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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노무현 정부의 장관정책을 논한다
전문가 진단: 노무현 정부의 장관정책을 논한다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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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뒤집기용 개각 … 역효과 만만치 않을 듯

노무현 정부가 5개의 부처를 개각했다. 코드인사로 특징지어지는 현 정부의 장관 등용과정에 대해 말들이 무성하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측면에서 구조적 문제를 들여보려는 시도는 없었다. 교수신문은 참여정부 이후 장관 등용의 여러 가지 측면들을 전문가들과 함께 짚어봄으로써, 과연 우리시대 장관의 위상과 역할, 임무와 책임 등에 대해 심도있는 성찰을 하고자 한다.

새해 벽두에 단행한 참여 정부의 개각에 대해 비난성 여론이 일고 있다. 심지어 집권여당과 대통령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등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참여정부의 인사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코드인사’다. 여기엔 장관직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그대로 담겨있다. 서울 사립대의 한 정치학 교수는 “대통령제 국가는 코드인사가 당연한 것이며, 그에 따른 성과와 책임은 대통령이 지기 때문에 임명을 놓고 과열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집권당이나 국민 여론은 참고사항이지, 대통령의 판단이 그것과 다르다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는 의견이다. 사실 이것이 그동안 코드인사를 합리화해온 논리다.

문제는 현재의 담론구조가 ‘코드’라는 겉모습에 대해 왈가왈부하다 묻혀버리는 비효율적 구조라는 것이다.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코드라는 명분 하에 ‘정실인사’, ‘파당인사’가 이뤄지고 있다. 코드를 맞추다보니 정동영 자리에 이종석이 오고,  김근태 자리에 유시민이 가는 식의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돌려막기식 인사가 이뤄지고 있음도 지적될 만하다.

이렇듯 한정된 인력풀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이심전심’의 의사결정에 따른 업무 추진력은 높아지더라도 권력의 대외적 ‘정당성’과 ‘대표성’은 제대로 획득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바로 ‘코드인사’의 본질로 보인다. 

편협한 코드인사, 득보다 실이 더 커

한국인사행정학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백종섭 대전대 교수는 “장관직은 해당부처에 대한 전문성과 리더십이 필수”인데도 불구하고 “참여정부의 인선은 어떤 때는 능력을, 어떤 때는 코드를 강조해 안타깝다”고 전한다. 이어 백 교수는 “사회와 국가의 큰 흐름을 고려할 수 있는 종합적 식견을 갖춘 인물이 장관직을 수행해야 하는데, 편협한 코드인사가 결국 현 정권에 득보다 실을 안긴 것 같다”고 말한다. 김광웅 서울대 교수(행정철학)는 “국정운영의 경험에서 호흡이 맞는 인물이 오히려 낫겠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라고 하면서도 “같은 성향의 인물만 너무 고집하다 보면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다”라며 우려한다. 전체적인 시각보다는 한 집단의 사고만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처음부터 제식구 챙기기를 한 건 아니다. 초기에는 인사추천위원회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고건 前 국무총리, 이헌재 前 경제부총리, 진대제 정통부장관 등을 기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개각에서는 완벽한 코드로 돌아섰다는 것이 참여정부를 지켜봐온 전문가들의 평가다. 참여정부는 또한 주류보다는 소수·비주류 인물을 중심으로 ‘인선’을 해왔다. 후반기 들어 더욱 뚜렷해지는 이런 경향은 현 정부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비주류’와 ‘소수자’에서 찾고 있다는 관측도 낳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고도의 계산이 깔린 인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형준 국민대 교수(비교정치)는 “현 정권이 지난 3년간 퍼포먼스가 약했기 때문에 정치인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해서 뭔가를 남기려는 욕구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하며 “이번 개각은 통일문제, 대연정 사태의 수습과 분권형 개각, 그리고 사학법의 희석화 등 종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개각을 진단했다.

이런 지적들이 나옴에 따라 “그렇다면 대통령의 스타일이나 정국타개 등에서 파생되지 않는, 장관직 자체에 내재한 고유한 위상과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정국 후반 지지율 높이기 위한 고도의 전략

지난해 중앙선관위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영종 숭실대 교수(인사행정)는 “정치적 고려에서 임명된 정무직 공무원이라도 전문성·청렴성·합리성·공정성, 정책결정에 있어서의 정치배제 능력이 갖춰져야 한다”라며 장관자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이어 김 교수는 “현 정부의 인선은 인적 자원의 한계가 있어, 옛 가신정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 국가인력개발이 아쉽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법학)는 “행정부의 핵심 구성원의 인사권은 국민 의식을 배려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인선절차를 제대로 밟지 못해 진정한 의미에서 헌법정신을 담지 못했다”며 “이번 개각의 경우, 비판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인사의 균형성·형평성·합리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합법적인 임명권 행사이긴 하지만, 설득의 과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관의 임기다. 임명 후 업무를 파악하는 데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걸리는데, 효과적으로 통솔하고 정책을 지휘하기에는 현 정권을 비롯한 기존 정권의 장관교체가 너무 빈번하다는 것이다.

장관 평균재임기간 ‘2년은 돼야’

지난해 10월 유정복 국회의원(한나라당)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군정을 제외하면 노무현 정권의 평균 장관재임 기간은 12.3개월(역대 평균 10.2개월)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 밝혔던 ‘중대한 사유가 아니면 2년 이상 재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비춰볼 때, 절반 밖에 미치지 못한다. 대통령제인 미국의 경우 대부분 4년 임기를 장관과 함께 하는 것과도 대조된다. 참여정부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다시 부처개각을 진행한다고 예고한 만큼 평균 재임기간은 더욱 짧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각을 임기후반 자신감 결여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진단한 이내영 고려대 교수(정치과정)는 “관료장관직을 정치적으로 쓰게 되면 행정부의 업무가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고, 변수가 너무 많아 임기를 보장할 수 없다”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장관직이 단명하는 이유로는, 정치·경제·안보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정책이 잘 먹혀들지 않을뿐더러 정책실패의 책임이나 국정쇄신용으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아, 안정적이지 못하고 급변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또한 그 이면에는 관련 부처간의 견제와 장관 대기 중인 인물의 파워게임, 그리고 은혜를 갚거나 정권 후를 대비해 키워야 할 인물 등 정치도 관료도 아닌 채 정략만 난무하는 이유도 있으며, 기업과 시민단체의 압력 등도 있다. 

무엇보다 장관직 단명은 정책의 일관성에서 가장 큰 문제를 낳는다. 한 부처의 장으로 정책을 이끌기에는 너무 짧다는 것이다. 2004년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오성호 상명대 교수(행정학)는 예산 문제를 들어 장관 재임기간이 2년 정도는 돼야 적당하다고 본다. 오 교수는 “신임 장관이 선임자가 기획한 예산을 토대로 운영하면 맞지도 않을뿐더러, 업무파악과 동시에 예산을 기획한다는 게 쉽지 않다”라고 전한다.

참여정부 출범시절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조정관 한신대 교수(정치과정)는 “이번 개각이 정치적 상황에 따른 것으로 정권초기의 약속을 실현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하면서, “여당의 진로를 이끄는 대표인물을 장관으로 내정해, 행정부를 견제해야할 정당이 오히려 종속되고, 장관에 비해 국회의원이 지위상 낮다는 이미지를 낳았다”는 진단도 내린다.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참여정부가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결국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는 것이다. 당정분리가 아닌 정당무시인 것.

청와대의 인사추천시스템 제대로 작동 안됐다 

대통령제에서 장관은 역할보다 상징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백운선 호남대 교수(정치과정)는 “총리 중심의 국정운영을 밝혀놓고, 내각을 측근 중심으로 꾸려간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다”라고 꼬집기도 한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비교정치)는 “최근에는 시민적 차원에서 여러가지 검증을 통한 비판과 사임압력 등, 인사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과거에 비해 효과적”이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청와대의 인사추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이 낙점한 인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시스템으로 전략했다”고 비판했다.

앞으로의 활동을 지켜보자는 측도 꽤 있었다. 이번 개각을 통해 정치학자로서 정치적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과정)는 “국민적 합의와 방향을 인선에 참고하지 않더라도 인사청문회를 잘 활용하고, 성과에 대한 책임은 선거 등을 통해 나온다”고 전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이번 개각결과에 대해 비난이나 감정적 딴기걸기를 지양하고, 부처의 현안에 대한 적합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는 건전한 비판을 통해 바람직한 인사로 인도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던진다. 앞으로 있을 국회청문회에 대한 주문인데, 청문회 등을 통해 ‘도덕성’을 문제삼는 방식의 검증보다는, 앞으로의 정책추진의 철학과 방향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장관으로서 적합한지의 여부를 온 국민이 제대로 판단하게끔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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