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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현대사 강독’ 시간에 소환한 아큐
‘중국 근현대사 강독’ 시간에 소환한 아큐
  • 조대호
  • 승인 2022.07.19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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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학은 지금
조대호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

이번 학기에 들은 ‘중국 근현대사 주문헌 강독’은 유학 생활 5년 동안 수강한 수업 중에 가장 나를 괴롭혔던 과목이었다. 강의를 맡은 교수님은 중국에서 중국 근현대 재난과 환경사로 저명한 교수님인데 학과에서는 제일 까다롭고 학생에 대한 요구치가 높은 분이다. 어찌나 박학하시던지 본인 전공 이외 부분에 대해서도 늘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학생이 잘 모르면 정성스런 타박(?)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상 모든 우리 학과 학생들에게 박사 1학년 2학기는 머리가 하얘지거나 머리털이 빠지는 등의 증상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혹시나 과목을 포기할 생각은 꿈도 꾸기 어렵다. 왜냐하면 ‘필수과목’이기 때문이다.

‘주문헌 강독’ 수업은 중국 근현대 명저나 연구서들을 매주 읽고 학생 한 명씩 발표하는 방식이다. 단순 독후감을 학생들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저자를 향한 비판점을 찾아내야 하고 동의한다면 그에 대한 근거도 제시해야 했다. 그리고 모든 학생의 발표가 끝나면 나머지 학생들은 앞의 발표한 학생의 의견에 찬·반을 표시해야 한다. 교수와 학생들로부터 쏟아지는 질문세례에 교실 현장은 지난날 대국민 오디션 방송인 슈퍼스타K를 방불케 했다. 열댓 명에 가까운 학생 중에 유일하게 외국인이었던 내게 교수님께서는 비교적 관용을 베풀긴 했지만, 그마저도 힘겨울 때가 많았다.

나는 특히 중국 근현대 경제사와 유물사관을 통해 중국사를 보는 관점인 저서들을 대단히 어려워했다. 경제사는 내가 수학을 못 했던 탓도 있겠지만 유물사관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는 너무나 생소했다. 게다가 걸핏하면 자본가와 노동자, 농민을 나누기 일쑤였고 노동력을 계량화했다. 하지만 계속해 읽다보니 유물사관에서 사용하는 계급분석도 결국에는 역사를 해석하는 일종의 방법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고 좀처럼 난해했던 부분들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힘든 과정은 아마도 내게 유물사관을 본격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준비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여전히 계급분석의 관점으로 역사를 분석하는 것이 낯선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번 학기 가장 인상이 깊었던 수업은 프레시던트 두아라의 『민족국가로부터 역사구하기(민족주의언어와 중국현대사 연구)』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두아라의 선형과 복선의 역사관에 대한 내용을 발판 삼아 양안과 한반도의 통일이 앞으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고 이 둘이 각기 통일됐을 때, 가장 큰 수혜는 누가 입는지 물었다. 수혜자가 국민 전체인지, 정부와 집권당처럼 기득권인지 말이다. 나아가 통일이 돼도 서민들은 결국 『아큐정전』의 아큐마냥 시대적 과제는 외면한 채 정신 승리만 하는 게 아닌지 따졌다. 국가와 위정자들은 통일 후 경제, 일자리, 국가 발전이라는 달콤한 말로 우리를 현혹하려들 것이라며 마무리 발언을 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면 나 역시 높은 지식을 점유한 기득권에 속하게 돼, 통일됐을 때 갈 수 있는 곳은 많아진다. 하지만 일반 국민 다수는 여전히 아큐와 같은 상황에 부닥칠지 모른다. 중국 학생 한 명은 대만과의 통일은 당연한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대만에서 여러 물자가 대륙으로 들어오면 좋지 않겠냐”는 말은 나를 경악하게 했다. 

통일은 절대 5대5의 이상적인 비율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인식, 즉 부지불식 우열을 나누는 생각은 열에 해당하는 나라 사람들이 이를 보고 좋아할 수 있을까? 비단 이 친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도 이와 같다.

나는 석사 과정 동안 공산주의에 대단히 매료됐다가 레닌주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무정부주의로 돌아서며 마르크스주의의 일부를 지향하고 있다. 어떤 사회나 집단 혹은 민족이라는 커다란 힘이나 담론에 의해 개인이 구속받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고 있다. 두아라가 말했듯이 현대 사회 우리는 결코 민족이라는 거대한 틀을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두 글자에 가려지고 매몰된 역사적 사실들은 ‘가치’가 없는 것인지? 그 가치 척도는 누가 그리고 어떠한 권위를 가지고 감히 결정할 수 있는지, 여전히 생각 중이다.

 

조대호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베리아지역 화교와 한인 공산주의자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근현대사가 전공이다. 주요 연구내용으로는 중국공산당사, 국제공산주의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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