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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이후 7년 매달려 … 금아 문학, 새롭게 살피는 기회”
“정년 이후 7년 매달려 … 금아 문학, 새롭게 살피는 기회”
  • 최익현
  • 승인 2022.07.20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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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문학 전집(전 7권)』 책임 편집한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

신문·잡지 등 금아의 초기 미발굴 작품들 찾아내 반영 
영문학자, 번역문학가로서의 피천득 재조명 계기 마련
 

지난 5월 26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서는 조용하지만 뜻깊은 행사 하나가 진행됐다. 피천득문학전집간행위원회와 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한 ‘금아 피천득 문학 전집(전 7권) 출판기념회 및 봉정식’과 ‘금아 피천득 선생 서거 15주기 기념 문학 세미나’였다. 두 행사의 공통분모는 ‘피천득 문학 전집’이었다. 

이 『피천득 문학 전집』(범우사)이 새로운 모습으로 한국 문학계에 나오게 된 데는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영문학·사진)의 공이 컸다. 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 교수는 퇴임 이후 7년을 꼬박 이 전집 작업에 매달렸다. ‘거의 혼자서’ 매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그에게 금아는 어떤 존재이길래 이토록 전집 작업에 매달린 것일까? 

잘 알려져 있듯, 피천득은 1910년 5월 29일 서울 종로 청진동에서 태어났다. 7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0세에 어머니마저 잃은 고애자(孤哀子) 피천득은 문자 그대로 천애 고아였다. 금아 피천득의 삶과 문학, 사상의 지평에서 ‘망국민 의식’과 ‘고아 의식’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 교수는 “금아 문학에는 특별히 일찍 여읜 ‘엄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서정성과 일제강점기에 대한 반항 정신이 교묘하게 배합돼 있다. 금아의 짧고 아름다운 서정시와 수필은 이런 엄혹한 식민지 수탈 시대를 견디어 내면서 피어난 사막의 꽃과 열매들이다”라고 평가한다.

이를 명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자료가 1969년 발표한 시문집 『산호와 진주』다. ‘산호와 진주’는 피천득 삶과 문학의 표상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심해에서 진주 캐기의 의미를 구명한 것과 흡사한 대목이기도 하다. 

정정호 명예교수는?
서울대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밀워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미문학비평 연구와 비평 활동을 병행하면서 이론 비평 영역을 확장하는 데도 이바지했다. 김기림문학상(평론)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문학의 타작:한국문학, 영미문학, 비교문학, 세계문학』 등 다수가 있다. 사진=최익현

2022년 올해는 영문학 교수로 지내며 시인, 수필가, 산문가, 번역가로 활동한 금아 피천득 선생이 태어난 지 112년, 타계한 지 15년이 되는 해다. 지금까지 출간된 그의 작품집은 번역까지 포함한 4권뿐이었다. 일반 대중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고급독자와 연구자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신문, 잡지에 발표했던 초기의 미발굴 작품을 새로이 찾아내면서 금아 문학 전체를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번 ‘문학 전집(7권)’ 간행의 의미다. 

사실 이번 ‘피천득 문학 전집’은 엄밀히 말하면 전 7권이 아니라 전 8권이다. 대담, 좌담, 강연을 모은 『피천득 대화록』도 동시에 출간했기 때문. 대담, 좌담, 강연을 별도의 부록이 아니라 전집의 한 페이지로 잡아도 좋았을 것 같다. 『피천득 대화록』에는 소설가 박완서, 리영희 교수, 그리고 문학평론가 임헌영과의 대담도 실려있다. 책임편집자로 『피천득 문학 전집』 결정판에 도전한 정 교수를 이메일로 만나봤다. 

피천득 선생(오른쪽)과 함께한 젊은 날의 정정호 교수.  사진 제공=시와진실

△금아 피천득 문학 전집은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됐는가?
“저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대학에서 피천득 선생에게 직접 배운 제자로서 또한 피천득의 삶과 문학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독자로서 평소에 일부 독자들만이 피천득을 좋아하지만 문단 전체와 학계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언제나 안타까웠다. 저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여러가지 이유 중 피천득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품전집이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집 편집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가 말년에 피천득 선생과 한국문학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집 편찬이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4권으로 된 작은 판본 전집은 피천득 작품 전체를 담지 못했다. 또한 산문과 번역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 피천득 문학의 전체가 제시돼야 제대로 된 논의와 석·박사급 논문 수준의 연구가 이뤄질 수 있다. 이러한 필요성을 절감하던 중 피천득 선생 서거 15주기에 맞춰 전집 7권을 내놓게 됐다.”

△선생님 개인적으로도 ‘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 등 인연이 각별하신데, 이번 책임 편집을 하면서 거듭 확인, 혹은 재발견한 ‘금아 문학’의 정수라면?
“금아 문학의 정수는 피천득 선생 자신이 밝힌 서정성, 순수한 동심, 고상한 사상임을 다시 한 번 확인 하는 기회가 됐다. 책임편집자의 처지에서 봤을 때, 금아의 삶과 문학의 핵심은 겸손, 순수, 단순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97세까지 장수한 피천득의 문학을 요약한다면 ‘지혜의 문학’이다.”

△전집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홀로 책임 편집이 가능했는지 궁금하다.
“별도의 편집위원회없이 책임편집자가 거의 단독으로 퇴임 이후 7년간 전집 편집 작업을 수행했다. 미국에서 영문학 박사과정 중 훈련받은 정본 텍스트 편집 방법을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자료조사와 자료 입력에는 개인적으로 고용한 조교들의 도움을 받았다.

문학 연구에서 한 작품의 결정적 정본 텍스트 확정은 중요한 선행 작업이다. 시의 경우 단어 한 개라도 시인이 원래 쓴 원문과 달라지면 작품의 뜻 자체가 바뀌는 경우가 생긴다. 영국 대학의 영문학과에서는 오래된 문학텍스트를 확정해 정본을 만들면 석사학위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본 텍스트에 관한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듯하다.” 

피천득 문학 전집(전 7권)과 피천득 대화록

△시집, 수필집, 산문집, 번역시집, 번역집, 번역 단편소설집, 번역 이야기집 등 모두 7권으로 구성했는데, ‘수필집’과 ‘산문집’을 구분한 데도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피천득 선생 자신이 직접 선택한 수필들 이외 글들을 산문으로 분류했다. 산문집에는 동화, 서평, 추천사, 발문, 평설, 논문 등이 포괄적으로 포함돼 있다.”

△기존에 출간된 금아 작품집은 4권을 넘어 7권으로 확장한 것은 ‘새로운 작품’들의 추가 발굴이 있었다는 뜻인데.
“기존 4권의 소전집에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들을 1930~1970년대 간행된 신문, 잡지 등에서 찾아내 이 가운데 상당수를 새 전집에 수록할 수 있었다. 외국 단편소설 번역은 여러 어린이 잡지들에 번역 소개됐던 「마지막 수업」, 「큰 바위 얼굴」 등을 모아 편집했다. 1807년에 찰스 램 등이 지은 『셰익스피어 이야기들』은 1957년 피천득이 번역 출간한 바 있으나 절판되면서 잊혔다. 책임편집자가 현대어법에 맞게 바꾸어 판을 만들었다.”

△한 작가에 대한 온전한 논의와 연구를 위해서는 선행 작업으로 작가의 전체 작품을 모은 정본 결정판이 필요하다. 이번 7권을 펴내면서, 특히 ‘정본 결정판’으로서 손색없게 강조한 부분은 무엇인가?
“책임편집자는 최선을 다해 최초로 실렸던 신문, 잡지 등에서 작품들을 찾아 일일이 대조, 비교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택했다. 또한 모든 작품은 기존 판본들과는 다르게 출간된 연도순으로 배열했다. 해당 작품 뒤 ( )속에 출간연도를 표기했다.”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

△전집 출간 후 출판기념 봉정식과 문학 세미나가 있었다. 출판기념식과 세미나에서 거듭 확인된, 금아 피천득의 문학사적 의미를 매긴다면.
“피천득 선생은 일반 독자들에게 주로 수필가로만 알려져 있다. 이번 전집 7권 출간으로 시인 피천득, 번역문학가 피천득의 면모가 문단과 학계에서 새롭게 조명되기를 기대한다.” 

△선생님께서도 오랫동안 영미문학이론과 번역 작업에 매진해오셨다. ‘수필가’로서의 금아 선생이란 면모 외에, 영미문학 연구자로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영문학 교수로서 피천득의 모습을 좀더 다각화해서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다수의 한국시 영역을 포함해 이번 문학 전집의 4~7권 번역집이 보여주듯이 번역문학가 피천득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나아가 피천득의 영문학 작가론과 작품론은 초기 한국 영문학 연구사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퇴임 후에도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향후 계획도 궁금하다.
“책임편집자는 2017년에 피천득 서거 10주년을 맞아 『피천득 평전』을 서둘러 낸 적이 있다. 이제 피천득 문학 전집 7권을 새로 출간했고, 그간 추가로 연구된 자료를 토대로 개정증보판 『피천득 평전』을 준비하고 있다. 좀더 종합적인 평전이 되도록 세심히 살필 예정이다. 또한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일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시, 수필, 산문, 번역 가운데 작품들을 엄선해 한 권으로 된 『피천득 문학 선집』을 내고 싶다.

앞으로 과업 중 하나는 ‘피천득 문학상’ 제정이다. 금아 선생은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상을 극구 반대 하셨다. 그러나 시간도 많이 흘렀고 상황도 바뀌었다. 피천득문학 선양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 판단된다.”

△끝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다면.
“인터뷰를 마치면서 독자여러분께 부탁드릴 일이 있다. 우선 서울 잠실 롯데월드 3층 민속박물관 옆에 금아 피천득 기념관을 소개한다. 선생이 타계한지 1년 후인 2008년에 조성 됐다. 50평 남짓 되는 그곳에는 피천득의 서재와 침실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고 각종 사진자료, 졸업증서, 저서 등등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입장료도 없으니 한 번 방문 관람을 부탁드린다. 요즘 어린이들의 단체 방문도 있고 문인들이 그곳에서 시낭송 등 모임을 가지고 있다.

피천득은 서울 서초구 구반포에 만년에 30년 이상 거주했던 문인이다. 이에 서초구청에서 서울 강남 버스터미날과 4·9호선 동작(국립현충원)역까지의 반포천변에 ‘피천득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산책로 중앙에 피천득 좌상과 대형작품 전시 현판이 있다. 산책로 곳곳에 작품들이 소개돼 있고 긴 의자들이 설치돼 있다. 기회되실 때 방문하고 산책을 즐기시기를 권한다.”

최익현 편집기획위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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