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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2] 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가
[한민의 문화등반 42] 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가
  • 한민
  • 승인 2022.08.15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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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2

 

한민 문화심리학자

오늘은 약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귀한 지면에서 개인적인 말씀을 드려 송구스럽지만 이 내용은 필자가 쓰는 글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으니 독자 여러분께서 널리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이 사람이 왜 이런 글들을 쓰는가에 대한 배경 설명이라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필자의 연구주제는 문화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와 성격, 즉 특정 문화에서 형성되는 문화 구성원들의 성격 유형인데 이것이 참으로 오해가 많은 영역이다. 일단 문화는 세상에서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 중 하나다. 문화의 정의는 문화 연구자들의 수만큼 많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저마다 생각하는 문화의 의미가 다르다보니 어떤 주장을 해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격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에서 성격은 모호하기로 이름난 주제다. 현대 심리학에서 성격은 수많은 사람들을 분류하여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용한 주제지만, 성격의 형성이나 분류 기준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견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성격의 형성과 발달을 가장 많이 설명하는 것은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 이론이지만 일반적인 심리학자들은 정신분석 이론이 비과학적이라며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모호하고 논쟁거리 많은 두 분야를 합친 ‘문화와 성격’이라는 주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예를 들어,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다르다는 주장을 할라치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이야기서부터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론, 문화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유형화해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라는 주장 등 지금까지 들어온 비판들이 일렬종대로 운동장 여러 바퀴다.

네가 뭔데 세계적인 석학들도 안 하는 얘길 하느냐는 그닥 학술적이지 않으면서도 모멸적인 이야기까지 들어가면서도 이 주제를 놓지 못하는 것은 이 주제, 문화와 성격이 분명 유용하다는 판단에서다. 사람들은 문화하면 보통 다른 나라의 문화를 떠올리기 때문에 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신기한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 이해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 이해다. 문화란 나를 둘러싼 환경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는가, 내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고, 저 사람이 저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행위양식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즉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전제에 동의한다면 특정 문화에서 특정 성격이 발달한다는 문화와 성격은 전혀 논쟁의 여지가 있을 이유가 없는 주제다. 필자의 논리는 이렇다. 문화는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여러 가지 체계들이다. 여기에는 생산수단부터 의식주, 결혼 및 가족제도로부터 이들을 유지하기 위한 가치관과 동기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가치관들은 학습과 교육을 통해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되는데 이러한 가치들은 개개인들의 생존과 사회 유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과정은 후속 세대로의 교육으로, 밥상머리에서, 교육기관에서, 또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야말로 문화적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문화마다 생존에 요구되는 가치들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물론 보편적인 구석도 있지만), 구성원들에게 권장되거나 금기시되는 행동에 차이가 생기고, 사회 분위기나 주변 인물로부터 그런 교육을 받다보면 한 문화 내에서 공통적인 행위의 유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생각, 감정표현과 행동들은 ‘배운 것’이다. 

그러니 이 문화적 행위양식, 문화적 성격을 이해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다른 문화와의 비교를 통해 서로가 중요시해온 가치들을 알 수 있고, 신기하고 이상하다고, 심지어 잘못됐다고 생각하던 행동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기와 타자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들의 원인을 찾아내고 바람직한 해결을 위한 방안도 문화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 

어떤 면으로 봐도 사회적 현상의 원인을 사회 구성원들의 수준으로 이해한다던가 사회 문제들의 대안을 외국에서만 찾는 것보다는 훨씬 유용한 접근이 아닌가 싶은데, 물론 독자님들의 견해는 다르실 수 있지만, 적어도 필자의 글의 전제만은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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