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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이라는 착각 또는 환상
‘하고 싶은 일’이라는 착각 또는 환상
  • 김소영
  • 승인 2022.07.11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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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막내가 군대 갈 때까지 나는 해병대가 “자원”해서 가는 곳이라는 걸 몰랐다. 고된 해병대 훈련을 힘들어 하면 상사가 여긴 너희들이 자원해서 온 것이라고 되새겨 준다고 한다. 아무튼 한여름 고군분투하고 있는 막내는 어릴 때 야구선수가 꿈이었다. 

부모가 대부분 화이트칼라인 주변에서 야구선수는 상당히 드문 꿈이라, 막내는 부모를 설득하려고 자기가 야구선수 되면 연봉 백만 원을 받아 해외여행 시켜드리고 집도 사드린다 했다. 초등학생으로서는 백만 원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액 연봉이었을 것이다. 막내가 운동을 좋아하게 된 건 아빠가 어릴 적부터 운동을 함께 했기 때문인데, 정작 남편은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해야지 업(業)으로 하면 괴롭다며 말렸다.

사회 선배로서 우리는 종종 젊은이들에게 꿈을 좇으라 한다. 남들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정석인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의구심이 든다. 

아주 어릴 적에는 재미있고 쉬운 일을 하고 싶은 일로 착각한다. 손흥민 선수가 처음 축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부친 손웅정씨는 축구가 죽을 정도로 힘든데 그래도 하겠냐고 물었다. 예스라고 했으니 손흥민이라는 대선수가 있게 된 것이겠지만 그때 과연 손흥민 선수가 그 정도로 혹독할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 손 선수도 회고하길, 그 때 힘들어도 하겠다고 한 지라 나중에 그만두고 싶어도 말을 못 꺼냈다고 한다.

성장하는 시기에 해야 하는 일들은 대체로 어렵고 지루하다. 놀고만 싶은 애한테 책은 거들떠보기도 싫고, 책만 보고 싶은 애(실제로 있다)한테 운동은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성장한다는 것은, 놀고만 싶은 애가 책도 읽고 책만 보고 싶은 애가 몸도 움직여야 하는, 아주 평범한 이치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 본격적인 진로 고민을 하게 되면, 그저 쉽고 즐거운 일이 곧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지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다. 예전 유엔 종사자를 연사로 초청한 적이 있었다. 이공계 학생들의 국제기구 진출을 장려한다는 행사 취지가 무색하게 국제기구에 대한 환상을 깨는 에피소드로 강연을 시작했다. 테이크아웃 커피랑 007가방을 들고 우아하게 뉴욕을 거닐며 글로벌 이슈에 관해 고매한 대화를 나눈다는 상상이 첫 출근날 산산이 부서졌다.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고 사소한 일로 왈가왈부하는 등 한국 회사에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했다. 

정직의 교훈을 설파하는 ‘금도끼 은도끼’동화는 사실 하고 싶은 일은 오랜 시간을 걸쳐 깨닫게 된다는 진실을 담고 있다. 나무꾼은 평생 쇠도끼로 나무를 베며 살아왔다. 그러기에 자기가 원하는 것이 지겨운 일을 하지 않고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금도끼, 은도끼가 아니라 쇠도끼라는 걸 알았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내팽개치고 싶을 만큼 힘들 수 있고, 정말 좋아하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한참을 두고서야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기다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지겨워지고, 오늘의 나만이 아니라 내일의 나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알아가는 데에는 정말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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