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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소비에트 변방 기행
유럽과 소비에트 변방 기행
  • 최승우
  • 승인 2022.06.17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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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지음 | 컬처룩 | 348쪽

구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은 유럽과는 다른 풍광과 문화적 다양성이 있다. 전성기 소련의 도시를 그대로 보존한 듯한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이국적인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에 이르기까지 나라별로, 도시별로 문화나 언어, 민족 등이 참으로 다양해 한때 하나의 나라였다고 상상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 구소련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코카서스 지역의 조지아, 동슬라브의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변방일 뿐 아니라 주변 유럽 강대국의 영향하에서 화려함과 상처가 교차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남긴 곳이다.

조지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여행하면서 그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본 [유럽과 소비에트 변방 기행: 조지아ㆍ우크라이나ㆍ벨라루스]가 출간되었다. 조지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 이야기가 얽힌 신비의 땅이다. 유럽인의 조상인 코카서스인의 발상지이자 유럽 음식의 대명사인 와인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면서도 지켜온 독특한 문화와 음식,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독특한 경관을 이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지금은 변방이지만 우크라이나는 동슬라브 문명의 발상지였다. 동슬라브 지역 최초의 왕국인 키예프 루스가 이곳에서 수백 년 동안 번영을 누렸고, 그때의 화려한 유적은 지금도 키이우 방문자를 경탄케 한다. 르비우나 오데사에서는 이곳을 거쳐 간 다양한 주변 제국의 흔적이 뒤섞여 다른 곳에서 체험할 수 없는 독특한 문화와 풍광이 방문자를 맞이한다. 벨라루스는 냉전기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수도 민스크에 가면 소련 전성기 도시의 모습이 타임캡슐처럼 보존되어 있다. 벨라루스는 ≪론리 플래닛≫에서 꼭 가 보아야 할 나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들 지역에 얽힌 역사문화적 배경과 사회상 등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유럽은 수백 년간 전 세계 곳곳을 지배하는 중심지였지만 유럽 내에도 이 지역들처럼 소외되고 억압받은 ‘변방’은 존재했다. 중세 시절에도, 소련 시절에도 동슬라브 지역에는 중심지와 주변부 간의 냉혹한 권력 관계는 엄연히 있었고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독립 후 소련의 잔재와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 유럽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전개했으나 그 과정에서 러시아의 침략으로 좌절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에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여건이면서도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소련의 기억을 국가 통합과 미래상과 연계하는 상반된 길을 선택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아마 강대국 간의 국제 정치 역학에서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여파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는 다른 동슬라브 국가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의 내용은 2020년 팬데믹 이전의 여행 기록이다. 시간이 흘러 이 지역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해도 이전과 같은 체험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들 지역이 오랜 기간 강대국 사이에서 억압받아 온 역사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목격한 아름다움을 안타까움과 애잔함으로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들 지역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다채로운 사진은 낯설지만 아름다운 풍경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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