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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의학의 과학적 한계』(에드워드 골럽 지음/예병일 외 옮김, 몸과마음 刊)
[깊이읽기] 『의학의 과학적 한계』(에드워드 골럽 지음/예병일 외 옮김, 몸과마음 刊)
  • 강신익 / 인제대·치의학
  • 승인 2001.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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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0 17:49:52

얼마 전 미국의 한 생명공학회사가 인간의 유전체지도를 완성했다고 발표하여 세계를 흥분시키더니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말 한국의 한 바이오벤처 회사가 한국인의 유전체지도 초안을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신문과 방송은 연일 새로운 의학적 발견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있다. 우리는 머지않아 대부분의 질병을 ‘정복’하여 무병장수의 시대를 살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이러한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은 지난 1백50여 년간의 과학적 성과에 근거하는 것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초 40세 남짓하던 평균기대수명이 세기말이 되면서 두 배 이상 늘어나 이제 80세에 육박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은 과거의 과학적 성과에 대한 객관적 증거와 맞물리면서 우리를 한없이 꿈에 부풀게 한다.

의학의 성과에 대한 비판들

하지만 과학적 의학의 긍정적 역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 소개된, 의학의 성과에 비판적인 평자 중에는 토머스 매큐언과 이반 일리히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매큐언은 ‘의학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으로 번역된 ‘더 로울 오브 메디신’(The Role of Medicine)에서 현대인이 누리고 있는 장수의 혜택이 의학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주장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의학의 역할보다는 생활수준과 공중위생의 개선 등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그는 경험적 자료를 통해 주장한다. 이반 일리히는 의학의 문화적 권력을 문제로 삼는다. 가장 인간적이고 내밀한 사건인 태어남과 죽음을 포함한 온갖 인간사가 의료의 영역에 포함돼 거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됨으로써 개인은 점점 나약해지기만 하는 반면 의학은 점차 비대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은 국내에 ‘병원이 병을 만든다’라는 도전적인 제목으로 번역 소개되었지만 원 제목은 이보다 더 섬뜩한 ‘의학의 재앙’(Medical Nemesis)이다. 일리히에게 있어 의학은 도움을 주기보다는 우리를 옥죄는 구속이다. 앞에 소개한 두 책이 모두 의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지만 그 각도는 조금씩 다르다. 즉, 매큐언이 의학의 ‘사회적’ 역할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면 일리히는 의학의 ‘문화적’ 영향력을 맹렬히 비난한다.

계속되고 있는 '전염병 시대'의 의학개념

골럽의 ‘의학의 과학적 한계’는 ‘과학’으로서의 의학에 초점을 맞추어 그 한계를 지적한다. 여기서 골럽은 시종일관 과학적 의학의 기술적 측면이 아닌 ‘개념적’ 변화를 주장한다. 19세기에 형성된 의학적 개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오늘날의 의학은 아직도 토벌의 대상인 적(세균과 바이러스)과 이를 무찌르는 마법의 탄환(항생제와 백신)의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인간형질 유전의 복잡성이 충분히 밝혀진 오늘에도 우리는 유전자를 갈아 끼움으로써 무병장수하리라는 꿈을 꾸고 있다. 골럽은 이러한 꿈이 근거는 있으되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전염병이 가장 큰 사망원인이던 시기에 형성된 세균학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만성병이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 적합한 모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투쟁’의 대상이던 질병이 이제는 ‘관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감염성 질병과 페니실린으로 대표되는 급성병 퇴치의 패러다임에서 당뇨병과 인슐린으로 대표되는 만성병 관리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의학의 존재이유에 대한 개념적 재구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한다. 물론 그는 이를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대신 “메타포를 바꾸자”라는 불명료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엄밀성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적 의학이 메타포라는 모호한 범주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할 것이다.


한편 의학의 한계를 좀 더 넓은 맥락에서 파악하려면 그 한계의 사회적·문화적 차원을 함께 살펴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한 점이 ‘의학의 과학적 한계’의 한계인 것처럼 보인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어색한 또는 잘못된 번역은 그러한 문화적 차원에 대한 통찰의 부족에서 오는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한계는 앞으로 발간될 ‘醫文化총서’들에 의해 많이 메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역자들의 적절한 주석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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