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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퍼를 닮은 ‘쇼미더 비대면 강의’
랩퍼를 닮은 ‘쇼미더 비대면 강의’
  • 정한울
  • 승인 2022.07.1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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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⑨ 정한울 광운대 교수
정한울 광운대 전자공학과 교수
정한울 광운대 전자공학과 교수

2019년 9월, 처음 교수가 되어 강의 경험 딱 한 학기, 그리고 맞은 2019학년도 겨울 방학. 코로나가 우리를 덮쳤다. 당장 다음 봄 학기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당시 한 학기 경험한 나의 수업 후기는 다음과 같았다. 

“어렵고 재미없는 전공 수업.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잘 따르는 것이 매우 어렵더라”

이 매운맛을 딱 한 학기 봤을 뿐인데,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강의 환경까지 극도로 안 좋아진 것이다. 나 말고도, 수강생 입장에서는 강의자와 상호작용의 기회가 좁아지면서 (안 그래도 높지 않았을) 공부 의욕과 성취도가 낮아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경험이 많지 않지만, 대학교 전공 강의는 생각보다 고도의 작업이었다. 강의가 잘 되려면, 수업 전에는 혐오를 불러오는 어려운 전공 내용에 학생들이 그나마 발이라도 담글 수 있게, 취향과 눈높이에 맞는 강의 내용을 준비해야 한다. 수업 중에는 장시간 집중할 수 있게, 눈을 마주치며 무언으로 호응과 관심을 구걸하고, 수업의 박자와 내용을 시시각각 조절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은 옛날에 배웠던 내용은 대부분 까먹기에 끊임없이 앞서 다뤘던 내용을 상기시켜야 한다. 이해가 되지 않은 강의 내용은 학생이 바로 질문해 깨달을 수 있도록 수강생과 강의자 간 소통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험은 변별력이 있는 충분한 난이도로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특히,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이 억울하지 않게, 부정행위를 원천 차단하면서. 

정한울 교수는 "High Tension 유지"라는 문구를 강의 녹화를 하는 책상 위에 붙여놓았다.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스스로 계속 높은 긴장 속에 있어야 함을 잊지 않기 위해 붙여 둔 것이다. 사진=정한울

이걸 비대면으로? 어렵다. 아무 대책 없이 대면 방식처럼 비대면 강의를 운영했다가는, 수업의 급격한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학생들이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학생에게 반도체 필요성 ‘영업’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 나는 나름 방법을 강구했고, 강의에 적용했다. 그 중, 지난 비대면 학기들을 겪으며 나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 방법을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강의 중에 수강생들에게 강의 내용으로 영업을 했다. 즉, 지금 이 내용을 왜 배워야 하나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여 강의 내용을 구성했다. 마치 안배우면 큰일 날 것처럼. 

실용 학문인 전자공학 특성상 수업 내용은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전자 제품의 개발에 활용된다. 앞으로 배울 수업 내용이 수강생들이 접하게 될 제품 개발 환경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우선 설명하며, 중요성을 강조해 비대면 환경 속에서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정한울 교수는 실제 제품에 들어있는 부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학생들이 공부할 유인을 만들어 주었다. 사진=정한울

수강생들이 접하는 친숙한 전자 제품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전공 지식 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전공 내용이 왜 필요해서 탄생했는지 그 배경을 배워야 한다. 탄생 과정부터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훨씬 더 쉽고 능동적으로 수업을 받아들일 수 있다. 가령, 반도체의 구조와 동작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통상의 방식보다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스마트폰의 복잡한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가 필요한지 단계적으로 설명했고, 그 목적을 위해서는 지금 보고 있는 반도체 같은 구조를 띠고 있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수강생 입장에서는 일차적으로 “아 반도체가 있어서 컴퓨터가 나 대신 궂은일을 할 수 있는 거구나, 반도체로 돈 좀 벌 수 있겠네!”라고 생각하며 중요성을 절감하고 더 열심히 공부할 유인이 생길 것이다. 또한, 필요성을 먼저 강조했기 때문에 반도체 구조를 보면서 “아 이게 이렇게 생긴 건 ~ 이런 탄생 배경이 있었지”라며 개념을 그야말로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이에 따라 어려운 비대면 환경 속 수업 참여와 학습 성취를 높일 수 있다.

 

속사포 강의·새벽 카톡으로 학생 공부의욕 자극

우선 대면 강의 대비 강의 중 말하는 속도를 1.5배는 빠르게 했다. 학생들은 온 집중을 쏟지 않으면 강의를 따라올 수 없다. 강의하는 사람이 말이 느리면 수강생도 긴장을 늦추기 마련이다. 항상 높은 긴장감을 유지하며 의식적으로 말을 빠르게 진행했고, 불필요한 내용의 공백을 최소화했다. 

정한울 교수의 강의에 대한 학생의 평가. 사진=정한울

강의 외적으로도 수강생들에게 긴장감을 주입했다. 학생들은 단톡방에서 수업 공지만 하는 줄 알았겠지만, 아니었다. 시험에 가까워질수록 지금 공부해도 늦지 않았다는 식으로 공부와 질문을 끊임없이 독려했다. 남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보여줬다. 열심히 듣는 학생들의 영상 재생 시간과 과제 답안을 은근히 공유했다. 수업 시간 외 들어온 수준 높은 질문 내용과 답변을 공유했다. ‘네 동기들은 비대면인데도 이렇게 다 잘 따라오고 있다’고.

말이 빠르면 수업 긴장감은 유지할 수 있지만, 자칫 이해를 못해서 수업을 못 따라갈 여지가 크다. 하지만 비대면의 장점은 녹화 영상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강생에 따라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있으면 반복해서 듣거나 속도를 조절해서 들을 수 있게 하였고, 수업을 원하는 시간에 본인에 맞는 진도로 듣도록 출석을 체크하지 않았다. 

출석 체크도 안 하는 데다가 다른 수업에 비해 강의 시간은 짧은 편이다. 학생들은 금방 듣겠네, 나중에 몰아 들어도 되겠네 라고 생각했겠지만, 나중에 보면 막상 강의 재생 시간은 강의 영상의 2-3배는 된다. 압축된 강의 내용과 빠른 말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반복해서 듣게 되고 결국 더 많은 양을 배우게 된다. 잘했다. 

정한울 교수의 강의에 대한 학생의 평가. 사진=정한울

대면 수업에서도 수강생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질문을 꺼려한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질문하기에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학생들이 가장 친숙하고 눈치보지 않고 원활하게 질문을 하기 위해 가장 편리한 수단인 카톡을 활용했다. 대답은 내가 편한 시간에 할 테니 주말, 새벽 상관없이 카톡으로 질문을 하라고 주문하였고, 질문한 수강생에게는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도록 좋은 질문은 칭찬하고 언제든 다시 질문하라고 말해주었다. 특히 시험 전날은 밤새 질문을 받아준다. 이때 정말 많은 질문이 오고 가게 된다. 이래도 공부를 안 하고 모르는 것을 질문 안 한다? 쉽지 않다. 

 

상상력 뛰어넘는 부정 방지 위해 시험은 대면으로

시험 때가 되면 모든 예년 기출 문제를 공유하고, 시험만은 대면으로 어렵게 출제했다. 

수업에서 시험은 매우 중요하다. 시험에 의한 평가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이뤄지지 않으면 공부할 의욕이 매우 떨어진다. 비대면 수업환경이라고 시험마저 비대면으로 보면, 다양하고 상상력을 뛰어넘는 부정행위 방법에 노출되어 버린다. 그래서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강의실을 3개 이상 대여하는 상황에서도 시험은 대면으로 시행했다.

또, 족보라고 불리는 기출을 수강생 중 일부만 공유해서 불공정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모든 기출 문제를 답안과 함께 공유하였다. 기출만 공부하면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 전혀 그럴 수 없도록 시험은 매번 새로운 문제로, 만점이 1명 혹은 0명만 나오도록 변별력을 갖도록 어렵게 출제하였다. 

다 같이 어려운 공정한 시험을 추구하여,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허무하다”라는 느낌이 아닌 “공부하는 만큼 성적을 받을 수 있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게 노력했다. 이러한 내 노력은 몇 우수한 학생에게는 “만점을 한번 받아볼까?”라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도전은 거의 모두 실패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공부는 엄청 잘하게 되고, 실력은 확실히 좋아진다.

이상의 방법으로 비대면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이제는 서서히 수업이 전면 대면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비대면 수업을 겪으면서 생긴 나름의 재산과 노하우는 대면 수업에도 적극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강의는 늘 새롭고 어렵다. 수강생들이 좀 더 쉽고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정한울 광운대 전자공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19년부터 광운대 전자공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직전 학년도에 3강좌 이상을 담당하고 강의평가 점수가 4.0 이상인 사람을 선발해 주는 광운대의 ‘베스트티쳐 상’을 2021년도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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