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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좌우파 지식인의 역사 정리 … “대중사회 등장은 위기요인 아니다”
프랑스 좌우파 지식인의 역사 정리 … “대중사회 등장은 위기요인 아니다”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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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지식인의 탄생』 파스칼 오리 외 지음, 한택수 옮김, 당대 刊, 400쪽, 2005

“드레퓌스 사건은 더 이상 지식인이 직업이 아닌, 정치적 문제의 참여로 정의되며, 여기서는 지식인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도출해 낼 수 있다.”

1898년 덮혀질 뻔했던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군부에 맞서 ‘로로르’지에 게재한 에밀 졸라의 항의서와 이를 지지하는 교수, 강사, 대학생, 의사 등이 결집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 사건 이후 프랑스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우파에서 좌파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이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전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던 19세기 말부터 지식인의 위기로 여겨지는 포스트모던의 20세기말까지 모두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프랑스 정치문화사의 격동적인 흐름 속에서 지식인의 등장과 퇴진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그들의 사회적 역할과 본질적 변화에 대해 살피고 있다.

사실 20세기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이데올로기 지형을 형성하는 데는 프랑스의 내적인 영향보다는 외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즉 프랑스에 국한됐다기보다 타의에 의해서건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양차 대전과 알제리 전쟁, 그리고 캄보디아의 비극인 크메르 루즈 대학살 등은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의 정체성과 정치적 역할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저자인 파스칼 오리와 장 프랑수아 시리넬리는 지식인의 정치적 활동이 가장 많았던 시기를 2차 대전 직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 설정하고 있다. 이 시기는 이미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보수주의자들과 반파시즘적 지식인이 연합하면서 서서히 계몽주의적 기반이 무너져가는 귀결점이었다. 이에 새로운 가치 정립의 필요성이 요구됨에 따라 좌파 지식인 참여가 대거 이뤄진다.

하지만 30년간 굳건하게 쌓여왔던 마르크스주의가 후퇴하고, 이전까지의 혁명적 모델의 대안들이 침식하고, 전체주의 현상에 대한 고찰이 이뤄짐에 따라 좌파는 침묵하고, 대신 주변에 머물던 우파가 정치적 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1970년대 이후 미디어의 발달은 대중문화를 급격히 확산시키며,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던 지식인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는 낙관한다. 이를 소명이 다한 지식인의 황혼기로 보기보다는 지적 변화와 이데올로기 재구성의 시기로 내다보기 때문이다.

저자의 개념으로 볼 때 한국은 식민지와 분단체제의 역사 속에서 프랑스의 지식인과는 달리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뉴’라는 접두어를 달고 나타난 좌우 지식인의 헤게모니 투쟁은 미디어와 자본의 확대 속에 처한 70년대 이후 프랑스 지식인의 위기가 보여준 문제와 본질적으로는 같지 않을까.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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