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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 스톡홀름 증후군의 역사충동
신판 스톡홀름 증후군의 역사충동
  • 백일 울산과학대
  • 승인 2006.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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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논평: (2)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평전

▲백일 /울산과학대·경제학 ©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1973년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질들이 오히려 은행털이범에게 적극 협력하는 이상 심리상태가 발생해 붙여진 이름이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을 처음 본 소감은 이게 혹시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8·15 해방이후,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일제치하를 이렇게 당당하게 미화한 예는 아마도 ‘재인식’이 최초일 것이다.


‘재인식’은 2004년 정치적으로 뉴라이트(신우익)를 표방하는 일련의 학술 흐름이 그 첫 목표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을 겨냥하면서 탄생한 책이다. 근간 논리는 좌파 민족주의 척결 등 냉전 복고풍 좌우익 분리 노선이며, 그 실제 배경은 책 머릿글이 시사하는 것처럼 ‘인식’ 자체보다는, 현실 정쟁목적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간 파란만장한 해방전후사를 관통해왔던 좌우익 편 가르기와 민족상잔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물론 필자는 이 정치파벌화의 함정에 말려들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인식’ 필진의 한 사람으로써 ‘재인식’ 측의 무리한 논리구도와 역사왜곡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경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글은 학술사적으로 ‘재인식’을 겨냥한 본격적 반격, ‘새로운 인식’ 촉구를 목표로 한다.


 ‘재인식’ 수록 논문들은 나름대로는 역사해석의 다양성 혹은 ‘인식’을 보완하는 것으로 평가되며, 대부분은 ‘재인식’ 기획이전에 발표된 것들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쟁점을 명확하게 하기위해서 개별적 성격을 제거하고 ‘인식’에 반대한다는 ‘재인식’ 편집진( 박지향 김철 김영일 이영훈)의 편집논리 준거틀로만 해석될 것이다.


‘재인식’의 기본 편집 명제는 ‘친일’과 ‘냉전’이다. 식민지기는 불공평해 보이나 문명이 융합되는 과정이고 조선사람이 근대 문명인으로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며,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주의는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이며, 자기민족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민족(일제)을 깎아내리기 때문에(박지향) 옳지 않다는 것이다. 적반하장이다. 우리 민족주의가 일본을 깎아내린 것이 아니라, 일제가 자기 민족(제국주의)을 우월하게 보고 폭력적으로 조선을 침략했고 그 대항체가 식민지 민족주의다. 기초 개념도 정리를 못하는 이러한 ‘재인식’의 민족주의관은 아마도 2년여라는 짧은 기간내에 급조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논리적 허점일 것이다.

기간단축을 위한 ‘재인식’의 해결방식은 관련주제의 외국계통 논문을 수집하는 것인데 수록논문 총 27편 중 무려 19편이 외국인 또는 해외유학파(주로 일본 미국계통)의 것들이다. 이 외국계 논문들은 그 성격상 대체로 제3의 관찰자적 시각이기 때문에 식민지 민족문제보다는, 상대적으로 주로 개인사 문화생활, 문학, 페미니즘, 즉 현대적 개념의 문화생활사 같은 곁가지가 중심주제로 격상된다. 같은 위안부 문제이더라도 주류사가 식민지 여성수탈과 만행이 초점인데 반해서, 조선인 위안소 경영, 조선인끼리의 갈등 등 다른 일면이 등장하거나, 여성 페미니즘 경향으로 다시 읽어내는 친일문학 비평이 등장하는 등 일종의 비주류사가 주종을 이룬다. 그런데 이 주종관계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재인식’의 방법론을 과연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의 ‘재인식’측 민족운동관은 ‘일제는 민족말살을 기도하지 않았고 민족과 제국은 서로 협조하며 길항하는 것’(김철)이라는 것이다. 근거로 사용되는 범례는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이다. 그러나 한 두가지 범례로 전 민족운동을 정형화하려는 과장법은 ‘재인식’에서 흔한 수법이지만 민족문제를 격하하는 근본 역사인식의 오류에 비하면 오히려 작은 문제다. 조선어학회가 한글표준화를 놓고 일제로부터 지원을 받기 때문에 ‘민족운동이 제국을 안정시키는 존재’라는 것은 일제의 언어정책이 만주사변전후 온/강 정책으로 갈라서는 역사적 배경과 민족결집의 주체적 역량 강화의 계기로서 언어통일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제를 이길 수 없는 대상이자 불변의 질서로 간주하는 종속적 역사인식은 ‘재인식’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1930년대 만주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태준<농군>이 張作霖의 만주(군벌과 일제 등 이민족간의 영토전쟁이 진행되는 불확정성 미개간지)를 강조하고, 이를 조선인의 새로운 영토로 개척하려는 적극적 주체자의 행위의식을 보이는데 반해, ‘재인식’(김철)에서는 일제와 그 협력자(조선인)를 한편으로 하고 토착민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확정된 질서(만주국)로만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것이다.


‘재인식’에서 민족운동은 이렇게 본래(?) 제국의 질서내에서 협조하는 속성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주사변이후 일제는 이와 같은 수동적 역사인식을 지닌 존재(친일파)들을 육성해서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때문에, 이 친일파문제는 동족내의 갈등, 민족분열의 기원으로 해방후사에 새롭게 등장한다. ‘재인식’의 해방후사에 대한 역사인식은 대단히 현실주의적인 것으로 새로운 지배자(미국)의 냉전정책과 절대 악의 근원으로서 소련의 동북아 정책이라는 대항관계(냉전질서)를 기본 축으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분단과 단독정부는 현실적인 선택이며,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분리주의는 자신의 기득권 질서를 상승시키는 냉전질서의 사수로 고착화 된다. 물론 냉전질서에 귀속하는 한, 전력(친일파)은 전혀 상관되지 않는다. 친일파의 대명사 이광수가 실용주의자로 합리화되고, 단정과 분리주의자 이승만이 현실주의자로 추앙되는 것은 ‘재인식’ 역사인식의 불가피한 귀결이며, 동족상잔의 전쟁비극도 미소간의 전략적 선택과 힘겨루기가 아니라 한쪽(소련)의 일방적 야심때문인 것만으로 해석된다. 


1980년대 당시 ‘인식’이 추구했던 바는 분단과 동족상잔을 힘없이 지켜보는 수동자가 아니라, 이를 적극 해결하는 주체자로서 다른 가능성은 없었는가 하는 등등의 문제 인식이었다. 미소의 냉전질서가 강화되는 과정은 해방전후사의 복합적인 좌우 갈등으로 나타났지만, 적어도 영토의 장기 분할로 귀속되지 않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 인식의 단초는 다른 쪽을 무조건 증오하는 귀머거리 장님의 좌우분열적인 사고가 아니라, 세계정세를 객관화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나아갈 바를 찾는 균형잡힌 새로운 역사인식 기반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친일파 청산, 점령군으로서 미군의 잘못된 행태 등 냉전시대 역사서술의 각종 금기를 깨는 해방전후사의 객관화가 ‘인식’의 목표로 떠오른 것은 이런 연유였다.  


발간 20여년이 흐른 지금에서 보면 ‘인식’의 역사서술은 거칠거나 모자란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는 가도 뒤로 갈 수는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인식’이 어렵게 가꾸어 놓은 역사인식 발전의 터전을 ‘재인식’이 냉전시대 좌우익의 낡은 잣대로 다시 되돌리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다쳐야 좌우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멈출까. 불과 몇 편의 논문으로 해방전후사가 다시 냉전의 암흑시대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도적이 쳐들어왔는데 싸우지 말고 안방으로 모시자고만 주장하는 사람들, 본인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스톡홀름 증후군 현상, 나는 ‘재인식’의 역사 충동을 이렇게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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