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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學 ‘재산권’ 첫 인정…대법원 판례와 상치
私學 ‘재산권’ 첫 인정…대법원 판례와 상치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6.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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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분석] ‘임시이사 권한 축소’ 서울고법판결 어떻게 봐야 하나

지난 2월 14일 서울고등법원 제5민사부의 상지학원 관련 항소심 판결이 논란을 빚고 있다.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달리 임기 만료된 이사에게 訴를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고, 정이사 선임 등 임시이사의 권한을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같은 판결의 이유로 사학법인의 설립자의 ‘재산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말 사학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사립학교법을 개정한 것과는 배치되는 판결이어서 더욱 논란이 일고 있다.

상지학원 구성원단체 대표자들은 “임기 만료된 이사의 재판권을 부인하고, 임시이사의 권한은 정이사와 동등하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부정한데 이어 부패·분규사학을 법률적으로 옹호해 사학 민주화에 역행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사학법 재개정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상지학원에만 국한된 문제”라며 “상지학원이 구재단과 협의하지 못한 이유는 김문기씨가 상지학원 설립자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사립학교법 개정 취지 상치
이번 서울고법 판결은 최근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대한 시행령 마련과 ‘재개정’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의미도 큰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임시이사 권한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첫 판결로 법리적 문제 측면에서도 주목되는 판결이다.

우선, 사학 공공성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둔 사립학교법 개정 취지에 전면 배치되는 판결이다. 개정 사립학교법은 임시이사 선임 요건과 학교 정상화 방안까지 구체화하고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해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번 서울고법 판결은 사학법인의 ‘재산 소유권’을 인정했다. 사학법인은 설립자의 재산이라고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임시이사들이 종전 이사들을 배제한 채 정이사를 선임함으로써 학교법인의 지배구조를 변경시켜 ‘사학의 공립화·사회화’를 초래하는 것은 학교법인의 경영권과 인사권 등 자율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사유재산을 출연할 당시 설립자와 국가가 맺은 신의와 계약을 부당하게 파기하는 것이며, 이는 한편으로 보상이 없는 재산권의 수용에 해당하여 헌법상의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사학비리·구조적 문제 어떻게 해결하나”
그동안 법제도와 관리실태를 살펴보면, 사립학교는 사회의 ‘공공 시설’로 보고, 공공성측면을 강조해 왔다. 사학의 공공성을 고려한다면 임시이사의 권한이 커질 것이고, 사학의 재산권을 고려한다면 임시이사의 권한이 축소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임시이사 체제를 종료할 때에는 적어도 임시이사 선임 직전의 이사들과 협의하는 등으로 그들에게 실질적인 이사회 구성권한을 부여하여 학교법인의 경영권을 환원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밝혔다.

서울고법의 판결대로 임시이사의 권한이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면, 학교 정상화를 위해 파견된 임시이사가 ‘임시이사 선임사유가 해소될때까지 노력한다’는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고, 의욕 상실로 이어질수도 있다. 결국, 사학의 구조적 비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방법이 없다. 임시이사가 파견돼도 일정기간이 지나 학교 정상화가 이뤄지면 구재단측에게 다시 학교를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대 임시이사를 맡고 있는 주보돈 경북대 교수(사학과)는 “이번 판결은 교육법을 완전히 무시한 판결로 법원이 대학의 실제 운영을 너무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사학비리는 설립자나 이사장이 사학을 자기 ‘재산’으로 보는 것이 근본원인인데 사학의 재산권을 인정한 판결은 분명히 잘못이며 사학비리를 방조하는 꼴”이라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과)는 “사립학교를 사회의 공공시설로 보느냐, 개인의 재산으로 보느냐로 나눌 수 있다”면서 “이 판결은 사학을 개인의 재산으로 보고 민법의 ‘비영리 법인’으로 규정했다”라고 분석했다. 한 교수는 또 “모든 법인이 민법의 적용을 받는 것은 아니고, 특별한 규정을 받기도 하는데 재판부가 무시한것인지 간과한 것인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사학 임시이사 ‘민법’준용?
이번 판결에서는 임시이사의 권한을 규정하는데 민법상 법인의 직무대행자 권한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고측은 항소심에서 “임시이사는 민법상의 법인의 직무대행자와 마찬가지로 통상적인 사무에 속하는 행위만을 할 수 있을뿐 학교법인의 기본조직이나 중요한 업무를 변경, 결정할 권한이 없어 이사를 선임하는 등의 행위는 그 권한에 속하지 아니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민법을 준용한 사례는 지난해 광운대 임시이사 선임과 관련한 서울고법 판결에서도 나타났는데 당시 재판부는 임기 만료된 임시이사를 법원이 선임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사학법인에 ‘민법’을 적용시킬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번 고법 판결이 예외적으로 대법원 판례에에 배치되는 판결이라는 점이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뒤집는 판결로 볼것인지, 아니면 기존 판례와는 다른 별개의 판결로 볼 것인지도 관심사다.

박병섭 상지대 교수(법학과)는 “고법이 ‘임시이사의 권한은 정이사와 동일하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면서도 법인의 통상적 사무에 해당된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면서 “고법은 기문기씨가 설립자나 그 지위 승계자로서는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종전 이사’라는 새 개념을 도입해 이해관계를 따져 訴를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판결해 무리한 법적 논리 구조를 동원했다”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학교를 ‘사유 재산’으로 보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결론을 정해놓고 법논리를 전개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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