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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결에 근거한 '시민권' 효용 잃어…이주민의 '재민족화' 경향 지적
민족자결에 근거한 '시민권' 효용 잃어…이주민의 '재민족화' 경향 지적
  • 이충훈 미국통신원
  • 승인 2006.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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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_'Political Science & Politics'(Vol. XXXVIII, No. 4) 리뷰

많은 이들이 ‘지구화’를 경제적 자유화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D. 헬드가 지적했듯이 지구화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커뮤니케이션 등을 포괄하는 전세계적 규모의 전환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강력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국제 이주다. PS(Political Science & Politics)의 최근호(Vol. XXXVIII, No. 4)는 이러한 국제이주가 전세계 각국의 시민권을 어떻게 변화시켜왔고 의미는 무엇인가를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의 시민권 문제에 관한 석학들의 목소리를 담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지구화 속에서 국제 이주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것의 시민권과 관련된 새로운 위상은 무엇인가.

국제이주가 시민권에 미친 영향 분석

예일대의 S. 벤하비브는 현재의 국제이주와 시민권간의 긴장 및 모순을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두 측면, 즉 주권적 민족자결의 주장과 보편적 인권원리간의 갈등에서 발견한다. 국제 이주의 확대와 더불어 자유민주주의의 한 축인 보편적 인권의 원리가 이주자들이나 난민들을 위한 ‘타자의 권리’로서 발전한 반면에, 민족자결의 주장에 기초한 근대적 시민권은 근대국가의 소멸과정에서 점차 그 적실성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에 힘입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근대적 민족 자결의 주장에 근거해서는 부여할 수 없는 권리들을 타자들에게 부여해왔다. 이러한 보편적 인권의 원리의 확대에 기반해 그녀는 궁극적으로 다양한 국제조직과 거대 기업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그러한 조직들이나 기업들이 세계 시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사해동포주의적 연방주의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호주 과학아카데미의 R. 바복은 ‘타자의 권리’ 중 특히 투표권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전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지방 및 지역수준에서의 투표권뿐만 아니라 국가적 수준에서의 투표권을 타자들(비시민권자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그는 근대 국가체제의 오랜 시민권적 틀을 유지하기 보다는 자치 공동체하에서의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시민을 규정하는 공화주의적 개념으로 시민권의 개념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벤하비브와 바복이 시민권을 지구화하려는 두 차원의 전략(세계적 시민권과 공화주의적 시민권의 공동체들)을 보여줬다면, 영국 옥스퍼드대의 S. 캐슬은 지구화가 가져온 시민권의 전지구적 계급화 현상에 착목한다. 즉, 냉전의 해체와 지구화의 가속화는 권리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상이한 다섯 계급의 국가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전지구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시민들은 최상의 권리를 향유하는 반면에,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해있는 소말리아와 같은 ‘실패한 국가’나 ‘깡패 국가’인 북한, 그리고 국가가 없는 팔레스타인이나 쿠르드족의 시민들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침략이나 폭격의 공포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권의 전지구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캐슬은 좀더 다층적인 전략을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국가적 수준에서의 참여를 확대하고, 나아가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조직들을 민주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억압이나 갈등의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정통성 있는 민주적 칙령의 구성을 전지구적 차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美, 민주적 실천 쇠락해

이러한 다층적 전략 중 국가적 수준에서의 참여의 확대에 대한 요구는 미국에서의 시민권의 변화를 추적한 펜실바니아대의 R. 스미스에게 있어서도 핵심적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시민권이 21세기에 처한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적 권력이 확대되고 정치적 제도들이 좀더 수평적인 된 반면에, 민주적 실천들은 점차 쇠락해 왔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그는 미국에서의 민주적 참여가 시민적 삶의 일부분으로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양당제도에 근거한 선거법의 개정이나 노동운동의 재활성화와 같은 혁신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저자들이 근대국가체제에 의해 오랜 기간동안 형성된 공간을 가정하고 있다면, 버클리대의 A. 옹은 국제 이주에 의해 새롭게 구성되는 공간에 주목한다. 지구적 도시나 난민캠프, 지역적 노동시장이나 사이버 세계와 같은 국제이주에 의해 새롭게 구성되는 공간들은 기존의 시민권이라는 개념을 해체시키고, 시민권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이러한 공간들 속에서 기존의 시민권이라는 개념은 끊임없이 탈접합, 재접합되고 따라서 시민권에 대한 정치적 해법은 규칙적이고, 획일적이며, 분명하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고, 다양하며, 모호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옹에게 있어서 지구화 시대의 시민권은 영토적 권리에 기반한 확고한 것이 아니라 지구적 흐름의 유입과 국면에 따라 유동적인 것이 된다.

반면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타의 R. 카스토리아노는 국제이주에 의해 새롭게 구성되는 법적 주체들, 즉 이중국적자들에 주목한다. 그녀가 보기에 터키, 모르코, 파키스탄 등의 국가가 인정하는 이중국적이 유럽에서의 이들 공동체에게는 민족주의를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즉, 이중국적에 따른 시민권의 탈영토화가 사실상은 유럽에서의 이들 공동체의 재민족화를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프랑스나 독일에서의 터키, 모르코, 파키스탄 공동체와 프랑스 및 독일 국가간의 새로운 긴장이 발생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해외교포법은 사실상 배제의 동학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국제이주의 급격한 증대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시민권 개념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러나 근대 국가체제 역시 이러한 지구적 흐름에 대응해 다양한 통제 및 정치의 기술을 발전시켜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우선, 근대적 국가체제 역시 국제 이주에 대한 통제를 탈영토화시켜왔다. 통제의 최전선은 단지 국경선으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영토 속에서 관철된다. 이른바 비자 시스템은 이러한 초영토적 통제의 현실적 구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둘째로 이중 국적제도와는 달리 더 많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디아스포라법(해외교포법)은 독일과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해외동포들에 대한 혈통적 동질성은 강조하지만, 정작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지체시키거나 사실상 거부하는 배제의 동학이지 포함의 정치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국제이주와 관련된 시민권의 이슈들은 각국의 정치가들의 조작에 너무나 취약하다는 점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극우파 정치인들의 이주자들에 대한 권리 부여나 이중국적에 대한 공통된 반대는 주목할만하다.

정치적 권리가 없거나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소수의 시민권자들을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그들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같은 근대 국민국가체제의 낡은 관념들을 지구화에 대항해 동원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제이주와 시민권에 대한 논의는 근대국가체제와 개별국가의 대응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 좀더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충훈 / 미국통신원·뉴스쿨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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