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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고종시대사’,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가 알던 ‘고종시대사’, 전부가 아니었다
  • 김재호
  • 승인 2022.08.15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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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 조선총독부 역사편찬 실체 밝혀내
김종준 청주교대 교수, 식민사학론 답습 넘어 역사인식 강조

“우리 역사의 공과는 일제가 아니라 우리가 ‘엄정한 사료비판’을 토대로 밝혀내야 한다.” 최근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 을 집필한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지식융합학부․사진 왼쪽)는 지난 9일, <교수신문>과 서면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서 교수는 일제가 편찬한 『조선사대계 최근세편』, 『조선사』 (제6편 제4권), 『고종순종실록』 등이 사료를 편향적으로 활용해 병합의 당위성을 증명하고자 했음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일제는 의도적으로 사료의 일부만으로 고종시대사를 편찬했다. 병합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왼쪽)는 식민사학이 실증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종준 청주교대 교수는 의도적 왜곡을 추동한 역사인식의 본질을 파헤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사회평론아카데미

이번 서 교수의 연구에 대해 김종준 청주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는 연구사적 가치를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기존의 ‘식민사학론’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서면인터뷰에서 “‘근대적 실증’을 가장한 식민사학의 왜곡된 역사상, 즉 병합 정당화의 논리, 대한제국에 대한 부정적 평가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라며 “다만, 그렇게 ‘의도적 왜곡’을 추동한 역사인식(한마디로 국가에 해로운 일은 말하지 말라)의 본질을 파헤치지 않으면, 우리 역사학 역시 동일한 잘못(‘사실’에 입각한 것이고, 국가를 위해 ‘선별’한 것이니까 문제없다)을 범할 수 있다”라고 반문했다. 특히 김 교수는 한국 역사학의 ‘파시즘의 잔재’를 성찰하자며, 대척점에 있는 “자유주의적·개인주의적 역사인식으로 우리 역사를 돌아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기존의 식민사학 비판은 고대사(일선동조론, 임나일본부설 등), 중세사(정체성론, 당파성론, 타율성론 등)에 집중했고, 식민사학의 고종시대사 인식에 대한 비판은 본격적으로 이뤄진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 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학계가 오랫동안 망국책임론의 프레임에서 고종시대사를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식민사학의 근대사 서술이 학술적인 것은 다보하시 기요시(경성제대 교수)가 유일하고, 『고종순종실록』의 실체를 전공연구자들마저도 잘 알지 못한 채 식민사학이라는 자각 없이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식민사학의 ‘침략성’을 새삼 증명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라며 “근래 ‘식민주의 역사학’의 개념을 주장하는 일부 연구자들이 식민사학을 ‘근대’ 역사학으로 보면서 ‘실증’주의적 방법론 운운하는 것에 대해 적어도 고종시대사 편찬에서는 전혀 그렇게 평가할 수 없다고, 관련 자료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반박했다.

*** 아래는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 김종준 청주교대 교수와의 서면인터뷰 전문이다.

>>>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 서면인터뷰 질문과 답.

△‘근대적인 형식의 고종시대사 사료집’ 편찬은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 할 수 있는가.

현재 개항이후부터 대한제국기에 생산된 정부공문서들을 자료로 고종실록, 순종실록을 새로 편찬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 대한제국에서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공화제)로 넘어가는 우리 역사의 공과(功過)를 일제가 아닌 우리 손으로 ‘엄정한 사료비판’을 토대로 새로이 편찬해야 한다는 취지로 학계의 중지를 모으고 있습니다(새 사료집이 자주적 근대화의 모습만 부각시킬 것이라는 것은 김종준 교수의 기우에 불과합니다). 1894~1896년 과도기 이후 수립된 대한제국기(1897~1910)는 조선왕조를 끝내고 새롭게 근대적 주권국가를 지향한 시기이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왕조의 역사’가 아닌 근대적 형식의 시대사 자료집을 편찬할 계획입니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근대화 사업 관련 뿐 아니라 각종 외교사료, 지방사료, 일제의 국권침탈 과정을 보여주는 통감부 생산 문서들까지 모두 사료 선별의 대상이고(『규장각소장고종시대공문서시개정목록』상,하 3193쪽;8,349종 23,616책 참고), 이 시기 전공연구자들이 각 분야를 분담하여 현재까지 학계의 연구성과를 모두 반영한 사료 편찬이 될 것입니다.            

△김종준 교수의 “기존의 ‘식민사학론’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라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는가.

기존의 식민사학 비판은 고대사(일선동조론, 임나일본부설 등), 중세사(정체성론, 당파성론, 타율성론 등)에 집중하였고, 식민사학의 고종시대사 인식에 대한 비판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한국학계가 오랫동안 망국책임론의 프레임에서 고종시대사를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식민사학의 근대사 서술이 학술적인 것은 다보하시가 유일하고(그 마저도 실증주의 역사학의 대가라고 ‘추앙’받아왔고), 고종순종실록의 실체를 전공연구자들마저도 잘 알지 못한 채 식민사학이라는 자각 없이 활용해왔기 때문입니다(연구자들마저 관성적으로 고종실록을 전통적인 조선왕조실록처럼 기초사료로 활용해왔고, 일반국민들은 고종실록 번역본을 보고 영화나 드라마, 소설과 같은 역사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2000년대 이후 학계의 대한제국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그 성과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고 있음).
제 책은 식민사학의 ‘침략성’을 새삼 증명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근래 ‘식민주의역사학’의 개념을 주장하는 일부 연구자들이 식민사학을 ‘근대’ 역사학으로 보면서 ‘실증’주의적 방법론 운운하는 것에 대해, 일본 근대 사학사에서는 식민사학자들이 그런 위치에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고종시대사 편찬(오다 쇼고, 조선사대계 최근세편,1927; 다보하시 기요시 편, 조선사 제6편 제4권; 오다 쇼고 감수, 고종순종실록 등)에서는 전혀 그렇게 평가할 수 없다고, 관련 자료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식민사학의 근대사 서술, 고종시대사 편찬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기존의 ‘식민사학론’에서 거의 언급된 적이 없었기에, 기존의 ‘식민사학론’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는 김종준 교수의 평가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김종준 교수가 지적한 “식민사학 편찬 조직의 변모 과정에 조선인들의 참여가 늘어난다는 점에 주목했는데, ‘친일 인사, 친일파 귀족, 친일 단체’ 같은 선험적 역사인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이들 활동의 자율성을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내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은 친일단체 일진회를 근대 ‘민권’운동단체로 보는 김종준 교수의 관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식민사학의 가장 토대가 되는 사료수집 및 탈초, 번역을 수행한 “학식과 명망있는” 조선의 전통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해 조선사편수회의 실무 책임자인 나카무라 히데타카 등이 ‘최고의 상찬과 고마움’을 표하고 있는데, 그러한 친일적 협력 활동에서 어떤 “자율성”을 찾아야할지. 일제가 조선 귀족과 지식인들이 포진한 중추원을 구관조사 및 역사사료 수집 업무에 활용한 것을 대만, 만주 식민지 경영과 비교되는 조선통치 방침의 특성으로 조명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기존의 ‘식민주의역사학’ 논자들이 학자적 양심, 학문적 자율성 운운한 것은 일본인 관학자=식민사학자들이 총독부 방침에 맞서(?)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을 지켰다(?)(고대사 전공자인 이마니시 류가 일선동조론은 학문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한 것 등)고 한 것이지, 식민사학에 협조한 ‘조선인’들에게서 어떤 자율성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그밖에 김종준교수가 민족사학, 식민사학을 비판해온 한국사학에 대해 파시즘의 잔재 운운한 것에 대해 전혀 납득할 수 없습니다.         

>>> 김종준 청주교대 교수 서면인터뷰 질문과 답.

△서영희 교수의 원고를 읽고 덧붙이고 싶은 의견이 있다면.

일단 서영희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책의 핵심 요지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바, ‘근대적 실증’을 가장한 식민사학의 왜곡된 역사상(병합 정당화의 논리, 대한제국에 대한 부정적 평가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저의 우려는, 그렇게 ‘의도적 왜곡’을 추동한 역사인식(한마디로 국가에 해로운 일은 말하지 말라)의 본질을 파헤치지 않으면, 우리 역사학 역시 동일한 잘못(‘사실’에 입각한 것이고, 국가를 위해 ‘선별’한 것이니까 문제없다!)을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역사학에서 ‘파시즘의 잔재’를 더 엄정하게 규명해야 한다”라고 했는데, 원고에서 적으신 것들 이외에 예를 들면 무엇이 있는가.

저는 근래 한국 근현대의 파시즘적 역사인식이란 책의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저는 ‘파시즘적 역사인식’을,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민족(국가)이라는 전체를 내세우며 고유한 전통과 역사를 소환하는 역사인식’으로 정의합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이광수, 안호상, 박정희 등이 파시즘적 역사인식을 가졌다는 데에는 대다수 학자들이 동의합니다. 그런데 저는 더 나아가 안재홍, 이병도 등의 역사학자 역시 ‘민족주의’나 ‘실증주의’ 구호 아래 파시즘적 세계관을 공유했다고 봅니다. 1970년대 문정창 이래 재야사학은 주류 한국사학자들을 식민사학자(=파시스트)라고 공격해 왔습니다. 재미있게도 주류 한국사학자들 역시 상대방을 식민사학(=파시즘 사학)의 계승자로 규정하며 선명성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파시즘적 역사인식’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적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의 주장은 ‘파시즘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것이 아니라 ‘성찰’해 보자는 것입니다. 어차피 그로부터 자유로운 역사학자가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인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짐작하시겠지만 우리 학계와 사회에서 파시스트라는 딱지는 매우 무섭습니다. ‘친일파’나 ‘빨갱이’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낙인효과가 있기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죠. 그래서 해방 이후 ‘파시즘’ 대신 널리 쓰이게 된 용어가 ‘민족주의’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안호상, 박정희, 안재홍, 이병도, 문정창 등이 모두 ‘민족주의자’를 자처하고 있었죠. 그러다 보니까 역사학자들은 누가 ‘진짜’ 민족주의자인지 가려내려고 애씁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가만히 보면 그 기준이 ‘진정성’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모호한 ‘민족주의 구호의 진정성’ 대신, ‘국가 대 개인의 관계 설정’을 보자고 제안합니다. ‘국가의 우위’를 강조할수록 전체주의, 파시즘, 사회주의적 역사인식이 될 테고,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할수록 자유주의, 개인주의적 역사인식이 되겠죠. 물론 자유주의 역사인식 역시 여러 문제가 있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동일시되기도 하지만, 한국 역사학에서 과연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역사인식으로 우리 역사를 돌아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기고문에서 “사실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수사법을 전유하고 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나름 ‘근대적’인 이데올로기다."라고 적었다. 과연 ‘근대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거룩하고 신성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인식은 조선 시대 유교적 도덕주의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지금 개봉 중인 한산이라는 영화에도 ‘이 싸움은 나라 대 나라의 싸움이 아니라 의 대 불의의 싸움’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사실 근대라는 시대의 질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표현되듯 냉혹하기만 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옳고 정당한 것을 추구한다’는 믿음은 더 가치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보편성이죠. 침략자와 가해자도 나름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이나 한말 지식인들의 만주 차지 운운은 어떻게 봐야할지 난감해질 수 있습니다. 
파시즘이 ‘근대적’이냐 아니냐는 서양 학계에서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그 속에는 비서구 국가들은 ‘근대적’인 자유주의 체제를 겪지 못했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파시즘의 수준도 되지 못했고, 그냥 ‘군사 독재’에 불과하다는 비하 인식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를테면 박정희의 세계관이 ‘근대적’인지 질문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박정희의 유신 체제와 민주주의는 상극인 것처럼 여겨지죠. 그러나 당대 박정희의 언설들을 잘 살펴보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전근대 시기 왕과는 다르다는 것이죠.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 대중들까지 정치적으로 동원해야 한다고 보고, 그 방편으로 자산가나 부르주아 지식인들을 ‘자유주의·개인주의의 폐해’로 몰아붙이는 방식이죠. 대한제국 시기 고종의 정치 행태에도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성적인 개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근대성’의 핵심으로 보는데요. 파시즘도 그러한 틀 자체는 인정했다는 것이죠. 다만 속히 후진국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효율성이 필요하다면서 그 틀을 변용시키려고 한다는 점 때문에 차이를 보이게 되죠.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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