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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신자유주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결과
칠레의 신자유주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결과
  • 김기현 선문대
  • 승인 2006.02.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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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신자유주의시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총서(전3권)』조돈문·김종섭·이내영 지음, 오름 刊, 2005

▲차베스 대통령 ©
최근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는 소위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반적 동향을 분석하는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신자유주의시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총서”라는 이름의 3권의 책이 되어 나왔다. 그중 가장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2권 “신자유주의시대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대응과 문화변동”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주목받고 있는 이때 우리보다 일찍 신자유주의 모델을 실험한 라틴아메리카에서 이의 경제사회적 결과와 그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예전에도 라틴아메리카의 사례 분석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80년대 초반 사상의 자유화 바람을 타고 그때까지 금기시 되어왔던 마르크스의 이론서들이 대거 출판되던 때에 미국중심의 이론적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 해석의 틀을 모색하던 한국의 일부 사회과학계는 라틴아메리카의 종속이론을 새로운 이론적 패러다임으로 시험한 적이 있다. 그리고 뒤이은 민주화의 바람 속에서 군부정권에 대한 새로운 해석 즉 관료적 권위주의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관료적 권위주의론 또한 주로 라틴아메리카의 군부정권을 이해하기 위해  생성된 이론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주로 논의되는 위임민주주의나 수직적 책임성의 문제 또한 이미 9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에서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정부들이 자신의 공약과는 다르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이는 현상을 보면서 제기된 개념들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 우리나라가 비록 라틴아메리카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앞서가고는 있다지만 이론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90년대 초반부터 이미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그에 대한 대안의 모색 또한 90년대 중반 멕시코 치아파스 농민 반란과 페소화 위기를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이후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국가들에서 외환위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경제사회적 측면에서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문제점들이 호전되지 않자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은 최근 매우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러한 사회적 흐름이 이론적 지평에서도 반영됨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방향에 대한 분석은 단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파악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라틴아메리카 학회의 이번 연구결과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저자들도 의도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국사회를 제3세계라는 틀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똑같이 외환위기를 겪었다는 점에서 또 개방과 그에 따른 외국자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라는 공동의 문제를 노출시켰다는 측면에서 우리 경제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의 외부적 취약성을 보여주었지만 그 극복 과정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우리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내면서 외부적 취약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성과를 거둔데 비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자국화폐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확대 전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부적 취약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밖에도 사회적 통합이라는 문제까지 생각한다면 한국과 라틴아메리카는 이제 닮은 점보다 오히려 다른 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지속적으로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경제적 효과에 대한 평가이다. 그런데 저자들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신자유주의의 결과는 국가별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도 국가별로 다르게 내려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의 책임자인 조돈문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의 가장 성공한 사례로 여겨지는 칠레에 대해서조차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칠레의 성공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결과도 아니며, 사회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비교우위에 기반을 둔 칠레의 1차 상품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이 제조업의 위축을 가져왔으며 사회적으로도 실업률이 높은 수준에서 정체되었고 지역 간의 빈부격차도 완화되지 않았다는 점이 비판의 근거이다. 

저자의 칠레 모델에 대한 이런 극단적 평가는 또 다른 저자인 이남섭도 지적하고 있듯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는 최선의 모델은 아니다. 하지만 그를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비록 최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미국과 신자유주의 그리고 세계화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베네수엘라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가능한 결과이지 지속적일 수는 없다. 반면 대부분의 경우 전 지구적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 한 나라만이 그러한 흐름을 정면으로 거부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좌파들이 차베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바로 이런 현실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칠레는 주어진 조건을 바로 인식하고 그 조건 하에서 최선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정적 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왔고 경제사회적 측면에서도 일부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상황이 호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완전한 이상주의적 입장이 아니라면 칠레의 모델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모델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는 그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그 틀 하에서 그러한 문제점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라틴아메리카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 것이다. 그 첫째는 무엇보다 수출경쟁력의 향상이다. 외환위기 이후 중남미 국가들은 자국화폐를 평가절하함으로써 수출을 증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나라와 달리 라틴아메리카의 이러한 노력들은 성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직도 여전히 외부적 취약성에 노출되어 있다. 평가절하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세계시장에 내다 팔 마땅한 물건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 형식적 민주주의는 획득했으나 실제 다양한 계층의 정치적 참여는 여전히 미약하다. 사회적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소외 계층은 여전히 자신의 요구를 국가의 정책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 등을 통한 소외층의 의식화와 참여의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라틴아메리카 국가 간의 연대가 중요하다. 반미가 아닌 지역 국가 간의 연대를 통한 협상력의 증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주어진 조건 하에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적 노력이 될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측면에서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대응 노력들을 찾는 데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본 연구가 가지는 마지막 결점은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흐름에 대한 전체적 그림을 제대로 그려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종교, 여성, 문화 운동의 최근 동향을 보여주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했음을 인정하나 그것이 이 지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시민사회대응의 주된 흐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대응이라는 큰 틀에서 그 주된 사례들을 하나씩 짚어보는 대신 연구자들 각자의 관심 분야에 대한 최근 동향을 분석하다보니 그것이 시대의 흐름인 신자유주의와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연구자들이 결론적으로 말하듯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대응 방식은 국가별로 또 계층별로 복합적이고 다양하다. 그러나 이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주요 모습들이 함께 분석되어져야 했다. 그를  위해서는 이미 국내에서도 많이 다루어진 주제이기는 하지만 우선 치아파스의 원주민 반란과 반신자유주의 국제적 연대를 위한 노력, 다보스 경제포럼에 반대해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주로 개최되는 세계사회포럼과 반세계화 운동 그리고 최근 이 지역 시민사회에서 불고 있는 반미주의 바람 등이 다루어졌어야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일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시민사회 대응의 전체적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가 가지는 중요성과 그 세부적 내용들은 라틴아메리카를 이해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생각하는 중요한 자료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필자는 멕시코 국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에서 ‘신자유주의를 직면한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사상적 변화’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라틴아메리카 반복되는 외환위기의 근원’,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의 경제사회적 결과’ 등의 논문이, ‘중남미 역사와 사상’, ‘라틴아메리카-마야 잉카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문화’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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