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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소련에서 구매한 ‘공업·기술서비스’가 궁금하다면
북한이 소련에서 구매한 ‘공업·기술서비스’가 궁금하다면
  • 우동현
  • 승인 2022.07.2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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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이야기④ 러시아 국립문서고 3부(상트페테르부르크)

이번 글은 러시아의 역사적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국립문서고(archive)와 러시아국립도서관에 소장된 북한사 자료를 살펴본다.

2022년 7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시가 관리하는 국립문서고는 모두 7곳으로, 국립중앙문서고(TsGA), 국립중앙역사문서고(TsGIA), 국립중앙과학기술문헌문서고(TsGANTD), 국립중앙역사정치문헌문서고(TsGAIPD), 국립중앙문학예술문서고(TsGALI), 국립중앙영상사진음성문헌문서고(TsGAFFD), 국영사업체인사문헌문서고(TsGALS)이다. 각 문서고의 정보나 소장 자료는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어 사전 조사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이들 문서고에서 북한사 연구자는 어떤 사료를 찾을 수 있을까. 북한사 관련 사료는 TsGA와 TsGANTD(이하 쯔간트)에 집중돼있다. 필자가 2022년 초 조사를 수행한 쯔간트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중앙과학기술문헌문서고(TsGANTD SPb) 열람실 안 사무실. 사진=우동현

소련 ‘과학기술’ 대외협력사를 보려면

쯔간트는 과학기술 문헌의 수집과 정리를 전문으로 하는 문서고로, 소련 시절부터 지금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생산된 거의 모든 관련 문헌을 소장하고 있다. 소장 자료의 성격은 크게 과학기술 문헌(계획, 건설, 연구, 지도 제작), 공업 관리 문헌(연료, 에너지, 금속, 기계제작, 화학, 전기공학, 전기, 직물, 영양), 측량 및 표준화, 운수, 농림, 건설, 보건, 지리학, 기상학 등으로 나뉜다.

또한 1917년 이후 같은 도시의 고등교육기관에서 수행된 연구나 작성된 학위논문 관련 자료, 소련과 외국의 경제·과학기술 협력 관련 자료, 주요 국제회의 관련 자료도 보유한다. 요컨대, 쯔간트는 과학기술과 공업 관리 부문에서 소련의 대외협력사를 재구성할 수 있게 돕는 가장 중요한 문서고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중앙과학기술문헌문서고(TsGANTD SPb)의 출입증(propusk). 하지만 출입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방문 전 사전 예약은 필수이다. 사진=우동현

문서고 이용에 따르는 불편함이 적지 않다. 특히 열람실 운영 시간과 문서고 휴무일을 숙지하고 가야 한다. 출입구에서 신분증(여권)을 제시해야 하고, 열람실 직원이 와서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후 1층 복도를 지나 열람실에 들어갈 수 있다. 언젠가 필자는 열람실 쉬는 시간에 출입을 시도하다가 경비원으로부터 문서고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문서고 내부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열람실 내부에는 책상이 3대, 자리가 4개 있다. 방문을 위해서는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매번 예약을 해야 한다. 열람실 내 컴퓨터로 신원등록을 마치면 직원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문서고 전자 시스템 ‘통합계정’(edinaya uchetnaya zapis)의 아이디와 암호를 준다. 이 정보는 주문한 젤로(delo, 문서철)를 반납하고 이후 다른 젤로를 주문할 때 쓰인다. ‘통합계정’을 이용할 경우, 자료를 받기까지 2~3영업일이 걸린다. 이메일 주문은 5영업일이 걸린다. 젤로가 준비됐다는 통보 서비스는 없고, 직원들의 친절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청진제철소(북한) 시설 계획, 개건, 건설 관련 기프로메즈Gipromez와의 서신’(1959년 10월 30일), TsGANTD SPb, f. 324, op. 12, d. 556, l.2. 사진=우동현

북한이 소련에서 구매한 공업서비스 내역

쯔간트의 사료들은 북한이 소련에서 구매한 공업 서비스의 내역을 보여준다. 1946~1989년 사이에 생산된 관련 젤로만 106개로, 전체 매수는 7천 6백여 매에 달하며, 13개의 서로 다른 폰드(fond, 문서군)에 수록돼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폰드 R-90이다. 해당 폰드는 1960~1962년 사이, 함경북도 무산군에 위치한 노천철광산인 무산광산 개발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를 담고 있다. 1960년대 초반 이후의 북한사 연구가 거의 진척되지 않고 있고, 당시 북·소 관계의 진상 파악 또한 어려운 상황에서 이 자료는 지하자원 개발을 중심으로 북한사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폰드 R-288과 R-324도 흥미롭다. 폰드 R-288은 1960년대 후반, 북한 당국이 1호 안주탄광과 영흥탄광을 개발하기 위해 소련에서 구입한 기술적 서비스의 내용을 담고 있다. 폰드 R-324는 북한의 공업 인프라 확장을 위해 소련이 판매한 기술 관련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1950~1960년대 청진 김책제철소 관련 자료, 소련 기술 전문가들의 북한 출장 보고서, 1989년 성진내화물공장 관련 자료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 기술적 내용 담긴 ‘쯔간트’ 사료들

쯔간트의 사료들은 대부분 기술적인 내용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 연구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자료가 가진 ‘이념성’이나 ‘선전물로서의 성격’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특히 자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왕복 서한(perepiska)은 북한 공업 관련 시설의 건설·증축·보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양국 기관·전문가들의 상호 작용을 보여준다.

이 자료들에서 드러나는 역사상은 빈약한 경제, 한정된 자원을 최대화하려는 지향, 서비스와 물품 배송상의 끊임없는 차질, 납기일과 관련된 독촉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북한의 공격적이고 빈틈없는 이미지와는 꽤나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지질-암석 단면도’, TsGANTD SPb, f. 324, op. 12, d. 556, l.5. 사진=우동현

‘제국공립도서관’, 모스크바에선 볼 수 없는 자료 소장

국립문서고 외에도 19세기 초 ‘제국공립도서관’으로 개관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국립도서관은 북한사 연구자들의 주목을 요한다. 도서관 3층의 ‘아시아아프리카문헌부서(OLSAA)’는 여태껏 연구자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북한사 사료의 보고이다. 

OLSAA의 북한 자료는 크게 신문, 학술·대중 잡지, 도서 및 책자, 전원회의 결정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어록을 담은 선집·저작집·저작선집 등으로 모스크바의 동방문헌센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발견할 수 없는 자료가 일부 소장돼있다. 

1958년 출판된 북한의 농학 도서. 북한식 “록색혁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물성 식품의 증산·개선은 중요한 과제였다. 사진=우동현
북한의 대표적인 의학 잡지인 『인민보건』은 1950년대 북한 국가의 위생보건 강화를 위한 여러 노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진=우동현

다음 글에서는 러시아의 다른 지역에 위치한 문서보관소(repository)와 해당 기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북한사 자료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우동현 객원기자 / 요크대 박사후과정 
「Leveraging Uneven Cooperation: Socialist Assistance and the Rise of North Korea, 1945-1965」이라는 제목으로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발행하는 『The Historical Journal』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 게재가 확정됐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냉전기 미국 핵기술의 국제사를 다룬 『저주받은 원자』(가제),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총서 36권 『해방 직후 한반도 북부 공업 상황에 대한 소련 민정청의 조사 보고』(공역) 및 38-39권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소장 북한 인물 자료 Ⅱ·Ⅲ』(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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