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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심리학
불확실성의 심리학
  • 최승우
  • 승인 2022.07.11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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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힘 페터스 지음 | 이미옥 옮김 | 424쪽 | 에코 리브르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의 뇌와 신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랑, 기쁨, 분노, 공포, 시기심, 비애 등은 인류만큼이나 오래된 감정이다. 하지만 시대별로 저마다의 요구와 고유한 감정이 있다. 흔히 이런 것들은 그 시대만의 새로운 도전과 압력의 분명한 징후이다. 내과의사이자 뇌 연구가인 페터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심도 깊은 감정을 분석한다. 바로 ‘불확실성’이다.
그는 이 책에서 불확실성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의학적으로도 이 감정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불확실성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지속되면 견디기 어려울뿐더러 스트레스 연구가들이 설명하는 ‘유독한’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즉 흔히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대수롭지 않은 감정으로 치부하지만, 불확실성은 심각한 병을 유발할 수 있다.
페터스는 불확실성이 우리의 무엇을 바꾸고, 왜 우리를 병들게 할 수 있는지 의학적·심리학적·사회적 맥락을 설명한다. 더불어 우리가 어떻게 불확실성을 잘 방지하고 삶의 많은 영역에서 불확실성을 새롭게 평가하며 이를 통해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생명체의 역사만큼 오래된 감정 ‘스트레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 불확실성에 의한 스트레스를 다룬다. 스트레스는 모든 생명체가 알고 있는 상태이며, 심지어 단세포생물도 의식적으로 체험하지는 못하겠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불안한 태도를 보인다. 스트레스는 생명과 관련해 중요한 것이 부족하거나 생존이 위험할 때는 반드시 나타난다. 그래서 어쩌면 스트레스는 생명체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뇌과학의 관점에서 무엇이 우리의 불확실성을 변화시키는지, 불확실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언제 좋고 언제 나쁜지, 왜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더 잘 다루는지, 무엇이 우리를 불확실한 상태에 머물게 하는지, 그리고 의식적으로 불확실성을 줄일 방법은 없는지를 설명한다.
불확실성은 다음과 같은 근원적 질문과 연관이 있다. “미래에 나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재함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 나는 여러 가지 전략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만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알 수 없음”일 때 우리는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빠진다. 이때 머리를 모래에 처박는 타조처럼 순간만 모면한다거나 타인에게 책임을 맡기는 전략을 취하면 처음에는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정보의 업데이트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결국 타인에게 예속되어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만다.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 아니다. 나쁜 것은 불확실성이다.

스트레스라는 개념은 80여 년 전에 등장했다. 이때부터 스트레스는 주로 부정적 뉘앙스를 띠었지만 사실 스트레스는 좋은 것이다. 스트레스는 나에게 내가 문제를 인지했으며, 내가 싸우고 있는 중이며, 행동하는 중이며, 해결하고자 하고,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의 적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바로 불확실성이다.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 싸워야 하는 적은 염증이 아니라 박테리아인 것과 같은 이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분 나쁜 감정이 일어나고, 이때 뇌는 최고의 전략을 발견하도록 절약 모드에서 학습 모드로 바뀐다.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창의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출구 없는 스트레스는 유독하고, 그 결과 우울증·심근경색 같은 최악의 상태를 가져오므로 주의해야 한다.

습관화하는 사람 vs. 습관화하지 못하는 사람

상사의 지속적인 압박처럼 반복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습관화를 통해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반면, 동일한 강도로 어쩌면 점점 더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동맥경화와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 저자는 이 둘의 차이는 유전적 요인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습관화가 무조건 좋은 것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의 가장 큰 단점은 뇌가 변화하거나 계속해서 배우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습관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시점까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커다란 상위 목표를 절대로 수정하지 않고 뇌를 풀가동한다. 반드시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등반가가 되어, 등산하는 동안 주변 풍경을 전혀 즐기지 못한다. 이들은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이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생각이 뱅뱅 돌고, 고민에 고민을 하고, 걱정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완벽주의, 번아웃 신드롬을 겪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예민한 사람이 살이 찌지 않는 이유

신체와 뇌는 에너지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다. 스트레스 상황일 때 뇌의 에너지 요구량은 급격히 증가해 뇌가 에너지의 4분의 3을 쓰고, 신체에 4분의 1을 남겨둔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많이 먹는데도 살이 찌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 뇌는 포도당을 원치 않고 잉여 에너지를 신체에 돌려주므로 이런 사람은 살이 찌게 된다.
습관화 이후에는 상황이 뒤바뀐다. 이런 사람들의 뇌에서는 평균 이하의 노르아드레날린이 투입되기 때문에, 뇌는 에너지의 4분의 1만 요구하고 나머지 4분의 3을 신체에게 준다. 습관화 이후 뇌는 일종의 굉장한 절약 모드로 작업하므로 잉여 에너지가 신체에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신체 조직은 남아도는 포도당을 그냥 버리거나 배출할 수 없다. 그 결과 습관화를 한 뒤에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체중이 늘어나게 된다. 이는 피하지방층의 증가로 나타난다.

좋은 스트레스의 세 가지 조건

저자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능력에 따라 세 유형으로 구분한다.
우선 좋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사람이다. 이들은 유쾌한 가족 관계 속에서 살며, 갈등과 도전을 해결해본 경험이 있다. 또 생존을 위한 걱정이나 심리사회적으로 유독한 스트레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이나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가까운 가족이 없다. 이들은 날씬한 유형이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기대 수명도 높다.
두 번째 유형은 심리사회적 스트레스의 결과로 습관화를 한 사람이다. 이들은 목표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하지 않으며, 원래 정한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만족함으로써 스트레스로부터 가시를 뽑아내버린 부류다.
세 번째 유형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습관화를 할 수 없는 유형이다. 이들은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압박감이 점점 견딜 수 없게 되더라도, 자신이 촘촘하게 설정해둔 목표를 위한 기대를 달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이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긴장하고, 심지어 과도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이들은 기분에 좌우되며 우울증에도 잘 빠지고 내면에서는 불확실함을 느끼고 흔히 자신에게 불만을 품는다. 이 유형은 몸 전체의 체중은 줄어들지만 복부(스트레스를 받은 뇌의 에너지 저장고)만 살이 찐다.
저자는 도전이나 갈등이 좋은 스트레스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세상이 믿을 만하고 불확실성도 적다. 갈등은 해결할 수 있으며 과제들도 자신의 능력으로 처리할 수 있다.
둘째, 가족·친구·동료 들로 이루어진 사회 망을 잘 구축하고 있다. 내 가치는 존중받고 있으며, 내가 하는 일도 인정받고 있다. 
셋째,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으며 생존과 관련해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경제적 수단을 충분히 가지고 있고, 걱정 없이 사는 환경에 있다. 나와 내 가족은 건강하다.

공감-신뢰-확실성의 선순환이 자리 잡으려면?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불확실성과 안전하지 못한 상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리하여 공감, 신뢰, 확실성이라는 사이클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도와준다.
타인에 대한 상호 공감과 신뢰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사람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곤경에 처한 다른 이들을 공감하고 도와준다. 거꾸로 스트레스와 불확실성 상태일 때는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사회적 결속력 측면에서 기꺼이 나누려는 분배 역시 중요하다. 사람들이 스스로 확실하다고 느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정보다. 사회적 평등 역시 상호 간의 신뢰를 지원해주고, 이는 또다시 안전을 체감하는 사람을 늘려준다.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등 사회적 평등이 잘 갖춰진 사회에서는 시민의 60∼70퍼센트가 주변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고 한 반면, 포르투갈·싱가포르·미국처럼 사회적 평등이 잘 갖춰지지 않은 사회에서는 10∼35퍼센트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할수록 더 공정하게 분배한다

경제학자 베르너 귀스는 1982년 사람들의 경제적 결정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연구를 실시했다. 분배와 관련한 “최후통첩 게임”이다. 이 게임은 사람들이 분배를 할 것인지, 한다면 얼마나 분배하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A는 이 실험을 시작할 때 특정 금액을 받게 되고, 이 돈을 B와 나눠야만 한다. 자신이 얼마를 갖고 상대에게 얼마를 줄지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는 사소한 장애물이 있는데, B가 자신에게 분배된 할당량에 찬성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일 B가 자신의 할당량을 거부하면, 두 사람 다 돈을 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실험에 참가한 A가 자신이 받은 10만 원을 B와 나눠야 한다고 해보자. 만약 B가 자신의 할당량이 너무 보잘것없어 받지 않겠다고 하면 둘 다 돈을 가질 수 없다. 이때 A는 B에게 얼마를 나눠주는 게 적당할까? 다양한 문화권에서 반복 실험하고, 영장류에게 먹이를 나눠 먹게 해본 결과, 최적의 분배는 40퍼센트로 나타났다. 즉, A가 B에게 4만 원을 주면 둘 다 불만이 없게 된다.
그런데 이 게임을 서로 돕는 것에 익숙한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실시했을 때는 50퍼센트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이로부터 협력을 잘하는 사람은 사회적 결속력에 민감하고 이런 가치를 자신들의 가치 체계에서 상위에 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험자들이 우울하거나 비만(불확실의 결과로 나타나는 특징)인 경우에도 50퍼센트라는 같은 결과가 나온다. 불확실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결속력은 특히 중요한데, 자신들도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결속이라는 망을 위협하지 않기 위해 특히 공평한 분배가 유지되는지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자들은 이 게임에서 많은 경우 돈을 나눠 갖지 못했는데, 상대(B)가 너무 화가 나서 적은 금액을 받느니 차라리 A를 벌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사회적 능력이 부족한 원인은 일종의 사회적 우월감에 있다. 즉, 부자이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에 따른 행동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선순환 사이클의 방해꾼, 어둠의 3인조

저자는 공감-신뢰-확실성 선순환 사이클의 방해꾼으로 어둠의 3인조(마키아벨리즘, 나르시시즘, 정신병)를 꼽는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어둠의 3인조는 권좌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료, 배우자, 가족, 친구, 이웃 등 우리의 일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특히 연인 관계에서 어둠의 3인조는 실력을 발휘한다. 그들은 상대에게 심리적 폭력을 행사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장본인은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애인을 불확실한 상태로 빠뜨려 마비시키고자 한다. 어둠의 3인조 성향이 강한 사람은 ‘게임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머리가 깨어질 정도로 사랑하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어둠의 3인조는 사기꾼, 거짓말쟁이, 가스라이터 또는 사회 연결망에서 활동하는 선동가처럼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두 번째 마시멜로가 주어지는 세상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시멜로 실험 역시 이 책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마시멜로 실험은 규칙을 지키고 인내하는 아이들에게 정말로 두 번째 마시멜로가 주어질 때만 작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실험실 밖에서는 두 번째 마시멜로가 반드시 주어진다는 보증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횡행한다. 회사가 어려울 때 월급을 포기했지만 결국 사장은 도주하고 회사는 파산하는 경우, 현실의 평온과 자유로움을 포기하는 대신 사후에 최상의 보상을 받을 거라고 선포하는 종교 등. 이런 두루뭉술한 책략은 당사자들을 마비시키고 수동적으로 만든다.
검열과 선별의 지배를 받으며 사실과 의견을 섞어버리는 언론, 흥미 위주의 뉴스를 더 중요한 뉴스로 선호하는 언론 역시 우리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우리는 개인이 디지털 정보를 평가하기란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언론은 대기업, 정부, 비밀 정보기관의 어마어마한 재정적·기술적 자원을 통해 대중의 의견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한다. 우리 각자가 미래에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책임감 강하고 정직한 언론이 필요한 이유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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