진 중국의 민족주의를 역사적으로 다룬다. 20세기 초 근대와 더불어 등장한 민족주의 이념은 식민주의/제국주의의 침략 담론과 현실에 맞선 탈식민주의/국민국가주의의 대항 담론이자 실천이었다.

 

탈식민 시대에도 민족주의 만개

20세기 후반 탈식민과 국민국가가 세계 곳곳에서 ‘제도’적으로 구현되었음에도 민족주의의 이념은 더욱 만개했다. 그것은 국민국가의 형성과 안정이라는 세계사적 과제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를 구분하는 기준으로서 국민국가라는 틀과 경계가 힘세게 살아있는 것이다. 이는 탈식민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강력한 국민국가의 형성을 통해서만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의 반증이다. 제국의 본산이었던 곳에서 국민국가의 경계를 느슨하게 설정하려는 유럽연합과 같은 노력이 세기의 전환과 더불어 시작됐다. 그러나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또 다른 국가들은 국민국가라는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민족주의를 더욱 강력한 담론으로 추구하려는 경향을 드러낸다.

민족주의는 탄생 이래로 언제나 미디어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어 왔다. 저우쿠이·먀오웨이산이 「비주얼 액티비즘의 경합: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본 중국의 사이버 민족주의」(7장)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엘리트들은 민족주의를 도구로 삼아 대중을 선동하고, 국가의 독립을 쟁취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공공 의제를 설정”(225쪽)해 왔는데, 그 과정은 모두 신문, 잡지, 방송 등의 레거시 미디어에 의해서 매개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민족주의가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 뉴미디어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재매개화하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사이버 공간을 파고든 민족주의는 하위문화, 능동적 수용자, 팬덤과 결합하면서 국가를 아이돌로 삼고, 대중을 팬덤으로 만들면서 시각적 유희 속으로 빠져들었다. 류하이룽의 「네 아이돌을 사랑하듯 네 나라를 사랑하라: 뉴미디어와 팬덤 민족주의의 등장」(8장)은 각각 중국에서의 사이버 민족주의와 팬덤 민족주의에 관해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책의 결론을 대신한다.

그러므로 ‘디바 출정’을 통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다종다양한 민족주의에 대한 검토는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 문화연구, 미디어연구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탐구되어야 한다. ‘디바 출정’은 중국의 사례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쯔위 사건’을 제3자의 태도로 소비한 한국 대중에게 ‘디바 출정’은 낯선 현상이다. 한국의 연구자들은 이에 관해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바로 여기에서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야만 하는 정당성이 확보된다. 이 책이 다루는 이야기는 우리와 무관한 어떤 일이 아니다. 우리가 놓쳤던 ‘쯔위 사건’에 대한 복기,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동시대 중국,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민족주의라는 열망에 대한 거울,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 관한 시사점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임대근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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