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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신화 저편의 얼굴은?
과학, 신화 저편의 얼굴은?
  • 박진희 국민대
  • 승인 2006.02.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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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서평: 『골렘』(해리 콜린스 외, 새물결 刊, 2005), 『미래』(수전 그린필드, 지호 刊, 2005)

우리가 겪고 있는 과학에 대한 혼란상은 어디서 유래되고 있는 것일까. 현대 과학의 속성이란 무엇일까. 최근 나란히 국내에 번역 소개된 두 권의 책은 서로 약간은 다른 관점에서 현대 과학을 둘러싼 우리의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이 두 권의 책은 과학사회학자인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핀치의 저작「골렘」과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수전 그린필드의 저작 「미래」이다.

앞의 책은 상이한 과학 연구 분야들에서 행해진 실험들을 둘러싼 과학계의 논쟁을 자세히 전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과학 일선에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경험할 수 있게 하고 결과적으로 과학의 실체를 접하게 해준다. 두 번째 책은 이와 달리 인간의 본성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미래 과학기술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현대 과학기술의 의미를 묻게 한다.

II

과학지식에 합리적인 내적 원리가 존재함을 부정하는 지식사회학의 스트롱프로그램 전통을 따르는 콜린스와 핀치는 「골렘」에서 현대 과학이 정말 어떠한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저자들에 따르면, 과학은 유대 신화에 나오는 ‘골렘’의 이미지-인간이 만든 창조물로, 실수 투성이의 거인-을 닮았다. 즉, 골렘 과학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솜씨와 기술에 의존하여 실수도 저지르는 그런 과학이다.

이런 불완전한 인간 활동으로서 과학의 모습은 실험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논쟁이 이어지는 곳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들 과학 논쟁들은 과학이 이론적 예측을 명확하게 진술하고 그런 다음 그 예측을 검증하거나 반증하는 식으로 진행되지도 않으며, 결정적인 실험이나 데이터가 논쟁 종결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님을 보여준다.

콜린스와 핀치가  이 책에서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7가지 과학 논쟁 사례-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는 두 가지 실험, 파스퇴르와 푸세의 자연발생설에 관한 논쟁, 상온 핵융합, 중력파 탐지, 태양의 사라진 중성미자, 채찍꼬리도마뱀의 성생활, 기억의 화학적 이전에 관한 벌레 실험에 관한 논쟁-는 전통적인 이미지와 달리 과학 이론이 사회적 해석, 과학자들의 권위 등 사회적 맥락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혀준다.

상대성 이론은 흔히 마이켈슨-몰리 실험과 에딩턴의 관측에 의해 타당성이 입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역사적 문헌들은 이들 실험이나 관측을 이론의 결정적 증거로 삼을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들 실험은 상대성 이론이 확고한 이론으로 정립되고 난 후 ‘회고를 통한 재구성’에 의해 증거로서 해석되고 있었다. 실험에 의해 이론이 입증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력파 논쟁의 경우를 보자. 중력파를 탐지하기 위해서는 알맞은 탐지기를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알맞은 탐지기라는 것은 또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는 다시 탐지기가 중력파를 탐지하는가 하는 물음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다. 즉, 중력파 탐지기의 기능과 중력파 존재 여부 결정이 같은 과정이 되는 것인데, 이는 실험 그룹 간의 협상에 의해서 결정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과학 논쟁이 데이터와 같은 과학적 요소에 의해서 종결된다는 과학에 관한 우리의 일반 이미지는 폐기되어야만 한다.

상온핵융합의 예는 줄기세포 연구자들과 비슷한 우선권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 실험 재연의 어려움, 확립된 이론이 부재할 때 나타나는 실험 결과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핵물리학자와 전기화학자 그룹간의 알력 등이 과학 논쟁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들이 들려주는 과학 일화들은 제한적이다. 먼저 선택된 사례들이 과학 논쟁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니라는 점이다. 기억의 화학적 이전 실험과 같은 것은 일종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인데, 이를 통해 얼마나 현대 과학을 성찰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여기 사례들처럼 데이터나 실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논쟁들도 있었지만, 과학 논쟁이 그런 경우에만 한정되지는 않았다. 

과학자들이 특정 이론 연구나 실험에 매달리는 데에는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기업이나 정부, 특정 과학 담론의 생성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험을 둘러싼 미시적인 논쟁들이 주로 다루어진 이 책의 사례들에서는 이런 현대 과학의 중요한 단면들이 보여지지 않는다. 최근 과학학 연구들은 과학 이론이 인종이나 젠더와 같은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도 하고, 이와 같은 요인들에 의해 특정 이론이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되기도 함을 보여준다.

III

골렘과학이 인간 창조물로서 과학을 보자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면, 「미래」는 미래 과학의 예측과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다루고 있다. 수전 그린필드에 따르면, 21세기의 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 공학 기술들은 영리한 주방이나 의류 등 우리 물질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정보 기술의 혁명은 ‘직업’ 개념이 사라지고 스스로의 일을 스스로 계획하는 단계에 도달하게끔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은 한편으로 직접적인 인간 교류를 회피하고 사이버상의 교류만을 지향하는 아동들의 급증, 수동적인 ‘재미’에 초점이 맞추어진 교육의 도래 등의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나아가 저자는 무엇보다 현재 기술의 발전이 지금까지 인류 문명의 바탕이 되어온 ‘개인적 에고’를 침식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정보 기술과 로봇공학의 발전으로 개인의 뉴런에까지 네트워크가 연결되게 되고, 이로부터 외부 자극에 그저 자신을 맡기는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는 ‘관능적인 상황’에 자기를 맡기는 삶의 형태인 축구 훌리건들의 광신주의나 테러가 인간의 행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개인성의 보존을 지향하는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합의를 통해, 우리의 기술을 그런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들어 새로운 기술들의 주요 특징인 편리한 접속 가능성과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를 최대한 이용하여 개발도상국의 삶의 물질적인 질을 높여, 이들이 테러에 빠져들 위험을 방지할 수도 있다.

미래 과학에 대한 예측서들이 흔히 보이는 기술 낙관론이나 또 다른 극단의 형태인 기술공포론을 지양하면서, 저자는 우리 인간 사회의 합의에 바탕하여 과학기술의 미래를 인간이 설계해가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현대 과학이 가져올 경제적인 결과에만 주목하여, 공동체 사회에 대한 영향이나 개인에 미칠 영향에 상관없이 일단 과학은 발전시켜야 한다는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균형 잡힌 예측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대부분의 미래서들이 보여주는 과학 낙관주의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다가올 미래 과학은 내적으로 발전의 한계에 부딪치는 일은 없다. 다만 현존하는 사회 불평등에 의해 과학의 남용이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초래되는 위험의 대처로 언급되는 사회 합의의 바탕으로 ‘개인적 에고’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 개념은 불분명할 뿐이다. 사회 역사적 맥락을 결여한 테러리스트에 대한 분석과 이를 ‘개인적 에고’에 반하는 새로운 ‘에고’의 모델로 제시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저자소개

필자는 베를린공대에서 ‘서베를린 가정 폐기물 처리 시스템의 변천사: 1945~1990’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근현대 과학기술과 삶의 변화’, ‘생태적 경제 기적’ 등의 저서와 ‘과학기술관련 시민사회 운동의 역사와 그 역할’, ‘일제하 주택개량 담론에서 보여 지는 근대성’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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