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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가(詩歌)”
“한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가(詩歌)”
  • 김재호
  • 승인 2022.07.26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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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한시로 만나는 한국 현대시』(푸른사상 | 320쪽) 쓴 강성위 박사

“약은 우리의 육신을 치유해주는 시이고, 시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이다.”
“한시 연구자는 반드시 창작자 입장에 설 수 있어야 한다.”

“비애는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이 남기는 여운” 지난 18일, 『한시로 만나는 한국 현대시』의 저자 강성위 박사(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만나러 가다가 이 문장에 빠져 약속 장소인 구로디지털역을 그냥 지나쳤다. 강 박사는 조지훈(1920∼1968)의 「낙화」를 한시(漢詩)로 옮겼고, 한역 노트에서 이같이 표현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난다.

 

강성위 저자는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중국문학 시가 이론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30여 권의 저서와 역서가 있으며, 창작 한시집 『술다리(酒橋)』(푸른사상, 2011)를 집필했다. 사진=김재호

강 박사가 『한시로 만나는 한국 현대시』를 쓴 계기는 신석정(1907∼1974)의 시 「서정소곡」의 한 문장 때문이다. “나는 산처럼 서서 널 생각한다.” 이 시구를 한시로 옮기면 ‘吾立如山思吾君(오립여산사오군)’이 된다. 강 박사는 “이 시구(詩句)를 한시 구절로 만든 것을 보고, 서로 알지 못하는 지인 세 사람이 거의 비슷한 의견을 제게 주었다”라고 말했다. 즉, “시구 한 두 구절만 한시로 만들지 말고 시 전체를 하나의 한시로 만든다면, 조선시대 몇몇 시인들이 한글로 된 시조를 한시로 번역한 것과 같은 의의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이 책에 담긴 윤동주(1917∼1945)의 「새로운 길」 일부를 감상해보자.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新康(신강) // 濟川向林(제천향림) / 越嶺向莊(월령향장) / 昨日已去(작일이거) / 今日將踉(금일장량) / 吾前吾路(오전오로) / 卽是新康(즉시신강)” 여기서 “나의 길” 앞에 ‘吾前[나의 앞]’이라는 두 글자를 더했을 뿐, 원시를 충실하게 시화(詩化)시켰다고 할 만하다.

『한시로 만나는 한국 현대시』는 빼어난 시들을 모아, 한글시-한역(漢譯)-주석-한역의 직역-한역 노트 순으로 구성했다. 각각의 시들을 감상하고, 이를 한시와 한시의 직역, 그리고 이에 대한 강 박사의 에세이를 읽는 것이다. 강 박사는 <한경닷컴>에 이같은 방식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그는 “한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가(詩歌) 형식이기 때문에 한시라는 문학 형식에 익숙한 지식인이라면, 그 사람의 국적에 관계없이 한시를 감상할 수 있다”라며 “한국의 시를 한시로 옮겨놓으면 한문과 한시를 아는 세계인 누구나가 한글을 전혀 모르더라도 한국의 시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 책을 한자권인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 번역해 출판할 생각도 갖고 있다. 

이 책은 번역이나 한시 연구방법론에서도 의미가 있다. 강 박사는 “한글 시를 한시로 번역하는 역번역 과정에서 번역시도 시여야 한다는 대전제에 충실하기 위해 사실 무진장 애를 썼다”라며 “한글 시를 한시로 번역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제2의 창작이기 때문에, 저의 한역(漢譯) 방법을 보다 보면, 연구자가 한시를 번역하고 해설하는 것을 감상자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창작자의 입장에서도 볼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론을 만들어갈 수도 있을 듯하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감상자 입장에서 시를 대하면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창작자 입장에서 시를 대하면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도 있기 때문에, 한시 연구자는 반드시 창작자 입장에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지론”이라고 밝혔다. 

 

한시는 정형시인 근체시·고체시

그렇다면 한시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강 박사는 “오늘날 우리가 한시라고 칭하는 시는 대개가 당(唐)나라 때 시형(詩形)이 굳어진, 엄격한 형식률이 요구되는 근체시(近體詩)를 가리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근체시와 달리 형식률이 매우 느슨한 시를 고체시(古體詩)라 하는데, 이 고체시 역시 엄연한 한시”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한시는 근체시는 말할 것도 없고 고체시라 하더라도 정형시(定型詩)에 가깝지만, 그 함축성으로 인하여 한글로 작성된 자유시에서 구현된 ‘자유’를 정형적인 틀 안에 들일 수 있을 정도로 탄력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창작 한시집을 낼 정도로 시를 사랑하는 강 박사에게 과연 ‘시’란 무엇일까? “약(藥)은 우리의 육신을 치유해주는 시(詩)이고, 시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이라고 생각한다. 약은 우리의 몸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해주고, 시는 우리의 영혼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해주기 때문이다. 현대 산업사회가 되면서 약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듯이, 시 역시 더 많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한시로 만나는 한국 현대시』에는 주옥같은 시들이 많다. 대학·교수사회에서 읽히면 좋을 시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강 박사는 “김용택 시인의 「흰 밥」과 이길원 시인의 「분재」, 유승우 시인의 「파도」와 같은 시는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한번쯤 읽어봄직한 작품”이라고 답했다.

“죽기 전까지 1천 편의 호시(號詩)를 지어 책으로 내겠다.” 추후 작업에 대해 강 박사는 이같이 답했다. 그는 “내년 초 출간을 예정으로 현재 준비 중인 『현대인의 호(號)와 호시(號詩)·01』(가칭)이 바로 그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이 책에 60편 가량의 호시를 수록할 예정이며, 현재 작업이 반쯤 진행된 상태”라고 밝혔다. 호시는 『한시로 만나는 한국 현대시』 5부에 소개되고 있는데, “호의 뜻을 설명하거나 호에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는 시”이다. 

***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신석정 선생의 시 「서정소곡」에 나오는 "나는 산처럼 서서 널 생각한다"가 책을 쓰시게 된 동기라고 적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달라.

"나는 산처럼 서서 널 생각한다[吾立如山思吾君(오립여산사오군)]"는 이 시구(詩句)를 한시 구절로 만든 것을 보고, 서로 알지 못하는 지인 세 사람이 거의 비슷한 의견을 제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곧, 시구 한 두 구절만 한시로 만들지 말고 시 전체를 하나의 한시로 만든다면, 조선시대 몇몇 시인들이 한글로 된 시조를 한시로 번역한 것과 같은 의의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서울대 중문과 이정훈 교수의 꼼꼼한 조언이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구성이 독특하다. 원래 있던 한국의 시를, 한시(漢詩)로 옮긴 후, 이를 다시 직역을 했다. '책머리에'도 밝히셨듯이, 중국에서 우리나라 시가 읽히기를 원하신 것인가? 왜 이런 구성을 하신 것인가.

중국에서 우리나라 시가 읽히기를 원한 것은 맞습니다만, 딱히 중국만 목표로 한 것은 아닙니다. 한시는 한문과 함께 전통시기에는 동양인의 필수적인 소양이었지만, 지금은 유관 분야 전공자들에게 요구되는 소양으로 바뀌었습니다. 한시라는 문학 형식에 익숙한 지식인이라면, 그 사람의 국적에 관계없이 한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한국의 시를 한시로 옮겨놓으면 한문과 한시를 아는 세계인 누구나가 한글을 전혀 모르더라도 한국의 시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한역한 시”에 다시 “한역의 직역”을 더한 데는, 제 칼럼이나 책을 통해 한시나 한문을 공부하시는 분들에게-실제로 제법 여러 분입니다.- 일정 정도 도움을 주자는 목적도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원시(原詩)가 한역이 될 때 어떤 점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는 것을 한문이나 한시 비전문가들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글로 된 시와 한시(漢詩)를 비교하자면 어떤 특징들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특히 한시(漢詩)는 글자 수가 모두 같은 게 특이하다.

오늘날 우리가 한시라고 칭하는 시는 대개가 당(唐)나라 때 시형(詩形)이 굳어진, 엄격한 형식률이 요구되는 근체시(近體詩)를 가리키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근체시와 달리 형식률이 매우 느슨한 시를 고체시(古體詩)라 하는데, 이 고체시 역시 엄연한 한시입니다. 한시는 근체시는 말할 것도 없고 고체시라 하더라도 정형시(定型詩)에 가깝지만, 그 함축성으로 인하여 한글로 작성된 자유시에서 구현된 ‘자유’를 정형적인 틀 안에 들일 수 있을 정도로 탄력이 있습니다. 저는 한시의 묘미는 바로 이런 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근체시는 시구마다 글자 수가 일정하지만, 고체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근체시에 비해 훨씬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시'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는 개인적으로 약(藥)은 우리의 육신을 치유해주는 시(詩)이고, 시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은 우리의 몸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해주고, 시는 우리의 영혼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현대 산업사회가 되면서 약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듯이, 시 역시 더 많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을 하셨는데, 시를 창작하기도 하신다. 시 창작하는 습관이나 방법은 무엇인가.

저는 한시만 짓는 것이 아니라 한글 시도 짓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 창작을 위해서라면 메모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너무나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이지요. 예전에 가방에서 메모지 꺼낸 뒤 볼펜 찾다가 시상을 잃어버린 경험도 있는데, 요즘에는 핸드폰에 바로 메모를 할 수 있으니 더없이 편하고 좋습니다. 이 편의성은 옛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가령 말을 타고 가다가 좋은 시상이 떠올랐다면 메모를 못하니 잊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겠습니까?

△주옥 같은 시들이 많습니다만, 대학/교수사회에서 읽히면 좋을 시를 추천해달라. 

김용택 시인의 <흰 밥>과 이길원 시인의 <분재>, 유승우 시인의 <파도>와 같은 시는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한번쯤 읽어봄직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이 번역이나 한시(漢詩) 연구방법론에서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의 책을 보게 되면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드는 독자라면 아마도 번역을 해본 적이 거의 없을 공산이 큽니다. 그리고 저는 한글 시를 한시로 번역하는 역번역 과정에서 번역시도 시여야 한다는 대전제에 충실하기 위해 사실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이것이 1차적으로 번역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제법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해줄 듯합니다. 한글 시를 한시로 번역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제2의 창작이기 때문에, 저의 한역(漢譯) 방법을 보다 보면, 연구자가 한시를 번역하고 해설하는 것을 감상자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창작자의 입장에서도 볼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론을 만들어갈 수도 있을 듯합니다. 감상자 입장에서 시를 대하면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창작자 입장에서 시를 대하면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도 있기 때문에, 한시 연구자는 반드시 창작자 입장에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지론입니다.

△추후에는 어떤 연구나 작업을 하실 계획인가.

제가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매인 몸이 아닌 자유인이라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든 연구할 수 있다는 점일 듯합니다. 올 초에 한 지인을 통해 사진작가 한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작가님의 꿈이 만인보(萬人譜), 곧 1만 명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 전시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작가님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면서 저는 제 지인들에게, “나는 죽기 전까지 1천 편의 호시(號詩)를 지어 책으로 내겠다.”고 호언을 했습니다. 하늘이 제 여생으로 지금부터 최소한 20여 년 정도만 허여해주신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내년 초 출간을 예정으로 현재 준비 중인 ≪현대인의 호(號)와 호시(號詩)·01≫(가칭)이 바로 그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이 책에 60편 가량의 호시를 수록할 예정인데, 현재 작업이 반쯤 진행된 상태입니다. “호가 사람이라면 호시는 집이고, 호가 칼이라면 호시는 칼집이다.”와 같은 호시에 대한 얘기는 저의 책 5부에 소개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도 조금씩 준비 중인, 진짜 제 필생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가(詩歌)에 관한 저서(著書) 집필은 너무 전문적인 얘기라서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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