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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모방, 그리고 경험의 길
사색과 모방, 그리고 경험의 길
  • 양상훈 상명대
  • 승인 2006.01.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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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등정기

▲4000m 지점에서 바라본 킬리만자로 정상으로 가는 길은 자연이 만든 예술품이었다. 무거운 가방을 머리에 이고 가는 고마운 셀퍼들의 모습과 함께. ©

"킬리만자로는 높이가 5895m가 되는 눈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누가예 누가이’ 즉, 신의 집이라고 불린다. 그 서쪽 봉우리 정상에는 얼어 붙은 한 마리의 표범의 시체가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가? 그런데, 아무도 그것에 대하여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킬리만자로의 눈(헤밍웨이-박정수 번역)에 나오는 말이다 .


‘누가예 누가이’ 즉 신의 집으로,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잡으러 아프리카로 아프리카로 향하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05년 12월 5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원정대원(대장 엄홍길)은 3일 밤낮을 비행기와 차량으로 이동하여 3일만에 킬리만자로 입구인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했다.


원정대원은 장애인 10명, 멘토 10명, 제작진 14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장애인 대원중에는 2003년 7월 플랫폼에서 어린아이를 구하는 도중 열차에 치어 다리를 절단하여 우리에게 아름다운 철도원으로 더욱 유명한 김행균(45)씨, 세계적인 장애인 마라토너 홍석만(30), 문정훈(27)씨, 작가가 꿈인 청각장애인 윤석화(25)씨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소설가 박범신(60), 오세훈 변호사(46),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 가수 안치환(40) 등으로 구성된 멘토들이 하나가 되어 꿈에도 그리던 킬리만자로 입구에서 우리는 세계 8.000m급 15좌등을 성공한 엄홍길 대장과 박범신 선생의 주문으로 산신령(?)에게 무사귀환을 비는 의식을 하면서 우리들은 부풀었던 가슴을 여미고 산에 대한 겸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 입구(해발1,800m)는 신의 산답게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듯 했다.


3일동안 열림 우림 지역과 수목 한계선을 넘으면서 나무가 없어지고 더 이상 물이 없는 Last water point 지역을 통과하면서 대원들의 표정에는 오히려 정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84m에 이르는 킬리만자로 산줄기에서 만난 소떼. 소들은 주민들의 살림의 밑천이요, 중요한 일용할 양식이다. ©

출발할 때 호롬보 산장(3,720m)까지만 가도 대성공이라고 전의를 다질 때와는 다르게 장애인 10명을 포함한 34명의 대원들은 의학적으로도 알 수 없다는 고산증세를 극복하며 호롬보 산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엄홍길 대장조차 불가능하다며 대원들에게 더 이상 산행은 목숨이 위태롭다며 설득해보지만 그럴수록 장애인 대원들의 정상에 대한 의지는 더욱 강해 보였다.


그들은 이미 장애인이 아니라 마사이족의 전사 같았다.


결국 전날 고소를 호소하며 대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몇몇 대원을 제외한 전사(?)들은 정상의 최종 기착지인 키보(4700m)로 향했다.


그러나 킬리만자로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등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숨쉬기조차 힘든 키보산장에 도착하자마자 대원들과 스텝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산증세를 호소하며 하나둘씩 내려가야만 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내려가야만 하는 대원과  서너시간 후에 정상을 향해 도전하는 대원 모두 안타까움의 포옹을 해야만 했다.  고소증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오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 12일 밤 11시 40분 해발4,700m 킬리만자로 마지막 관문인 키보산장에서 24명의 전사(?)들은 세계를 주름잡았던 징기스칸의 후예처럼 엄홍길 대장의 진격 앞으로 명령에 살을 저미는 칼날같은 바람을 뚫고 정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계획에 없던 산행이라 장애인과 멘토의 개념은 없었다. 누구든지 고소나 체력이 떨어지면 내려와야 했다.


대장과 대원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조금이라도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길게 자주 가지려는 대원과 시간이 지연될수록 위험하다는 엄 대장의 생각이 상충되면서 김행균,  한현정, 윤석화, 강경호, 한태석 장애인 대원은 마침내 정상부근 길만스 포인트(Gillman's Point 5685m)위에 당당히 섰다. 정상인 우후루픽(Uhuru Peak)이 5895m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은 정상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길만 포인트 이상 오르면 탄자니아 정부가 주는 증명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 우우루픽(5895m)에서 ©

엄대장은 왜 우리들을 재촉하며 쉴 틈 없이 올라갔을까. 하산 길의 답은 찾을 수 있었다.


킬리만자로는 화산이자 미세한 자갈 산으로 낮에는 발목이 빠질 정도로 부드러운 코스의 산이다. 그래서 딱딱하게 얼어야 하는 영하 20도씨를 웃도는 밤을 선택하여 등반해야만 하는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다.


각자가 갖가지 사연을 안고 큰 사고 없이 하산한 2006년 희망 원정대는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봉에 가서 새해 희망을 빌면서 우리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아닌 하나가 되었다.

2004년 호주 RMIT University  Doctor of Fine Art (예술학 박사)  1991년 미국 오하이오대학교 대학원 졸업 (포토커뮤니케이션 전공) 1988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개인전

2005년 “2005 세계평화 축전” 사진전 - 임진각 광장

2005년 “동티모르 건국 3주년 기념 사진전”국회의원회관 로비

2005년 대구MBC 초청 "God bless East Timor" 대구MBC 갤러리 M

2004년 중국청화대학 초청 Yang Jong Hoon 사진전

2004년  호주 RMIT 대학교 초청 개인전 - Urban Aborignals - 멜버른

2004년 5월 23일  ~ 29일 호주 RMIT 대학 초청 개인전 - Aborignals - 멜버른  2003년 5월 30일 ~ 6월 30일 동티모르정부수립 1주년 및 독립기념관 개관 기념사진전

2002년 10월 7일 ~ 12일  호주 원주민 “애브리지니족” - 후지포토살롱 - 

2001년 12월 7일 ~ 17일 “지옥훈련” - 자연사랑 포토갤러리 -

2001년 10월 7일 ~ 13일 “Horrific drill" - RMIT 갤러리 -

2001년 1월 27일 ~ 1월 31일 “소희야” - 갤러리 룩스

1997년 2월 25일 ~ 3월 5일 “볼쇼이 발레학교 이야기”

1990년 2월 12일 ~ 3월 4일 “DREAM" - ALDEN LIBRARY, ATHENS OHIO

1986년 10월 2일 ~ 8일 “SUBWAY" - 인사동 백송화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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