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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서양사)
[저자인터뷰]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서양사)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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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의 본질은 '교양'과 '담론'
 
서양사학자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가 잇따라 유럽문화에 대한 책을 펴내고 있다.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에 이어 이번에 낸 책은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
역사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 시도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 신문화사, 미시사, 구술사 등 새로운 역사학 방법론이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고, 연구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역사학계의 ‘문화적 전환’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부터 이 교수는 문화사연구를 해왔다. 그가 ‘문화사’에 천착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유럽 문화의 본질은 '교양'과 '담론'

“제가 공부하던 시절의 역사학은 정치사 중심의 경향이 강했습니다. 다른 경향이래봤자 사회경제사 정도가 있었죠. 독일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와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을 읽게 되었죠. 그 책들을 보면서 역사학이 이럴 수 있다면 평생을 걸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 교수는 역사의 본질이 ‘情念’에 있다고 말한다. “위대한 창조는 논리나 추상적인 두뇌가 아니라 인간의 풍요한 정념에서 시작된다”는 것. 학문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예술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바로 이것이 그가 문화사를 고수해왔던 이유다. 그는 유럽의 본질이 ‘정념과 교양의 공동체’라고 본다. 이데올로기나 종교(기독교)는 유럽사회의 일상적 모랄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 교양과 정념에 뿌리박고 모든 것을 개방적인 담론안으로 끌어들이는 문화가 다른 공동체와 유럽을 구분짓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는 ‘교양’과 ‘정념’, ‘담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유럽사회와 문화에 접근하고 있다. 유럽의 이상적 인간상은 ‘교양인’이었으며, 살롱과 카페를 통해 담론문화의 꽃을 피웠고, 그들의 다채로운 서적문화도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가 전하는 주요 메시지이다.

 
이 책이 유럽문화를 상찬하고 있다고 해서, 그 문화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도판과 풍경사진이 담긴 이 책을 읽고, 유럽이라는 ‘먼곳에의 그리움’(fernweh)에 빠져 버린다면 그는 분명 안목없는 독자이리라. 자기를 아는 것은 결국 타자를 통해서이다. 이 교수가 ‘유럽이라는 타자’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우리사회가 가진 부박한 교양의 풍토와 담론부재의 현실이다.
“지중해, 정오의 태양이 빛나는 한여름의 피렌체는 진실로 나상이 林立한 화끈거리는 거리였다. 비너스가 다스리는 그 거리거리를 배회하며 나의 마음은 어느덧 토함산에 자리한 십일면 관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에게 자꾸만 향하고 있었다. 그 미신의 세계에서도 나는 틀림없는 이방인인 모양이다.(36쪽)”

'감정교육' 부재한 한국사회

한 사회의 문화적 수준은 “그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 교수는 ‘감정교육’의 부재가 우리 사회의 문화적 후진성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전인적 교양인인 선비의 전통”과 “마을 공동체의 놀이문화”가 사라진 한국은 아직 ‘미완의 근대’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대학개혁은 담론과 교양의 학풍을 되살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개혁논의에서 그러한 대학의 ‘본질’은 실종되어 있다. “대학이 만들어내는 것은 유능한 테크노크라트에 불과하다. 세계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과 개방적인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인간 교육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학풍이 사라진 대학, 교수들조차도 담론하지 않는 대학, 이것이 오늘 우리의 대학이다.” 세련된 장정과 고급한 삽화, 유려한 문장으로 유럽문화를 전하는 이 책에서 이광주 교수가 대학의 눈밝은 독자에게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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