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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대중적 확산이 유교국가를 붕괴시켰다"
"유학의 대중적 확산이 유교국가를 붕괴시켰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1.29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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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경희대 교수, '대중 유교로서의 동학'에서 주장

▲수운 최제우 ©
수운 최제우의 東學이 유학 내부의 논리에 의한 필연적 귀결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김상준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나온 '사회와역사' 제68집에 발표한 '대중 유교로서의 동학'에서 동학은 "그 가치체계, 교의적 상징들, 대안사회의 像, 특징적인 행위양식 모두에서 유학의 언어와 규범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김 교수는 동학에 대한 기왕의 연구들이 "동학을 반봉건/반제국주의를 분명히 표방한 근대적 사상운동"이라 보거나 그 반대에서 "정당한 봉건질서의 회복을 지향한 복고적 운동"이라는 관점을 보여온 것을 비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 상반된 입장이 사실 똑같다고 보는데, 바로 "근대성을 전통과의 단절로 파악하는" 점에서이다.

김 교수는 근대성이 전통의 문법 속에서 배태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서양의 과학이 신비주의적이고 마술적인 數秘學의 전통 속에서 자라나왔듯, 유럽 근대적 정치사상의 출현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로마법, 스토아주의, 스콜라철학 등 유럽 중세를 석권한 전통적 사유체계와 관습에 크게 의지하고 있음을 갈파한 포콕과 스키너의 연구가 보여주듯, 동학과 동학운동에 내재된 근대성의 요소는 유교적 사유체계와 언어, 상징자원에 크게 의존해 발생하고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동경대전 ©

김 교수에 따르면 유교와 동학의 관련을 최제우는 '동경대전'에서 "공자의 도를 깨닫고 본즉 다 하나의 이치로 정해진 것이요, 우리 도와 비교해서 말하면 크게 같고 작게 다를 뿐이라"라고 정리하고 있다.

최제우의 저작이 아주 농밀하게 유교적이라는 것은 윤사순 교수에 의해 정리된 바가 있다. 다만 윤 교수는 동학이 "유학을 벗어난 입장"에 서서 무언가를 추구했다고 강조한 반면, 김 교수는 이러한 입장에 대해 "유학 밖에서는 애초에 유학 외부를 꿈꿀 수 없다"고 비판하며, 동학은 유교에 내재된 비판적, 이상적 지향을 짚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령 주문을 외워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학의 방식은, 간략한 잠이나 결을 지어 외우는 유자들의 유교적 수련방식과 통한다. 동학 속의 巫·佛·道의 자원도 압도적인 유교의 동심원적 원리로 치밀하게 짜여진 틀, 진용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따라서 그는 윤사순 교수가 주목한 "유학을 벗어난 입장"에 있다고 오해한 동학의 대중적 성격이야말로 지극히 유교적인 사회질서가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 자신의 논리에 따라 산출할 수밖에 없었던 대중유교의 핵심이라고 본다.

이 글에서 김 교수는 상층유교와 대중유교를 구별하고 있다. 엘리트적이고 지성주의적 상층유교는 사제의 종교, 성스러운 텍스트 중심인 데 반해, 민중적인 대중유교는 마술적 행위와 시술적 성격이 강하다는 베버적 구분을 빌려온 개념이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조선사회는 광범하게 진행되고 있던 매향매직, 모칭, 위조가보, 위조홍패 등을 통한 양반신분의 인플레 현상은이 심해져 신분상승의 줄달음질에 노비층의 적극적 가담을 유발시켰다.

김 교수는 이 과정이야말로 조선이라는 유교국가의 몰락과정이면서 동시에 유교의 대중전파의 전례없는 성공과정이라고 본다. 양반이 면세특권을 독점해 양민과 노예의 부세와 노역 그리고 신공에 의존하고 있던 조선은 양인과 노비 신분의 인구감소에 따라 쇠멸해갈 수밖에 없었지만, 동시에 유교적 풍속과 관행은 양민과 노비층 안으로 깊고 넓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유교의 근대성을 강조하는 김 교수의 이론이 기존의 실학이나 근대적 경제의 발달 등의 내재적 발전론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의 이런 관찰은 동시대 일본의 조닌유교, 중국의 명말 태주학파 등에서 나타난 유교의 대중적 확산현상과 겹쳐지면서 보편성과 함께 조선적 특수성을 한꺼번에 갖춘다.

논문 말미에 등장하는 김상준 교수의 철학적인 출사표는 이런 과정을 통해 聖俗의 질서가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성이 속을 통섭한 중세와 달리 속이 성을 통섭포괄한다는 것이 근대성의 일반논리라면, 이러한 경우가 동학의 전개 속에서도 살펴진다는 것이다. 인내천, 즉 모든 민중의 내면에 '하늘의 도'가 내재해 있다는 관점은 소수가 독점하는 '성'이라는 것을 다수의 것으로 풀어놓았고, 그것을 내부로 은폐시켜서 地閥과 家勢로 요약되는 현세적 유교의 신성함을 부정한다. 즉 기존의 신성함은 별것 아닌 것으로 찢겨지고, 평등의 가치 속에서 신성함은 잠재적인 것으로 공유된다는 논리다.

동학이 중세 유교로의 복고운동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이런 성속의 역전과 같은 근본적 단절(그리고 연속) 속에서도 찾아지지만, 접주라는 동학의 모임방식에서도 발견된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최제우의 '대안사회' 구상은 평등한 사람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강학과 생활의 조직화에 의해 자리잡아갔다는 것인데, 김 교수는 이 접의 원리가 근대적 사회조건과의 친화성, 그리고 근대적 사회조직의 원리와 어떤 상통성을 지니고 있으며,나아가 근대 대중운동의 주체들이 나올 수 있는 또 다른 전통이 되었다고 소결짓는다.

서두에서도 밝혔듯, 전통에 기반한 근대라는 관점은 어찌보면 상식일지도 모르나, 이것을 동학이라는 역사적, 철학적 체계 속에서 구체화시킨 김 교수의 논문은 매우 흥미롭고 새로운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한 기존 동학론자들의 어떤 답론이 펼쳐질 지 기대된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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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곤 2006-01-31 17:41:08
김상준 교수님의 기사 잘 읽었습니다.

김상준 교수님의 '대중 유교로서의 동학' 논문을 읽을 수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