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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시외교와 국제관계 1931-1945
중국의 전시외교와 국제관계 1931-1945
  • 최승우
  • 승인 2022.06.1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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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환 지음 | 인터북스 | 298쪽

본서의 주요한 내용은 1931년 만주사변으로부터 1937년 노구교사변으로 본격화된 중일전쟁이 종결되는 1945년까지 중국의 외교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중일전쟁은 1937년부터 8년간 본격적으로 전개되지만, 이미 1931년 만주사변으로 15년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중일전쟁은 제국주의침화사의 서막인 동시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항일전쟁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중일전쟁 시기는 중국현대사 분야에서 연구성과가 가장 부족한 시기로서, 전쟁으로 인한 일차자료의 소실에서 주요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본서는 전시 중국외교 및 국제관계와 관련된 일차사료를 중국 일국사의 범주를 넘어 동아시아사 범주 속에서 일차사료를 발굴하고 적극 활용하였다. 특히 침략국인 일본외무성 및 기타 정부관련 일차사료를 적극 발굴하고 활용하였다.

본서는 미국 등 열강의 전시 외교정책이 대중국 적극 지지로 전환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중국의 전시외교와 관련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전시외교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권력뿐 아니라 전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전민항전이라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관민의 자발적인 항전과 막대한 희생은 미국 등 연합국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전시의 어려운 형편에도 소액이나마 정부가 발행한 구국공채의 구매에 힘을 보탰으며, 이 대열에는 해외의 화교들도 적극 동참하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화교들이 공채를 구매하기 위해 은행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이 미국 파라마운트사의 뉴스영화로 제작되어 미국 등 연합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중국관민의 견결한 항전과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전시외교는 마침내 미국 등 열강으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미국 등 연합국은 침략국 일본의 세력팽창을 저지할 수 있는 안전판으로서 중국의 역량과 역할을 신뢰하였으며, 막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반파시스트전쟁에서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마침내 항전의 최종 승리를 획득할 수 있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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