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류근조 중앙대 명예교수(국문과·사진)가 일생의 마지막 시집을 신문사로 보내왔다. 그의 열네 번째 시집의 제목은 「넝쿨장미에 대한 의혹」이다. 책의 형태가 아닌, 출력본으로 보내온 이번 시집은 한 시인의 공력이 삶에 대한 회한으로 다가온다. 원고 마지막에는 류 시인의 일생이 자전 에세이로 간결하게 담겨 있다. 1966년 <문학춘추>로 등단한 류 시인은 교사, 교수를 거치며 교단 생활을 한평생 해왔다.
“감성의 살과 의지의 뼈 그 길항적 힘이 지탱하고 있는 긴장감의 팽팽함” 류 시인은 이번 시집을 이같이 개괄했다. ‘길항’은 “서로 버티어 대항함”을 뜻한다. 무엇이 그토록 서로 대항하도록 했을까. 그 실마리는 유형의 무덤을 거부하고, 임형주 팝페라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처럼 무형의 자유가 되겠다고 적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에필로그에서 류 시인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우연한 기회에 잠깐 지상의 한 대기 현상(大氣現象) 혹은 내포개념에서 발생한 것”으로 간주했다. 일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류 시인은 여전히 삶과 죽음의 길항을 버티고 있다.
이번 시집의 제목은 왜 ‘넝쿨장미에 대한 의혹’일까? 류 시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참회하며 뒹굴었다는 장미 밭에서 실제로 장미의 가시 없음을 본, 새삼 그 뿌리 깊은 신앙심을 떠올려 보네 / 그런데 지금 철책을 감아 오르는 우리 아파트 넝쿨 장미들은 왜 가까운 주민들의 손길을 거부하고 가시를 방패 삼아 횡포를 들이 대는가 / 나는 출근 길 앞둔 이 시간에도 그 의혹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네” 넝쿨 장미의 가시는 아마도 속세에 찌든 이들과 길항하려는 의지가 아닐까. 그걸 알아채는 시인의 감수성이 참 예민하다.
한편, 류 시인은 대학교수가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에세이로 풀어냈다. 예전에는 교사가 박사과정생이 될 수 없었던 사정, 교수채용과 관련한 에피소드, 교수가 된 후 자초한 일로 인해 정직처분을 받고 와신상담을 했던 일, 자신의 전집이 미국 하버드대와 미시간대에 소장도서가 돼 긍지를 느낀 일, 근원회귀를 꿈꾸는 은튀 후의 삶까지. 그는 영화 「버킷 리스트」 처럼 살지는 못해도 “영화 같은 기호적 체험을 통한 대리체험”이나 “미술 같은 예술세계에의 탐닉”을 할 뿐이라고 밝혔다.
원고에 나와 있는 첫 번째 시를 소개하며, 짧은 평을 마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