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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02] '혁명적 사회주의자' 바쿠닌의 국가 개조론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02] '혁명적 사회주의자' 바쿠닌의 국가 개조론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08.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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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닌의 국가 비판
공산주의자들은 국가 정치권력 장악을 위해 노동자들을 조직하길 원했다. 반면 아나키스트는 국가를 청산하길 원했다. 사진=위키미디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형태의 혁명적 정부 문제는 바쿠닌파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마르크스파의 '권위주의적 공산주의자' 사이의 갈등의 주요 원인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이 노동계급, 특히 부르주아 급진파와 동맹을 맺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권력의 발전을 주장한 반면, 아나키스트들은 상류층의 모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을 포함하여 도시와 시골의 노동계급의 '비정치적 또는 반정치적 사회적 권력의 발전과 조직화'를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전술의 근본적인 차이로 이어졌다. 공산주의자들은 국가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조직하길 원한 반면, 아나키스트들은 국가를 청산하기를 원했다. 전자는 권위의 원칙과 실천을 옹호한 반면 후자는 자유를 믿었다. 둘 다 똑같이 과학을 선호했지만,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을 강제로 부과하기를 원했고, 아나키스트들은 집단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조직할 수 있도록 과학을 전파하려고 했다. 바쿠닌은 “사회주의 없는 자유는 특권이자 불의이며, 자유 없는 사회주의는 노예와 야만성”이라고 주장했다. 

바쿠닌은 자유를 누림에 있어서 동등한 수단 내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사회조직을 꿈꾸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계급 구조 및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 요소란 지배계급에 의한 부와 지식, 곧 자본과 과학의 독점이다. 그리고 국가는 소유권과 상속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며, 그로부터 소외된 민중에 대한 지배력을 과학 발전의 성과에 의해 강화하므로 그러한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자본과 과학의 독점을 분쇄하는 일이 국가 타도와 직결된다.

바쿠닌은 자유를 누림에 있어서 동등한 수단 내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사회조직을 꿈꾸었다. 사진=위키미디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쿠닌은 자본 및 토지에 대한 집단적 소유, 과학과 노동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는 포괄적 교육이 필요하며, 상속권을 폐지하고 육체노동의 의무가 부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상속권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불평등이 되므로 상속권의 폐지가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모은 개인 재산의 상속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그 재산이 본질적으로 국가가 인정한, 집단적 노동에 대한 절도라고 반박했다.

 

참된 혁명 세력은 국가 제도에서 권력을 획득하려고 해선 안 돼

바쿠닌은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명령권을 가진 모든 권력에 대한 반역을 주장했다. 반항에 의해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역사는 진보한다. 반면 생산력의 확대를 통해 풍요로운 경제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나 복지국가의 후견과 관리에 몸을 맡겨 안주하는 인간은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쿠닌의 국가 비판은 종교 비판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그에 의하면 국가와 권력의 원리는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악한 인간’을 전제로 한다. 즉 국가권력이 사악한 인간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사악한 인간들로 구성되는 사회는 정글이 되어 홉스류의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낳으므로 국가는 필요하다는 주장 같이, 종교도 사악한 인간을 도덕화하기 위하여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가 권력은 필연적으로 지배-복종 관계를 초래한다고 바쿠닌은 주장한다. 

바쿠닌은 자유의 원리와 국가의 원리는 절대적으로 모순 대립한다고 보기 때문에 통합 기능과 통제권을 요구하는 모든 정치조직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배척된다. “사회주의 없는 자유는 특권이고 부정이나, 자유 없는 사회주의는 예속이고 야수성이다.” 그래서 바쿠닌은 마르크스주의를 ‘자유 없는 공산주의, ’권위주의적 공산주의‘로 탄핵했다.

바쿠닌은 참된 혁명 세력은 과거의 국가 제도라는 틀 속에서 권력을 획득하려고 해선 안된다고 했다. 사진=위키미디어

바쿠닌은 ‘국가 파괴의 절대적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제 군주국만이 아니라 민주적인 보통선거에 기초한 공화국도 부정한다. 왜냐하면 공화국은 “전 인민의 의지를 대표한다는 구실 하에 각자의 의지와 자유로운 행동을 집단적 권력으로 압박하므로 군주국보다도 더욱 전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은 “국가의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제도와 조직―교회, 의회, 법원, 행정, 군대, 은행, 대학 등을 파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국가는 근본적으로 파괴되어야 한다. 재정만이 아니라 정치, 군사, 사법 및 경찰이라는 모든 측면에서 파산선고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참된 혁명 세력은 과거의 국가 제도라는 틀 속에서 권력을 획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바쿠닌을 비롯한 아나키스트들은 현존 정치체제의 정치적 자유나 의회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에게 유해할 뿐이라는 이유에서 현존 질서의 틀 속에서 행해지는 노동자계급의 정치 행동을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는 그것이 아무리 민주적이라고 하여도 프롤레타리아에게는 필연적으로 ‘감옥’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국가의 기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면 과거에 국가가 수립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루소는 『사회계약론』 제8장에서 썼다. 실제로 플라톤에서부터 헤겔에 이르는 정치학자들은 모두 종교 신앙이 국가를 뒷받침한 정신적 지주였고, 국가 생활의 본질이 제사 공동체였음을 설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윤리적 의미에서도 국가를 절대화하여 국가를 ‘지상의 신’으로 보았다.

이를 직관적으로 파악한 바쿠닌은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반항이 반드시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 반항이어야 한다고 갈파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쿠닌의 『신과 국가』(1871)는 무신론과 아나키즘, 곧 인간의 종교적 태도와 사회적 태도의 밀접하고 불가분적인 관계를 표상한다. 바쿠닌은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 이래 헤겔까지의 모든 국가론의 종교적 정체를 폭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현대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뒤르켐이 토테미즘 연구에서 신은 사회생활의 가장 심오한 표현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에 의해서도 증명되었다. 곧 토템 신은 씨족사회의 상징으로서 신과 사회는 하나였음을 그는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1912)에서 증명했다.

 

부모에서 국가까지, 인간의 권위에 대해 노예적 복종 본능

프로이드는 모든 권력 체험은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 있다고 봤다. 사진=위키미디어

이러한 종교와 사회의 일치를 프로이트(Sigmund Freud)도 확인했다. 그는 모든 권력 체험의 모태는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곧 종교적 권위에 대한 관계도, 사회적 권위에 대한 관계도 부자 관계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았다. 유아는 자신의 유약함과 무력함을 부모의 강력함과 거대함과의 대조를 통하여 현저하게 의식하면서, 자신의 사랑 욕구를 부모에게 쏟으며, 자기보다 강력하고 두려운 부모가 자신의 것이고 자신에 속한다고 느낀다. 

부자는 수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자신을 상대의 것으로 느끼며 정서적 일체감을 공유한다. 이러한 부모에 대한 복종은 이어 교사, 선배, 상관, 정치적 및 정신적 지도자에게로 이전된다. 이를 프로이트는 『토템과 타부』(1920)에서 설명했다. 이와 같이 바쿠닌은 뒤르켐이나 프로이트에 앞서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법칙을 이미 발견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지배자에 대한 복종 충동은 동시에 타인에 대한 권력의지와 불가분적으로 결합된다고 프로이트학파의 심층심리학은 해부했다. 이를 바쿠닌은 『국가주의와 아나키』(1873)에서 독일인은 권위에 대한 노예적 복종 본능과 타인에 대한 지배자적 본능을 동시에 갖는다고 탁월하게 분석한 바 있다. 이것은 독일인들의 나치에 대한 복종과 유태인에 대한 지배를 이미 충분히 예언하고 설명한 것이다. 

“왜 이러한 비인간적인 희생이 강제되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곧 신의 가호를 빌고 자기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하여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독일민족론으로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슬라브인과 독일인이라는 대결 구도, 특히 폴란드 등을 비롯한 당시의 동구권의 경영을 둘러싼 양 민족 간의 이해 다툼을 그 바탕에 깔고 있고, 바쿠닌이 독일인에 대해 ‘권위에 대한 노예적 복종 본능과 타인에 대한 지배자적 본능을 동시에 갖는다’라고 한 것은 어느 민족에나 적용되기 때문이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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