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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풍경]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영웅소설' 읽기
[책들의풍경]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영웅소설' 읽기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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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0 17:43:36

매년 되풀이되는 무더운 여름이지만, 이번 여름 독서가들의 서재는 시원해질 것 같다. 바로 장쾌하고 속시원한 혁명영웅들의 일대기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마르크스 평전’)과 정치(‘호치민 평전’,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 문화(‘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방면에서 실패한 혁명가의 장엄한 죽음(‘트로츠키 자서전 나의 생애’)에 이르기까지, 한국 출판계에서 흥행에 성공한 ‘체 게바라 동지’의 뒤를 이으려는 인물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출판사들은 먹구름이 덮인 장마철의 하늘과 역시 먹구름이 덮인 한국 독서시장을 헤치고 나갈 ‘영웅’들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


이 ‘영웅’들의 위대한 삶은 한 권의 책에 담기는 순간 ‘영웅소설’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위인전과 전기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겠지만, 더이상 이 ‘영웅’들의 삶과 같은 투쟁방식과 해법이 통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기묘한 ‘안정성’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히 구조적․총체적으로 불안정하고 뒤틀려 있는 한국사회지만 이제는 아무도 “에라, 다 망해버려라”하고 외치지는 못한다. 불꽃같은 혁명의 꿈은 ‘경쟁력을 키워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실 논리 앞에 무력해진 가운데, 다른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은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산다. 한때 세상을 바꾸었던 이들의 삶을 사서 소비한다. 이제 이들이 읽는 것은 ‘혁명의 지침서’가 아니라 ‘영웅소설’이다.

‘혁명’을 소비하는 우리시대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이 비록 혁명의 껍데기이고 한 권의 영웅소설이라 할지라도, 꿈은 꾸지 않는 것보다 꾸는 것이 낫고 책은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좋은 법. 기왕 혁명가들의 삶을 소비할 바에는 재미있게 읽어주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이리라. 그러면, ‘영웅소설’화된 영웅들의 삶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에는 무엇인가.


첫째, 가장 정통적인 방법은 역시 영웅들의 삶에 몰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에는 서자의 아들로 태어나 공산주의자가 되고, 활동 중에 죽었다는 소문이 돌아 많은 사람들을 슬픔에 빠뜨렸다가 불사조처럼 살아나 다시 활약한, 그리하여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미국을 이겨낸 ‘호 아저씨’(호치민)의 삶을 함께 호흡할 수 있다. 아니면 “자본을 써 봤자 그것을 쓰느라고 피운 시가 값도 안 나올” 가난과 몰이해 속에 시달리면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상적 도약을 감행한 마르크스의 삶을 가슴을 조이며 읽을 수 있다. 문화대혁명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고, ‘주자파’라는 비난을 들어가면서 마침내 중국에 개혁개방 정책을 펼친 등소평의 일대기는 ‘삼국지’나 ‘수호지’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둘째, 한 걸음 물러나 이들의 삶을 인간적 시각에서 살피는 것이다. 큐비즘과 멕시코 민중의 생활을 결합시킨 혁명적 벽화를 그려낸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작품보다, 끊임없이 바람을 피워댔던 디에고 리베라 때문에 나이차가 훨씬 나는 세 번째 부인 프리다 칼로가 얼마나 괴로웠을까를 느껴보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난장판을 피우는 젊은 마르크스의 모습, “귀족과 결혼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하녀를 임신시키고, 공산주의 하에서는 누가 구두를 닦느냐는 물음에 “당신이 닦으쇼!”하고 쏘아붙이는 열혈 혁명가의 모순된 삶에는 나름의 ‘인간적’인 재미가 있다. 등소평이 하방되었을 때의 독서목록을 들여다보거나, 감방 안에서 독서를 하며 “정말 기분이 좋아. 나는 여기에 앉아 일하고 있고, 그래서 아무도 나를 체포할 수 없다는 확신이 완벽하게 들기 때문이지”라고 말하는 트로츠키의 여유를 바라보는 것은, 감옥에 들어가면서 “공부하러 간다”고 말하던 7, 80년대 운동권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세째, 인간관계들을 통해 책을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호치민 평전’을 쓴 찰스 펜은 미 정보국(CIA)의 전신인 OSS에 근무하면서 호치민 주석과 직접 접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베트남의 지도자가 미국인 정보부원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는지 바라보는 것, 또한 등소평의 세째딸 등용이 철저히 딸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은 어떠한지, 제국주의 국가였던 프랑스의 문호 르 클레지오가 식민지의 예술가였던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에 대해 느끼고 쓰는 방식은 무엇일지를 관찰하는 것은 또다른 방식의 재미이다. 폭풍같은 변화와 혁명의 시대에 저명인물들은 어떻게 얽혀있었는지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호치민과 프랑스․소련의 공산주의자들, 트로츠키와 리베라-칼로 부부의 아슬아슬한 삼각관계 같은 것들은 그들을 둘러싼 신비로운 아우라를 벗겨내기도 하고 더 강화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들을 통해 현재의 우리나라 ‘운동권 정서’를 짚어보는 씁쓸한 재미가 있을 수 있다. 이제 무턱대고 ‘타도하라’고 외칠 수 없는 시기, 운동은 세계혁명의 위대한 꿈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 되었다. 자본은 생활 구석구석 침투해 있고 전복의 꿈은 대안이 없고 파괴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지금, 갈 데 없는 희망은 과거의 위대한 성공들의 순간에 돌아가 침잠한다. “고독하고, 도전적이며, 공격적이고, 철저히 개인주의적”이었던 디에고의 혁명과 같은 예술이 지금도 가능하다는 꿈을 꾸어볼 수 있다. 사실, ‘영웅소설’로서의 평전들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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