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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觀이 보이는 과학기술사…脫서양중심사?
史觀이 보이는 과학기술사…脫서양중심사?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6.0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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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전대호 옮김 |모티브 刊 | 622쪽 |2005)

합성어처럼 짝지어 다니는 ‘과학기술’이 실은 과학과 기술로 분리될 수 있고,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습관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과학 비전공자들에게 과학은 곧 기술이거나 또는 기술의 상위 개념인데, 특히 과학 영역에 전혀 관심이 없는, 문학과 역사에 심취해 있는 이에게 이러한 착각은 더욱 심하다. 반대로 과학과 기술의 융합이 기껏해야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과학도는 몇이나 될까. 과학과 기술의 주는 현시적 세례에만 시선을 빼앗기기 쉬운 현실에서 그것의 역사성까지 인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는 이런 이들에게 제법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사다. 몇몇 과학기술사 서적이 그렇듯, 단절적인 과학적 성취와 영향만을 나열하고 이를 물리적으로 결합한 ‘역사서’와는 거리가 멀다. 유사 이래 인간의 기술적, 과학적 궤적을 설명함과 동시에, 역사서라는 이름에 맞게 전 시대를 꿰뚫어 설명하려는 일관된 논리가 보인다. 인류의 역사가 과학-기술-국가라는 세 축의 역동적인 상호영향의 결과이며, 특히 과학과 기술은 역사 속에서 별개의 활동이었다는 점을 이루 셀 수 없는 과학적, 기술적 성과들을 통해 증명해낸다.

책에 따르면 역사상 ‘기술’의 등장은 ‘과학’보다 앞서 있다. 1만2천년 전부터 인간은 농업과 목축을 시작하고 사회를 구성했지만, 새로운 도구와 기술의 개발이 과학적 지식의 생산보다 우선했다. 과학연구의 전통은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문명화된 제국이 등장하면서 만들어졌다. 권력자들은 복잡한 사회를 다스리기 위해 실용 지식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국가기관에 소속된 직업적인 전문가들은 달력, 건축과 토목, 농업관리, 의술, 천문 영역에서 고급 지식을 생산해냈다.

저자들은 신석기 시대와 다름없었던 중세 유럽이 12세기 르네상스 이후 세계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 동인 역시 ‘기술’이라고 봤다. 새로운 고밀도 농업의 발견은 유럽 인구를 인도와 중국에 맞먹는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화학무기 기술, 대양 항해 기술은 유럽의 해외 식민지 건설의 밑바탕이 됐다. 이 책은 유럽의 급격한 발전에서 과학은 “본질적으로 아무 역할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 16~17세기 갈릴레이로 대표되는 천문학, 뉴턴의 물리학 등 ‘과학혁명’의 성과는 유럽 정부가 기술적, 경제적 이득을 위해 과학을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기술세계와 과학 사이의 분열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까지 지속됐고, 19세기에서야 사상가들과 도구 제작자들이 연합해 공동의 문화를 만들어내 전기학·열역학·운동학 등의 실용적인 과학을 출현시켰다.

이 책이 인간의 역사를 과학, 기술, 국가라는 세 가지 독립변수로 능숙하게 풀어내며 마치 대하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하지만,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읊조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비유럽의 과학기술사에 대해 6백쪽이 넘는 분량 중 6분의 1을 할애하는 ‘정성’을 보이고, 비유럽의 과학 및 기술의 성과를 그 사회의 내재적 논리로 평가해야 한다는 타당한 시각에 불구하고 말이다.

‘정서적 반감’이 큰 이유는 유럽이 12세기 이전까지 과학기술사에서 암흑기를 보낸 사이 이슬람을 비롯한 인도와 중국에서 뛰어난 과학 및 기술적 성취를 이룩하고, 이후 유럽의 과학기술, 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을 축소하려는 ‘혐의’ 때문이다. 예컨대 이 책이 이슬람 과학이 그리스 과학을 받아들여 다시 유럽으로 내보내는 ‘중간 기착지’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이슬람 과학이 유럽 과학혁명에 어떠한 모태가 됐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꽤나 의문이다. 이 책이 대학교재용이니 간략한 언급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설명의 불균형에 대한 의혹의 눈길은 걷혀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왜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고 있어, 예상되는 뻔한 결론에 씁쓸한 입맛을 남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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