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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 조작, 괴물 만들까 아니면 인류 구원할까
유전체 조작, 괴물 만들까 아니면 인류 구원할까
  • 전준
  • 승인 2022.07.25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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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생물학의 미래

‘시도와 실패’의 실험연구에서 데이터베이스 생명공학으로
초국적 협력 ‘국제 관측소’로 유전체 조작생물체 모니터링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라는 단어에는 왠지 모를 신비감이 있다. ‘생물’을 ‘합성’한다는 것이 언어모순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합성생물학을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물질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생물체의 시스템을 설계하거나 자연에 있는 생명시스템의 재설계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즉, 합성생물학은 넓은 의미에서 인위적인 조작으로 유전체의 성질을 바꾼 생물을 이용한 과학기술을 포괄한다. 유전체 중심의 현대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합성생물학의 범위에 들어오지 않는 생물학을 꼽는 것이 더 어렵다. 그만큼 합성생물학은 과학기술 연구 현장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이미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유전자 편집기술을 통해 다양한 형질의 생명체들을 실험실에서 탄생시킬 것이다. 이미지=픽사베이

대중적으로 합성생물학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를 꼽는다면, 2020년 크리스퍼 캐스9(CRISPR-Cas9)을 연구한 제니퍼 다우드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가 노벨화학상을 탔을 때를 들 수 있겠다. 크리스퍼 캐스9은 일명 유전자 가위로 불리며, 비로소 인간이 유전 형질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합성생물학의 시대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샤르팡티에 교수는 박테리아가 면역 시스템의 일환으로 바이러스의 DNA를 잘라내는 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점을 발견했고, 이를 미국의 다우드나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크리스퍼 기술로 발전시켰다. 크리스퍼 기술은 이전 세대의 유전자 가위 기술에 비해 타겟 유전체를 정확하게 오려낼 수 있어 그 활용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크리스퍼 캐스9이 최초의 유전자 조작 기법이었던 것은 아니다. 분자생물학자들은 이미 1980년대부터 다양한 기법들을 이용해 미생물들의 유전체에 개입해 새로운 형질을 주입하고, 이를 활용한 생물학 연구들을 수행해 왔다. 이렇게 형질이 바뀐 미생물들은 갖가지 산업 현장에서 활용된다. 자연계에서는 몇 년에 걸쳐 부식될 목재가 이들 미생물로 인해 며칠 만에 잘게 쪼개져 다양한 종류의 탄화수소로 거듭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유전공학이라는 표현으로 더욱 익숙한 연구분야이다. 합성생물학은 어느 날 갑자기 인류의 손에 쥐어진 발명품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이 함께 다듬고 만들어 온 익숙한 도구와 같다.

 

컴퓨터과학·사회학·윤리학과 학제적 협동

합성생물학이 생물학자들만의 전유물인것은 아니다. 현대 합성생물학은 컴퓨터과학, 수학, 그리고 사회학과 윤리학에 이르기까지 넓은 학제적 협동을 필요로 한다. 컴퓨터 공학자들은 다양한 플랫폼들을 활용해 생명체들의 염기서열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질을 발현시키는데 조응하는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기계학습 기법은 이를 더욱 가속시키고 있으며, 따라서 원하는 형질 발현을 위해 유전체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과거 생명공학은 시도와 실패를 기반으로 하는 실험과학으로서의 성질이 두드러졌지만, 컴퓨터공학과의 연계는 훨씬 더 효율적인 실험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합성생물학의 미래를 두고 다양한 학자들 사이의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전체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이 간편해진 만큼이나, 지금껏 탄생한 적이 없었던 다양한 형질의 생명체들이 실험실에서 탄생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한 잠재적인 환경적·보건적·사회적·법적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스콘신 대학의 생명공학자 크리스 사하와 그 동료들은 유전체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생물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에 대한 규제정책을 수행하고 대중의 여론을 모으는 국제적인 협력기관을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들이 ‘국제 관측소(global observatory)’라고 이름붙인 이 기관은, 마치 IPCC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제사회의 어젠다를 이끌듯이 합성생물학과 관련된 논의를 초국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기관이다. 이는 연구자들만의 참여로는 이루어기 힘들다. 대학의 연구자들은 과학의 내용에는 정통하되, 과학적인 문제 해결에 몰두하는 경향으로 인해 시야가 넓지 못하다. 전통적인 실험과학자들 뿐 아니라, 각국의 사회학자, 정책학자, 대중들이 함께 운영하는 것이 이 국제 관측소의 이상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국적인 규제기관은 아직 아이디어의 차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현실 속에서의 과학기술과 관련된 규제는 아직 국가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은 1984년에 처음으로 유전공학육성법을 제정하였으나, 이는 말 그대로 유전공학을 육성하고 산업화를 촉구하기 위한 법이었다. 2022년에 개정된 생명공학육성법은 1984년의 법안이 열 일곱번의 개정을 거친 결과이다. 새로운 법령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생명공학기술이 경제, 사회, 문화, 윤리 및 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여야 한다”라는 문구가 추가된 것이다. 기술영향평가의 결과가 생명공학정책에 의무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합성생물학을 비롯한 생명공학 기술들이 장차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두고 더 많은 논의가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논의가 과학기술의 현장에 녹아들어 앞으로 과학자들이 이루어내게 될 혁신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주게 될 터이다. 국제 사회에서의 합성생물학의 미래와 그 안에서의 한국의 역할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전준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정책학 석사를 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과학기술사회학, 환경사회학, 사회이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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