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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고전] 허웅의『언어학 - 그 대상과 방법』(1981)
[우리시대의고전] 허웅의『언어학 - 그 대상과 방법』(1981)
  • 우형식 / 부산외대·국어국문학
  • 승인 2001.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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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0 17:53:29

인간은 누구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언어는 사회 생활에서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의 도구이다. 언어학은 이러한 일상적인 자연 언어의 본질과 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학문이다. 언어학은 연구 대상이 되는 자연 언어가 선험적인 것에서부터 일상적인 것에 이르는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 따라, 여러 다양한 측면에서의 접근이 가능하며 방법론에 있어서도 인문학과 자연 과학, 그리고 사회 과학의 성격을 공유한다.

인간의 언어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태초로부터 이어져 왔을 것이나, 언어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20세기 초 구조주의 이론이 성립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언어학은 철학을 비롯하여 논리학, 심리학, 생리학, 역사학, 문학 등 주변 과학과 상호 작용하면서 발달하여 왔다. 20세기 중반에는 무한하게 생성될 수 있는 다양한 언어 현상을 명시적인 규칙으로 제시하려는 생성 이론이 등장하였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생성 이론을 심화시키거나 이에 대한 반성적인 이론들이 대두되었다. 특히 오늘날의 언어학은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인공지능을 비롯한 자연 언어 처리에서의 공학적 연구 방법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적으로 보면, 일제 강점기에는 전통적인 국어 연구가 발전하였으나, 해방 후에 구조주의 이론이 도입되면서 일반 언어학의 기틀이 잡혔으며, 70년대 들어 생성 이론의 도입과 함께 그 영향을 받으면서 커다란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눈뫼 선생의 ‘언어학궞 대상과 방법’(1981, 샘문화사)은 구조주의 언어학이 쇠퇴하고 생성 이론이 확대되던 시기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내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집필한 지은이의 ‘언어학 개론’(1963, 정음사)을 수정·증보한 것으로, ‘개론’이 구조주의 이론에 바탕으로 두었다면, ‘언어학’은 지은이의 독특한 언어관을 바탕으로 하면서 구조주의와 생성 이론을 일관된 원리로 조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언어학’의 내용은 모두 12장으로 구성돼있다. 1장에서는 소쉬르의 랑그와 빠롤, 훔볼트의 에르곤과 에네르기아, 촘스키의 언어 능력과 언어 운용 등의 여러 학설을 대조하면서 언어를 ‘갈무리된 말’과 ‘부려쓰인 말’로 구분한다. 이 부분은 언어의 본질에 대해 풀이한 것으로, 지은이의 독특한 언어관을 보여 주고 있다. 2장에서는 공시 언어학과 통시 언어학을 논의하고, 3장에서부터 6장까지는 공시적인 음성학, 어휘론, 문법론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문법 부문에서는 기술 문법의 문제를 지적하고 전통 문법과 생성 문법을 접목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7장은 문자론이며, 8장과 9장에서는 음운과 어휘의 통시적인 변화 현상을 기술한다. 그리고 10장은 비교 언어학이고 11장은 방언론이며, 12장에서는 언어학사를 개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은 국어학과 언어학은 별개의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언어학의 제 이론을 수용하여 국어학을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반 언어학을 세우는 것이 언어학의 바른 길이라는 지은이의 생각이 집약된 것이다. 그리하여 앞 시대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이론을 수용하여 독창적인 이론 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언어 특히 국어 연구의 새로운 틀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지은이의 일관된 학문적 태도인 국어 사랑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는 역시 전통적인 집에서 사는 것이 가장 편하고 가장 위생적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집이라 해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집 그 대로가 아니라, 더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전통도 어느 정도는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힌 지은이의 다른 저서의 머리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하여 이 책은 국어의 옛말본과 음운학에서부터 20세기 국어의 형태론과 통어론, 그리고 훈민정음과 맞춤법에 이르기까지 지은이의 방대한 연구의 바탕이 되었으며, 후학들의 국어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매우 다양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 연구도 여러 측면에서 모색될 수 있다. 그리하여 생성 이론이 언어 현상을 형식화하려는 경향을 띠는 반면에, 언어가 지닌 기능과 용법을 규명하려는 새로운 이론들이 대두되었으며, 특히 전산 언어학은 자연 언어의 기계적인 처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오늘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적 차이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언어학’은 구조주의와 초기의 생성 이론을 수용하고는 있으나 다양한 언어 이론들에 대해서는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책은 새로운 이론을 수용하여 적용하는 문제에서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허웅(1918 ∼ )은 누구인가

경남 김해 출생. 연희전문 문과에서 수학하고 연세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으며, 한글학회 회장이다.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평생을 한글 연구와 한글운동에 바쳤으며, ‘국어학’(1983) 등의 개설서 등과 ‘우리 옛말본’(1975) 등 한글의 역사와 문법적 체계에 관한 다수의 역저를 발간했다. 이러한 공로로 외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했다. 기타 저서로 ‘16세기 우리 옛말본’(1989)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199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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