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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길렘의 의학론
캉길렘의 의학론
  • 최승우
  • 승인 2022.07.15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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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캉길렘 지음 | 여인석 옮김 | 그린비 | 128쪽

‘자연, 질병, 건강, 치유, 유기체와 사회…’
팬데믹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근본적인 사유들
『캉길렘의 의학론』

프랑스의 대표적인 의학철학자 조르주 캉길렘의 다섯 편의 의학 에세이 『캉길렘의 의학론』은 의학철학 및 의학에 대한 실존적/정치적 개괄까지 아우르는 의미 있는 저작이다. 팬데믹을 고통스럽게 통과하며 그 어느 때보다 질병과 건강, 나아가 생존의 문제가 긴급한 과제가 된 지금, 『캉길렘의 의학론』은 우리에게 그 과제를 풀기 위한 근본적 사유를 제공한다. 이 책에서 담고 있는 다섯 가지 주제-자연, 질병, 건강, 치유, 유기체와 사회-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 사유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1. 자연 - 의술은 자연의 변증법
의학에서 자연의 개념은 이미 히포크라테스 의학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는 역사가 깊은 문제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하는 자연은 달리 말해 자연치유력이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이 자연치유력을 강조한 것은 당시의 의학이 가진 효과적 개입 수단이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시대 이후 의학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그 성과들은 일견 히포크라테스적 자연치유 사상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캉길렘은 효과적 치료수단이 발달하여 적극적 개입을 위주로 하는 현재의 의학이 비(非, non-)히포크라테스적이긴 하지만 반(反, anti-)히포크라테스적은 아니라고 말한다. 현대의학이 발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전히 치료의 한계는 존재하며 자연치유력은 그 한계 안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캉길렘은 의술과 자연의 관계를 “의술은 자연의 변증법”으로 표현했다. 또 한편으로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는 자연에 속하지 않는 것을 자연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지였다. 그러나 자연의 한계에 상대적으로 구애받지 않게 된 현대에는 자연에 속하지 않는 것도 자연에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말해 자연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자연에게 강요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그런 요구를 자연에게 하지 않는 것이 무지가 된다. “의술은 자연의 변증법”이라는 캉길렘의 말은 그렇게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2. 질병 - 존재의 취약함을 경고하는 실존적 사건
이 글은 백과사전의 항목으로 집필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견해보다는 해당 주제에 대한 기존의 다양한 논의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기술된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 나타나는 한 가지 특징은 질병의 실존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질병은 살겠다고 요구하지 않았지만 살도록 강제된 인간이 결국 지불해야 할 대가다. 죽음은 생명 안에 들어 있으며, 질병이 그 표식이다”와 같은 부분이나 “질병은 생명체가, 혹은 인간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시인하게 강제하는 생명의 도구다”와 같은 곳에서 그런 강조점을 찾아볼 수 있다. 질병에 대해 다양한 논의도 물론 가능하지만 캉길렘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질병은 결국 개인에게 그 존재의 취약함을 경고하는 실존적 사건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3. 건강 - 자유롭고 제약 없는 건강에의 옹호
계몽주의 시대에 철학적 성찰의 대상이었던 건강은 근대국가의 등장과 함께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된다. 통제와 관리를 위해서는 계수화가 필요하다. 건강에 대한 계수화, 수량화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캉길렘은 기구에 의해 측정되지 않는 “자유롭고 제약되지 않으며 계수화되지 않는” 건강을 옹호한다. 다만 이러한 건강이 “과학적으로 조건 지어진 건강”을 불신하고 “사적인 건강을 옹호하고 예증하려는 시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후자에는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백신거부 운동과 같은 비이성적인 시도가 포함된다. 캉길렘은 건강에 대한 비이성적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는 “존재론적 의미에서 건강을 몸의 진리로 인정한다면 논리적인 의미에서의 진리, 다시 말해 과학의 현존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재론적 차원의 진리와 인식론적 차원의 진리는 공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인식의 주체로서 인간과 대상으로서의 인간은 공존 가능하다. 이러한 이중성이 철학적 사유의 가능 조건이며, 따라서 건강은 통속적 개념이기도 하지만 철학적 탐구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것이 캉길렘의 결론이다.

4. 치유 - 완전한 치유는 과연 가능한가?
치유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는 치유가 어느 한쪽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언되기 어려움을 말해 준다. 다시 말해 치유에 대한 의사의 객관적 기준과 환자의 주관적 기준 사이의 불일치는 치유에 대한 교육의 문제를 제기한다. 검사상 나타난 수치에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객관적 진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주장하는 환자의 주관적 호소 사이의 불일치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거나 혹은 당사자로서 경험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단순히 질병이나 증상의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일어날 뿐 아니라 의학적 개입 이후의 결과, 즉 치유에 대한 평가를 두고도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불일치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다.

5. 유기체와 사회 - 우리 몸과 사회의 자기조절 장치에 대하여
사회는 흔히 유기체에 비유된다. 그러나 사회는 외재적 규범의 지배를 받고, 유기체는 내재적 규범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 양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유기체의 이상(理想)은 유기체에 내재되어 있지만, 사회의 이상은 사회에 내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사회의 이상인 정의는 항상 외부에서부터 온다. 그래서 사회는 그 정의를 가져올 영웅이 항상 필요한 것이다. 캉길렘에 따르면 사회는 혼란이 정상상태이다. 왜냐하면 “사회에는 고유한 자기조절 장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캉길렘의 연구는 대부분 의학이나 생명과학의 특정 개념을 대상으로 하는 지극히 전문적인 탐구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그의 사상으로부터 사회적인 의미를 끌어내는 작업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미셸 푸코의 평가처럼 캉길렘의 이름은 그의 전공 영역과는 거리가 있는 다른 분야의 논쟁에서 흔히 발견된다. 그것은 그의 사상이 가지는 확장성을 말해 주는 것이며, 특히 유기체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그의 논의는 이러한 사실을 보여 준다. 그의 사상이 가지는 정치철학적 함의들은 앞으로 더욱 발전시킬 여지가 많은 부분이라 생각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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