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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화교·화인, 조선·일본인 압박하는 경제활동을 하다
한반도 화교·화인, 조선·일본인 압박하는 경제활동을 하다
  • 이정희
  • 승인 2022.07.12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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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베트남화교와 한반도화교 마주보기』 이정희 외 5인 지음 | 학고방 | 450쪽

세계 디아스포라 최다 인구 차지하는 차이나타운 화교·화인
한국의 화교·화인 연구는 인구 수·경제력 미미로 연구 미비

중국정부는 화교·화인의 인구를 약 5천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의 디아스포라 가운데 최다 인구를 차지한다. 화교·화인은 거주국 및 거주지에서 사회단체와 학교를 기반으로 ‘중국인성(Chineseness)’을 유지하면서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상당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화교·화인의 인구와 사회경제 활동이 활발하여 이주국 및 이주지 사회와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화교·화인 연구는 중국 대륙과 타이완뿐 아니라 거주국 및 거주지의 학자들에 의해서도 많이 이뤄져 왔다. 일본은 근대 시기 동남아시아 침략과 통치를 위한 기초작업으로 화교·화인 연구를 정책적으로 추진했으며, 이 분야에서 상당한 학문적 축적을 이뤄냈다. 화교·화인학은 현재 국제적으로 주요한 학문 분야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화교·화인 연구는 2000년대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국내 화교 인구는 2만 명에 불과한데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변변한 차이나타운 하나 없는 나라로 조롱받을 정도로 그들의 경제력이 미미했기에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한중 수교 후 양국 간 각종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대륙서 한국으로 이주하는 이른바 신화교와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근대 시기부터 거주해 온 노화교와 그들이 거주하는 차이나타운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연구자가 하나, 둘 생겨났다. 이 책 집필자 대부분은 그러한 연구자 그룹에 속한다.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는 12년 동안 한반도화교 연구에 천착하여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사실(史實)을 발굴해 냈다. 일제강점기 때 화교는 의(衣)의 주단포목상점과 양말 직조, 식(食)의 중국집, 채소재배, 솥 제조, 소금 수입과 유통, 그리고 주(住)의 명동성당을 비롯한 각종 종교건축 시공과 노동자로서 철도, 도로 건설의 분야서 조선인과 일본인을 압박하는 경제활동을 전개했다는 점, 그로 인해 조선과 청, 중화민국과 일본 간 외교적 마찰이 발생했다는 점, 중일전쟁 시기 화교가 항일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조선총독부를 초긴장시켰다는 사실 등. 북한화교와 관련해서는 북한화교 출신 송우창 중국 광둥외어외무대 교수의 연구 협력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화교의 모습도 역사의 무대로 끌어냈다. 2019년 출판한 『한반도화교사전』은 이러한 연구성과를 담아내 그동안 세계 화교사의 공백으로 남아있던 한반도화교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사전 편찬 과정에서 늘 따라다니는 의문이 있었다. 한반도화교에 치중하다 보니 절대적 자기본위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지, 한반도화교의 특징이 무엇일까 라는 것이었다. 이런 의문을 풀려면 타 국가의 화교와 ‘마주보기’ 작업을 통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베트남화교를 그 대상으로 정했다. 베트남과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육지와 바다로 접하고 있으면서 역사적으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고, 같은 한자문화권과 유교문화권에 속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근대에는 프랑스와 일본의 혹독한 식민통치를 경험했고, 현대에는 남북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고통을 겪었다. 이러한 점에서 베트남화교는 한반도화교 ‘마주보기’의 가장 적합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주제별로 나눠 베트남화교 관련 논문 4편, 한반도화교 관련 논문 4편을 실었다. 필자는 1927년 베트남 하이퐁, 1931년 조선서 발생한 화교배척사건(만보산사건)을 각각 분석했다. 두 사건은 프랑스와 일본의 식민당국이 베트남인과 조선인이 화교·중화민국과 연계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경계하고, 화교의 경제력이 원주민보다 상위에 자리해있다는 원인(遠因)과 식민당국의 불철저한 조기 진압이라는 근인(近因)이 상호 작용하여 발생한 공통점이 있다. 보민부 교수는 일본이 프랑스와 베트남을 공동통치하던 시기 식량 확보를 위해 미곡 유통을 장악하고 있던 베트남화교를 끌어들이고자 다양한 정책을 편 것을 1차 자료를 활용해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심주형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는 베트남 독립 후의 남북 분단과 통일, 베트남전쟁, 중월관계가 화교의 법적 지위와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실을 그려냈다. 송 교수는 해방 직후 북한에 화교학교가 다수 설립되어 운영된 것은 중국공산당과 북한정부의 우호 관계로 가능했다는 사실을 당시 북한서 발행된 화교 신문을 입수해 밝혀냈다. 송승석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는 한국화교의 정체성 문제, 정은주 교수는 서울화교의 집단 거주지의 변천을 분석했다.

이 책은 특히 『한반도화교사전』 때부터 오랜 시간동안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며 교류한 성과물을 차근차근 축적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화교화인 연구자와 동남아 및 중국 연구자 그리고 이주와 이민 연구자 등 많은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그리고 활발한 토론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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