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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間은 간 데 없고 Space만 남아
空間은 간 데 없고 Space만 남아
  • 강혁 경성대
  • 승인 2006.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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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공간' 창간 40주년의 회고와 성찰

▲40주년 기념 포스터 ©
1966년 11월에 창간된 월간지 ‘공간’이 올해로 창간 40주년을 맞는다. 이는 분명 우리나라 언론사, 잡지사, 문화사, 미술사, 건축사에 기록할만한 일이다. 문화예술 전문지, 혹은 건축전문지를 표방하면서 40년의 세월을 중단없이 발간해왔다는 사실은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동안 수많은 종합 문예지, 학술지, 비평지들이 창간됐고, 또 사라졌다. 같은 해 창간된 ‘창작과비평’ 정도가 동일한 연륜을 자랑하며 계속 발행되고 있을 뿐이다. 지령 459호의 [공간]의 무게가 남다른 이유다.

그러나 일개 전문지가 오래 세월을 견뎌내고 생존했다는 사실만으로 경하할 일은 아니다. 우리가 공간 40주년을 축하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묻는다면 그것은 그만큼 창간 당시의 척박한 환경에서부터 오늘의 문화적 다원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공간’의 한국 사회에 대한 기여, 특히 문화 예술계에 미친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로 ‘공간’은 1960년대 후반, 그리고 70년대에 가장 앞서 가는 전문지였다. 당시 상황에서 요청되던 계도와 비평 간의 균형을 잘 잡아가면서, ‘공간’은 정보와 지식에 갈급했던 이 땅의 지식인, 예술인, 학생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로 작용했다.

잘 알다시피 건축가 김수근을 빼놓고 잡지 ‘공간’을 생각할 순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스트 건축가로 꼽히는 김수근은 나이 35살에 ‘공간’을 창간했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그는 이미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당선되고 자유센터 등의 건물을 지어 건축계, 문화계의 스타로 떠오른 상태였다. 건축을 둘러싼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김수근은 건축 뿐 아니라 문예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당시 상황에서 절실하다는 혜안을 가졌던 것 같다. 전후, 고도 성장기의 출판왕국 일본에서 공부한 경험도 매체의 사회적 역할에 눈뜨는 계기가 됐을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본격적인 근대화 과정과 동행하면서 ‘공간’은 문화 예술계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인쇄매체 ‘공간’의 발행과 병행하여 김수근은 자신이 이끄는 공간그룹의 사옥에 공연 및 전시를 위한 ‘실물’ 공간도 마련했다. ‘공간’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적 활동과 사건이 촉발됐고, 논의됐으며, 또 기록됐다. ‘공간’이 소중했던 것은 당시 절대적으로 결핍됐던  문화계 공동의 담론 공간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있다. 따로 유입되고 상호 무관하게 존립했던 건축, 미술, 디자인, 음악, 연극, 무용, 사진 등의 분야가 ‘공간’을 통해 한 자리에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공간’ 발간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당시의 궁핍한 상황에 비춰볼 때 ‘공간’의 인쇄매체로서 세련성은 놀랍다. 참신한 편집과 디자인에 시각 자료인 사진을 대량으로 사용했다. 글자 배치나 고급 지질도 예사롭지 않다. 영상시대의 매체를 예감케 하는 이런 시도는 ‘공간’이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잡지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근대’, ‘전통’, ‘해외’라는 세 화두가 포착된다. ‘우리’의 근대를 일구어야 한다는 열망과 동시에 전통 문화가 그것의 자양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드러나는 것이다. 해외동향의 발빠른 소개, 당시로선 생소한 타자였던 전통문화의 적극적 발굴 및 자료화에는 당시 ‘공간’이 담당하려했던 계몽주의자적 면모가 엿보인다.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서 동시대 한국 문화의 상황을 다루는 비평 담론의 비중이 커져갔지만 동시에 ‘공간’은 불가피하게 예술계의 독보적인 언론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수많은 작가, 평론가들이 공간을 통해 알려졌고 명성을 얻었다. 작가특집을 마련해 역량 있는 작가들을 집중 조명했다. 비평과 좌담을 통해 동시대의 문화 예술계의 현안과 고민을 논했다. 담론 공간의 부족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면면을 살펴보면 당대 최상급의 필진, 논객들이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국제판화상을 위시한 여러 문화 이벤트의 개최, 문화적 스캔들일 수도 있었던 비평적 논쟁, 공옥진이나 사물놀이 등의 발굴과 소개 등으로 ‘공간’은 상당 기간 동안 문화예술계의 풍부한 자양이 됐다.    

또 하나 ‘공간’의 공헌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한국 근현대의 문화의 충실한 기록일 것이다. 지나간 ‘공간’을 읽는 일은 곧 한국 근현대 40년의 문화 예술계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담론들을 일별하는 일이 된다. 예술계의 산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은 미래의 한국 예술사 연구를 위한 소중한 아카이브다. 그밖에도 건축과 도시가 문화예술의 일부이자 그 토대라는 인식을 심은 점도 잊을 수 없다. 건축이 기능과 기술을 넘어서 종합적인 인문적 기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김수근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공간’은 김수근 개인이 그랬듯이 엘리트 지향적이었고 고급문화 취향이었다.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 채 미학주의적 성향을 띠었으며, 그 편집과 운영이 내부의 소수 우호적 인사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한편, 본래의 의도와 무관하게 ‘공간’이 김수근 개인과 그가 이끄는 공간그룹의 프로모션에 이용됐다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공간사옥 ©
1986년 김수근의 때이른,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은 ‘공간’에 커다란 시련으로 다가온다. 사망 당시 그의 공간 그룹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달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공간’지의 발행은 김수근 개인의 남다른 의지와 사명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행히 김수근의 제자이자 공간그룹의 소장의 한 사람이었던 장세양이 사무소를 인수하면서 ‘공간’지는 회생의 기회를 얻게 된다. 장세양 시절 ‘공간’은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를 단행한다. 종합 문예지로서의 ‘공간’지의 정체성은 유지해가되 전문화의 흐름을 감안해 건축과 도시의 비중을 강화하는 한편, 국제화의 추세 속에 기사를 영문으로도 번역해 함께 싣는 일을 단행한 것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국·영문 병행 수록은 여타 국내 전문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도였다. ‘공간’이 국내용에 머물기보다 해외에도 읽히는 매체가 되겠다는 의도였다. 거기엔 한국 문화를 알리고 세계와 대등하게 소통하겠다는 열린 사고가 보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김수근이 간 지 10년 만에 건축가 장세양은 스승의 유지를 제대로 계승 발전시켜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젊은 나이로 급서하고 만다. 현재 공간그룹과 ‘공간’은 또 다른 공간 출신인 이상림 회장이 인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상림 휘하에 공간그룹이 사업적으로 제 궤도를 잡아가면서 잡지 ‘공간’도 안정적인 발간과 능동적인 변신의 시도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공간’을 매개로 더욱 많은 문화적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공간’ 창간 시나 20주년과 비교해 볼 때 엄청 변해버린 사회 문화적 환경 속에서 ‘공간’이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하고 과거 전통에 부끄럽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매체의 홍수 속에서 이제 ‘공간’은 이 땅의 수많은 잡지 중의 하나로 존재하게 됐다. 가속화된 전문화는 각 분과의 전문지들의 탄생을 가져왔으며 ‘공간’의 장점이었던 종합 문예지로서의 기능을 위협해왔다. ‘공간’의 담론적 영향력은 위축된지 오래다. ‘공간’이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고 어떻게 자신 만의 색깔을 담보할까 고민해야할 이유다.

현재의 ‘공간’은 거의 건축 전문지로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미술, 무용, 패션, 디자인 등의 비평들이 꾸준히 실리고 있지만 과거를 의식한 구색 갖추기 내지는 건축인을 위한 읽을거리의 성격이 짙다. 아마도 건축계 밖에서 ‘공간’은 더 이상 구독할 필요가 없는 잡지가 되어가는 것 같다.   

현재 발행되는 ‘공간’은 영상 시대의 매체에 충실하다. 글 대신 이미지가 잡지를 채우고 있다. 커다란 판형에 시원한 사진들, 화려한 색채와 감각적인 북 디자인으로 해서 ‘공간’은 현대적 감수성으로 넘친다. 높은 수준의 세련미와 가독성은 분명 ‘공간’이 지닌 장점이다. 하지만 시각성은 자랑할 만한 ‘공간’의 전통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표지에 제호 ‘空間’이 사라지고 ‘SPACE’만 남은 데서 필자는 시류에 충실하려는 ‘공간’ 현재를 읽는다. 아마 김수근의 ‘공간’의 발간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현재 ‘공간’ 속에 잡지 발행의 철학, 혹은 지향점이 부재해 보인다는 것이다. 매우 잘 만든 잡지, 잘 읽히고 잘 팔리는 잡지이지만 상업성이 두드러지면서 과거의 ‘공간’이 감당하던 문화적 비중은 현저히 축소됐다. 건축계 내부에서 보더라도 공간의 담론 생산력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건축, 도시와 문화 전반의 소통이 더욱 절실해진 것이 지금의 상황인데도 ‘공간’은 본연의 전통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계몽의 시대에 ‘공간’의 역할, 개발 시대에 ‘공간’의 역할과 현재의 ‘공간’의 존재이유는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잡지 ‘공간’이 경쟁하는 다른 상업적 건축 매체와 별다른 차이를 보여주지 못할 때 ‘공간’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게 될 것이다.

강혁 / 경성대·건축사

필자는 서울대에서 ‘서구근대건축사의 기술과 해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공간론’, ‘서울건축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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