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5:20 (금)
"학제성은 방법론이 아니라 인식론이다"
"학제성은 방법론이 아니라 인식론이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2.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세은 경희대 교수, '학제적 연구에 대한 인식론적 시론' 발표

▲권세은 교수 ©
공동이나 협동연구에서 학제적 연구로 질적 전화를 이루려면 단순히 방법론적 차원의 고민을 넘어 인식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권세은 경희대 교수(러시아어학과)는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에서 펴내는 '비교문화연구' 최근호에 발표한 '학제적 연구에 대한 인식론적 시론'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근대학문에서 부분론(분과학문)이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문에서 그 영역을 넓혀가는 원인은 그 논리의 명확성, 예측가능성, 물질세계의 한 측면에 대한 정확한 해석 등에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적인 해석들은 점점 늘어감에도, 전체 세계 내지는 부분들끼리의 집합세계를 정확히 규명하려는 노력이 외면되면서 '학제성'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게 됐다.

하지만 권 교수는 현재의 학제적 연구가 "전문적 연구성과의 병렬적 집적"에 그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사실 누구든 이 점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리고 "어떻게 학제성을 갖출 것인가"라며 방법론에 대한 질문을 모호하게 던지고 있다. 그런데 권 교수는 이 '방법론'이 함정이라고 경고한다. 

"논쟁의 핵심은 '어떻게' 즉 '연구방법'과 관련되는데 이는 연구방법에 집중하려는 근대학문의 경향과 관련된다. 결국 근대학문의 한계에서 제기되어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학제적 연구가 다시 근대학문의 체계를 형성하려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학제적 연구가 기존학문의 불완정성에서 출발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과거 분과학문이라는 안정상태, 균형상태로 회귀하려는 성격으로 인해 그 효용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97쪽)

이에 대해 권 교수가 대안으로 내놓는 것이 바로 '복잡성 인식론'이다. 그것은 모든 현상에서 구조와 관계의 복잡성을 가정하는 인식론적 패러다임으로써 이 때 복합성 사유의 특징은 '맥락적 사고'와 '과정적 사고'임을 권 교수는 설명한다. 그것은 또한 총체성의 원리, 비선형성의 원리, 순환성의 원리를 지닌다. 전통적 패러다임이 보편적 원리, 일방적 인과관계, 독립변수 및 종속변수 등이 존재하고 중요하다고 믿는데 비해, 복잡성 패러다임에서는 복잡인과성, 상호인과관계 그리고 요소간 및 요소와 환경간 비선형적 순환성을 전제로 한다고 권 교수는 말한다.

그는 이런 특징을 갖는 복합성 패러다임이 추상화 정도에서는 철학과 수학보다 약하고, 경험과학보다는 강하며, 반대로 구체성에 있어서는 경험과학보다 약하고 철학, 인문학보다 강하기 때문에 분과학문의 한계를 초월할 학제적 연구에 적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복잡성 패러다임은 원자론과 고전 전체론, 생기론과 기계론, 목적론과 인과론의 대립 및 갈등을 완화하는데, "부분과 전체를 '홀론'(holon)으로 파악함으로써 체계의 능동적 자율성과 수동적 종속성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복잡성 패러다임이 갑자기 출현한 게 아니라 인류사에서 꾸준히 있어왔던 것임을 강조한다. 벤야민의 성좌(constellation),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famlily resemblence), 알튀세르의 '절합(articulation) 국면', 하이퍼텍스트의 체계, 경계이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고 한다.

지역연구 방법론에서도 부분과 전체를 둘러싼 논의는 계속되어 왔다. 러시아 정치학을 전공한 권 교수는 "지역의 모든 요소들을 모두 망라해도 지역의 종합적인 속성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을 유기적 복잡계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라고 저간의 사정을 밝힌다.

하지만 권 교수의 논문은 학제적 사유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모습, 분과학문들간의 부딪침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추상적 논의에 치우치고 있으며, 모든 개념들이 당위적으로 제시돼 무겁게 다가온다. 과연 저걸 할 수 있을까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 다만 '학제성'은 방법론이 아니라 '인식론'이라는 점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갖고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