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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평_요셉 슐츠 展(갤러리 뤼미에르, 2월 28일까지)
사진비평_요셉 슐츠 展(갤러리 뤼미에르, 2월 28일까지)
  • 김진영 홍익대
  • 승인 2006.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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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가상 사이로

플라톤 이래로 현실과 가상의 문제는 예술 담론의 오래된 테마이지만 이 문제가 오늘날처럼 인구에 회자된 시대는 없었다. 누구나 알듯이 현실과 가상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화두가 되고 있는 까닭은 그것이 과거와 달리 단순히 예술적 담론의 영역을 넘어 직접적 현실의 테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가상화 혹은 실제의 상실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가상과 현실의 문제는 일방적인 합리화 과정과 그 구체적 결과인 기술 생산력의 힘으로 직접적 현실을 제2의 자연으로 재구성해 온 근대화 과정의 산물이다. 특히 디지털 테크닉에 의해서 원본 없는 현실의 확대 재생산이 보편화 된 후기 근대적 기술력의 단계에서 현실/ 가상의 이분법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폐기된 도식이 되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사진의 영역에서 현실과 가상의 테마는 그 어느 분야보다 뜨거운 감자다. 사진이 태어난 이후 그 새로운 매체의 존재 이유가 다름 아닌 ‘현실의 객관적 재현’에 있었다면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더 이상 그러한 존재 근거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80년대 중반 사진 담론계에서 위기의식으로 제기되었던 ‘사진의 종언’이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사진작가들은 그러나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일군의 작가들은 여전히 사진의 객관적 기록성을 포기하지 않는 반면 일군의 작가들은 디지털 테크닉을 사진매체의 해방으로 받아들이면서 객관적 사진에서 디지털 아트의 영역으로 건너간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진의 위기 자체를 새로운 심미적 실험의 영역으로 파악하고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독자적인 사진적 현실을 구축하려는 일군의 작가들도 있다.     

▲Halle blau-gelb, C-Print/ Diasec, 2001, 100×133㎝ 구성주의적 공간미는 베허 학파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특성이다. 슐츠는 그 공간구성을 더욱 단순화 하는 한편 모형화 된 공간에 원근법적 사선을 부여함으로써 동화적 사진 이미지가 삼차원적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도록 유도한다. ©

J. 슐츠는 베허 부부 (Bernd & Hilla Becher)를 창시자로 하는 소위 독일 뒤셀도르프 학파의 제 3세대에 속하는 작가다. 베허 부부가 ‘유형학적 사진’이라고 지칭되는 사진의 새로운 장르를 구축한 이후 일군의 독일 작가들이 산업 건축물들을 주로 하는 익명적 오브제의 선택, 정면 촬영법, 구성주의적 사진 공간 등등의 유산을 디지털 테크닉과 접목 시키면서 저마다 독창적인 사진 이미지의 세계를 열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중 어쩌면 가장 적극적으로 디지털 테크닉을 수용하고 있는 토마스 루프에게 사사한 J. 슐츠의 사진들은 그러나 그 사진적 의도에 있어서 스승과 많은 차이를 지니는데 그 차이는 가상과 현실이라는 테마에 대해서 스승과 제자가 취하는 입장의 차이인 것처럼 여겨진다.

Th. 루프의 최근 작품들이 사진의 기록성과 재현성에 과감히 등을 돌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디지털 테크닉을 수용하고 있다면 J. 슐츠는 사진의 객관적 재현성과 디지털 테크닉의 주관적 예술성 사이에서 일종의 힘의 게임 (tour de force)을 실험적으로 전개함으로써 현실과 가상의 문제를 새로운 측면에서 성찰케 한다.

▲Form # 10, C-Print/ Diasec, 2004, 120×170㎝ 내추럴 그린은 슐츠의 프레임 공간 안에서 거의 항상 발견되는 기본색이다. 그것은 디지털적으로 재구성된 유토피아적 가상의 현실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 가상이 실제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않도록 이어주는 시각적 접착제의 기능을 지닌다. ©

J. 슐츠의 사진작업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네 가지다. 우선 오브제의 선택이 있다. 슐츠의 고정적인 오브제들은 수퍼마켓이나 쇼핑몰(‘Centre Commercial’ 시리즈), 양철 판넬과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어진 물류 창고나 공장 (‘Sachliches’ 시리즈), 이제는 그 기능을 잃어버려서 폐기된 채로 잔존하는 국경 검문소등 (‘Lost Function’ 시리즈)이다. 그러한 실용적이며 기능적인 산업건축물의 선택은 자의적이라기보다 바우하우스에서 출발했던 근대적 건축 이념이 오늘날 어떤 결과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비판적 의도를 담고 있다.

다음으로는 그러한 객관적인 사진 대상들을 주관적이며 심미적인 이미지로 전환 시키는 디지털 리터칭 작업이다. 4/5 카메라로 정직하게 촬영된 사진 이미지들은 디지털 생략 작업을 통해서 재현의 근거가 되는 일체의 디테일들이 지워지고 건물의 기본구조인 면과 선 그리고 색만이 남는다. 그리고 사실 재현의 마지막 근거인 그 기본구조들은 다시 디지털 보충 작업을 거치면서 기하학적 구성미와 파스텔 톤의 회화적 색들로 구성되는 동화적 가상 이미지로 바뀐다. 과감한 생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마지노선이 고수되는 사진적 재현성과 그 경계선 위에서 자유롭게 구사되는 주관적 심미성의 이중게임은 그러나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사진을 위협하는 디지털 테크닉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묻고자 하는 실험정신의 소산이다.

세 번째로는 그러한 디지털 리터칭 테크닉에 내재해 있는 현실과 가상에 대한 작가 자신의 문제의식이다. 디지털 테크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 스스로 한 인터뷰에서 밝히듯, 슐츠의 의도가 “완벽한 가상을 만들어내는데 있는 건 아니다.” (In Szene Gesetzt, Museum fuer Neue Kunst/ ZKM Kalsruhe 2002) ‘코머셜 센터’ 시리즈의 파노라마 프레임 작업과 ‘자흐리헤스’ 시리즈에서 쉽게 간파되는 것처럼 슐츠의 디지털 리터칭 테크닉은 그것을 숨기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인 시키려는 의도로 사용된다.

그러한 테크닉의 노현을 통해서 얻어지는 효과는 가상 이미지의 실제성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현실과 가상 사이의 시각적 경계체험과 그를 매개로 요구되는 현실과 가상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다. J. 슐츠의 사진 작업에서 마지막으로 주목되는 건 뒤셀도르프를 거점으로 하는 오늘날의 독일 작가들이 저마다의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추구하는 사진미학이다. 가상이 현실화된 시대에 사진은 이미 현실의 재현도구가 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출발하는 이들 베허 제자들의 궁극적 관심이 “사진의 기록성과 작가의 주관성이 겹쳐지는 경계영역에 사진 이미지의 새로운 특성을 이식함으로써 사진 이미지를 새로운 담론의 대상으로 제시하는데 있다”면 (Nils Ohlsen, in, Zwischen Schoenheit und Sachlichkeit, Bonn 2002) 현실과 가상 사이의 간극에서 내재적이며 자율적인 사진적 현실을 구축해 보이는 J. 슐츠 또한 예외는 아니다.


특히 한국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독일 사진의 영향은 뚜렷하다. 모든 문화예술적 영향관계가 그렇듯 그러한 경향성은 장점과 단점을 다같이 포함한다. 그것이 세계 사진계를 주도해 가는 독일 사진의 세력에 대한 단순한 추종인지 아니면 독일 사진의 특수성과 우리의 제반 문화현실이 맺고 있는 모종의 내적 연관성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는 앞으로 사진 담론들이 밝혀야 할 숙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영향을 수용하는 정작의 이유는, 특히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그 영향권을 벗어나는데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진영 / 홍익대·사진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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