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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 카페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슬라임 카페에 입장하시겠습니까?
  • 배지우
  • 승인 2022.06.22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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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지연, 그림 이주미 | 오늘책 | 116쪽

“마음이 물질이라면,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요? 찰랑찰랑 졸졸 흐르는 액체라면 참 좋을 텐데, 하필이면 딱딱한 고체같이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가 많아요. 마음이 꼭 슬라임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액체도 고체도 아닌 상태. 만져 줄 땐 말랑말랑해져서 스르르 흐를 것 같다가도, 내팽개쳐 두면 금세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상태인가요?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자기 마음을 한번 만져 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내 마음은 내 것이니까 휙휙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그렇다고 하나하나 쌓아 두지도 말고요, 저마다 자기만의 녹는점을 찾는 방법 하나쯤 알고 있으면 어떨까요.”(글쓴이의 말 중에서) 

지구 구하기 프로젝트 ‘슬라임 카페’

인기 만점 슬라임이 외계 생명체의 지구 침입을 막는 비밀 프로젝트라는 상상력을 입고 나타났다. 외계 생명체를 막을 인공 지능 로봇 개발에 번번이 실패한 우주위원국은 마지막 방법으로 막강한 힘을 뿜어 내는 인간의 화와 분노에 주목한다. 그리고 순수한 감정이 가장 솔직하게 살아 있는 어린이, 그것도 스트레스에 찌든 ‘잠수동 에듀 타운’ 어린이를 타깃으로 삼는다. 하지만 어른들이 짜 놓은 시간표 안에서 초침처럼 왔다 갔다 바쁜 아이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고심 끝에 그들이 내놓은 신박한 아이디어, 세계 최초! 마음 치유 슬라임 카페 오픈! 

로봇이 운영하는 슬라임 카페에는 범상치 않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아이들이 슬라임 베이스를 주무르면 파츠 속에 숨겨진 감정 데이터베이스 칩이 그 아이의 체온을 감지해 화, 분노, 수치심 등의 감정을 빨아들인다는 것! 그렇게 수집한 감정데이터를 로봇에 장착해 외계 생명체에 대적하려는 것이다. ‘슬라임’이라는 흔하고 작은 놀잇감으로 지구 평화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현한다는 발상이 재미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에듀 타운’ 안에 갇힌 채 가슴 속에 억눌린 감정을 품고 사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진정한 지구 구하기는 ‘우리 아이들 구하기’가 아닐까?

톡톡 상상력 넘치는 ‘슬라임 카페’

아이들의 감정을 빨아들이려면 우선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잠수동 슬라임 카페의 베이스와 파츠는 모양도 이름도 상상력이 넘친다.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아이들의 화나고 짜증 나는 마음을 그대로 담은 듯 거칠고 센 척하지만 말놀이 운율이 톡톡 살아 있어 절로 따라 읽게 된다. 미움뒤범벅죽, 질투폭발마그마, 걱정근심숯검댕파이, 짜증범벅짜장면, 쿵쿵폴딱폴딱심장, 울컥울컥눈물파도, 초조지렁이100마리, 꽈배기문어발, 흥흥콧방귀돼지코, 쯧쯧혓바닥 베이스! 선인장왕가시, 얼음화살, 서쪽마녀손톱, 말벌왕독침, 꽝꽝나사못, 퉤퉤욕나팔, 따끔주삿바늘, 고슴도치바늘 파츠! 

줄에 묶인 코끼리처럼 엄마의 설계도 안에서만 움직이는 우주는 학원가는 길에 로봇의 손에 이끌려 슬라임카페 1호 손님으로 입장한다., 처음으로 계획표를 벗어난 우주는 수십 가지 베이스와 파츠들 속에서 자신만의 슬라임을 완성해 간다. 우주가 청개구리반항심술보 베이스에 사자왕수염, 번쩍찌릿번개침, 초승달뾰족창 파츠를 고르는 동안, 저마다 ‘나라면?’ 이라는 상상을 하며 자신만의 베이스와 파츠를 고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완성된 슬라임은 어떤 감정들로 뭉쳐져 있을지 ‘내 마음의 상태’를 돌아보면 어떨지?

마음을 치유하는 ‘슬라임 카페’

우주가 슬라임을 주무르는 동안 우주위원국 과학자와 로봇은 꿈에 부푼다. 억눌린 분노와 화, 짜증 데이터 수치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인터넷 영상 채널 조회수를 위해서 엄마의 카메라 앞에서 억지로 웃는 미지의 슬라임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수치심을 수집한다. 엄마, 아빠의 따뜻한 사랑이 그리워 센 척하고 게임 속 세계로 달아나는 천우, 에듀 타운의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이들 가슴 속에 쌓인 감정의 힘 또한 어마어마하다. 우주위원국은 프로젝트 성공을 확신하며 마지막 단계로 잠수 초등학교 하수관을 터트린다. 하수관에서 쏟아져 나온 슬라임은 학교와 아이들을 집어삼키고 할퀴고 상처 낸다. 아이들이 슬라임을 주무르면서 내뱉었던 아픈 말들과 날 선 마음은 메아리처럼 아이들 주위를 떠돈다. 미처 몰랐던 자신들의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우주, 미지, 아이들은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친구의 마음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미안하다고, 넌 이미 훌륭하다고, 잘하고 있다고 토닥인다. 

이때 슬라임 홍수 소식을 듣고 학교로 달려온 부모들, 그동안 외면해 왔던 서로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의 아이, 존재를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상처 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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