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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생활하는 이들…농민의 계층 이동 탈출구
배에서 생활하는 이들…농민의 계층 이동 탈출구
  • 안치영
  • 승인 2022.07.21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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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중국 운하에서 살아가기: 선민(船民)의 삶과 인지체계』 류자오후이 지음, 장정아・안치영 등 옮김 | 인터북스 | 240쪽

201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 대운하
사회문화적 차별 있지만 높은 수입 받는 선민

중국의 대운하는, 강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중국에서 거대한 중화 제국의 통합과 안정을 유지시켜 온 물류 운송의 대동맥이었다. 남북조시대 이후 강남(양쯔강 이남) 개발이 시작되고 점진적으로 강남이 경제 중심지가 되어감에 따라 수당제국 이후 대운하는 강남의 풍부한 물산을 북중국으로 운송하여 중국의 번영과 통합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근대 시기 철도와 기선의 등장에 따라 운하는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잊혀졌다.

 

그러한 운하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4년 대운하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부터 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메워졌던 부분을 복원하고 운하를 관광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에서 본격적인 운하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과거의 번영은 사라지고 역사적 유산으로 기억되는 운하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의 ‘화석’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운하에서 값싸고 무거운 건축자재 등을 운송하면서 배에서 생활하는 선민(船民)의 존재가 그것이다.

『중국 운하에서 살아가기: 선민(船民)의 삶과 인지체계』는 바로 그들의 일상생활과 삶에 대한 중국 저장(浙江)대학교 류자오후이 교수 연구팀의 조사 기록이다. 문화인류학자인 류자오후이 교수 연구팀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대운하 항저우 구간을 조사했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 특히 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선민(船民)들에 대해 2017년부터 수행한 현지조사 내용을 중심으로 편역한 것이다. 역자들 중 장정아 교수와 필자 그리고 리페이 박사는 2014년 저자 류교수와 함께 중국 운하를 방문하여 운하의 의미와 변천에 대해 토론한 바 있다.

선민에 대한 조사는 크게 선민과 운하 전문가에 대한 인터뷰, 선민들의 운송선에 탑승하여 수행한 생활 현장과 작업 현장에 대한 참여관찰, 그리고 설문조사 등 세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설문조사는 선민들의 생계 방식, 사회이동, 운하의 환경 보전, 운하 유산 그리고 선민의 일생생활 등을 조사원들이 직접 일대일 면담을 통하여 수행하며 그들과 소통했다.

이 책의 조사에 의하면 대운하 항저우 구간의 경우 세습 선민은 20%에 불과하고 2/3가 농민이 전업(轉業)한 1세대 선민이며, 87%가 중졸 이하로 학력이 낮고 58%가 운하 유역이 아닌 안후이성 출신의 외지인이었다. 이런 상황은, 선민들이 생활하는 선실 온도가 여름에는 50도가 넘어가고 손님들에게 대접할 수 없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열악한 노동 환경과 더불어 선민에 대해 여전히 잔존하는 전통적인 사회문화적 차별과 관련된다. 선민들은 다시 배를 소유한 선주(船主)와 피고용자인 선공(船工)으로 구분되는데, 선주의 경우 연 수입이 3-70만 위안으로 농민은 물론 도시민보다도 훨씬 높았으며, 허드렛일을 하는 일반 선공도 월 5천 위안 안팎으로 높은 편이었다. 이렇게 소득이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작업 환경과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직업 만족도는 매우 낮아, 조사대상 선민의 90% 가까이가 자녀가 선민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농민들이 선민되면서 과거의 습속 사라져

배가 선민들의 작업 공간이자 생활 공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사회주의 혁명 이후 노동자계급으로 정식 인정받으며 과거의 신분제 제약에서 벗어났고 혼인도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농민들이 선민이 됨에 따라 음식, 관혼상제, 금기 등에서 과거의 습속이 사라지고 있고, 출신 지역 농민들과 같은 습속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운하에는 여전히 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습 신분도 아니고 과거 습속도 그대로 유지하지 않고 있다. 열악한 환경과 사회문화적 차별로 인해 대부분이 떠나려 하지만 비교적 높은 수입으로 인해, 학력과 기술수준이 낮은 농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계층 이동의 탈출구가 되고 있다. 이에 저자는 운하 항운업의 경제적 수익성이 유지된다면 언제든지 새로운 인력이 선민집단으로 들어오려고 하므로, 선민은 소멸해 가는 집단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대운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미지=위키백과

역사 속 선민은 중국 남북 물류의 주력군이자 무협의 주인공이었지만, 현재의 선민은 말 그대로 자신의 몸만으로 가난에 맞서는 한 모퉁이에 있는 중국인의 자화상이다. 중국에는 우주선에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오래된 운하에서 관습은 변하되 과거와 유사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은 이들 중 누구 하나가 아니라 모두가 합쳐진 것이다. 이 책이 한때는 역사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14억을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한 모퉁이에서 살아가는 그러한 중국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중어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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