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은 교수 © |
근대학문에서 부분론(분과학문)이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문에서 그 영역을 넓혀가는 원인은 그 논리의 명확성, 예측가능성, 물질세계의 한 측면에 대한 정확한 해석 등에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적인 해석들은 점점 늘어감에도, 전체 세계 내지는 부분들끼리의 집합세계를 정확히 규명하려는 노력이 외면되면서 '학제성'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게 됐다.
하지만 권 교수는 현재의 학제적 연구가 "전문적 연구성과의 병렬적 집적"에 그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사실 누구든 이 점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리고 "어떻게 학제성을 갖출 것인가"라며 방법론에 대한 질문을 모호하게 던지고 있다. 그런데 권 교수는 이 '방법론'이 함정이라고 경고한다.
"논쟁의 핵심은 '어떻게' 즉 '연구방법'과 관련되는데 이는 연구방법에 집중하려는 근대학문의 경향과 관련된다. 결국 근대학문의 한계에서 제기되어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학제적 연구가 다시 근대학문의 체계를 형성하려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학제적 연구가 기존학문의 불완정성에서 출발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과거 분과학문이라는 안정상태, 균형상태로 회귀하려는 성격으로 인해 그 효용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97쪽)
이에 대해 권 교수가 대안으로 내놓는 것이 바로 '복잡성 인식론'이다. 그것은 모든 현상에서 구조와 관계의 복잡성을 가정하는 인식론적 패러다임으로써 이 때 복합성 사유의 특징은 '맥락적 사고'와 '과정적 사고'임을 권 교수는 설명한다. 그것은 또한 총체성의 원리, 비선형성의 원리, 순환성의 원리를 지닌다. 전통적 패러다임이 보편적 원리, 일방적 인과관계, 독립변수 및 종속변수 등이 존재하고 중요하다고 믿는데 비해, 복잡성 패러다임에서는 복잡인과성, 상호인과관계 그리고 요소간 및 요소와 환경간 비선형적 순환성을 전제로 한다고 권 교수는 말한다.
그는 이런 특징을 갖는 복합성 패러다임이 추상화 정도에서는 철학과 수학보다 약하고, 경험과학보다는 강하며, 반대로 구체성에 있어서는 경험과학보다 약하고 철학, 인문학보다 강하기 때문에 분과학문의 한계를 초월할 학제적 연구에 적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복잡성 패러다임은 원자론과 고전 전체론, 생기론과 기계론, 목적론과 인과론의 대립 및 갈등을 완화하는데, "부분과 전체를 '홀론'(holon)으로 파악함으로써 체계의 능동적 자율성과 수동적 종속성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복잡성 패러다임이 갑자기 출현한 게 아니라 인류사에서 꾸준히 있어왔던 것임을 강조한다. 벤야민의 성좌(constellation),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famlily resemblence), 알튀세르의 '절합(articulation) 국면', 하이퍼텍스트의 체계, 경계이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고 한다.
지역연구 방법론에서도 부분과 전체를 둘러싼 논의는 계속되어 왔다. 러시아 정치학을 전공한 권 교수는 "지역의 모든 요소들을 모두 망라해도 지역의 종합적인 속성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을 유기적 복잡계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라고 저간의 사정을 밝힌다.
하지만 권 교수의 논문은 학제적 사유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모습, 분과학문들간의 부딪침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추상적 논의에 치우치고 있으며, 모든 개념들이 당위적으로 제시돼 무겁게 다가온다. 과연 저걸 할 수 있을까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 다만 '학제성'은 방법론이 아니라 '인식론'이라는 점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갖고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