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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새 단장한 국립서양미술관, 일본의 서양미술 수용사를 말하다
[글로컬 오디세이] 새 단장한 국립서양미술관, 일본의 서양미술 수용사를 말하다
  • 노유니아
  • 승인 2022.06.16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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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노유니아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외부전경(왼쪽), 미술관 내부(오른쪽)모습이다. 사진=노유니아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외부전경(왼쪽), 미술관 내부(오른쪽)모습이다. 사진=노유니아

엘 그레코, 루벤스, 쿠르베, 세잔,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폴록... 이 모든 화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면? 바로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이다. 여기뿐만 아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 미술관들의 서양미술 컬렉션은 우리의 기대치를 훨씬 넘어선다. 어느 지역의 공립미술관을 가더라도 고흐나 모네 작품쯤은 기본으로 갖고 있는가 하면, 샤갈이나 장 뒤뷔페, 도미에, 밀레, 키스 해링 등, 한 작가에 집중한 미술관들도 적지 않다. 작은 지방 도시 구라시키의 오하라미술관에서 잘 선별된 인상파의 작품들을 만났을 때,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산골 다카야마의 미술관에서 영국 디자이너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티 룸」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방에 들어섰을 때의 충격은 십 수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오랫동안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의 자금력은 미술 분야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1964년에 이미 올림픽을 개최하고 고도 경제성장기를 경험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경쟁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을 짓기 시작했고, 하드웨어의 안을 채우기 위한 소프트웨어, 즉 컬렉션에 대한 투자도 치열히 했다.  

일본에서는 유독 미술사가 국학의 위치에서 대접받는다고 느끼곤 한다. 그것은 일본이 오랜 쇄국 후 근대화된 서구세계와 만났을 때 국가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미술을 이용했고, 소위 그것이 먹혔던 역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계나 과학기술로 맞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상황에서, 일본은 만국박람회를 통해 ‘우리도 당신네들과 마찬가지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 아름답고 훌륭한 예술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선전했다. 메이지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인재들을 불러 모아 최고 수준의 예술품을 만들어내도록 했고, 그것들과 함께 고미술, 불상, 공예품을 그러모아 출품했다. 그 결과 일본의 미술과 공예는 박람회에 모인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고, 자포니즘이 30년 이상 지속됐다. 

한편 일본은 서구미술의 동시적인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인상파가 그리 높게 평가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일본인들은 그들의 제자, 동료, 후원자가 됐다. 국립서양미술관의 근간이 된 마쓰가타 컬렉션의 주인이었던 마쓰가타 고지로 역시 모네의 생전에 이미 그에게서 직접 여러 점의 작품을 구입했다. 그 외에도 많지만 국립서양미술관의 앞뜰을 채우고 있는 조각 작품의 작가인 로댕과 부르델에 한해 덧붙이자면, 문예 그룹 시라카바 멤버들은 로댕과 교류하며 동시대적으로 사조를 수용했으며, 시미즈 다카시는 부르델에게 직접 사사했다. 

프랑스 정부는 2차 대전 후 마쓰가타의 컬렉션을 압수했다가 일본에 반환하면서 공공을 위한 미술관 건설을 조건으로 내세웠고, 설계는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담당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07년, 프랑스 정부는 세계 곳곳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을 묶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자 일본의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당시 국립서양미술관은 '세계유산으로 추천되기 위해서는 본국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 못했다.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상 중요문화재는 지은 지 50년이 경과한 건조물만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기준이 있는데, 당시 국립서양미술관은 48년째였기 때문이었다. 애가 탄 일본 정부는 한시라도 빨리 등록 후보에 올리기 위해 특례를 적용해, 미술관을 부랴부랴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리고 2016년, 프랑스 롱샹 순례자 성당을 비롯한 전 세계 7개국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17건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세계 여러 곳에 산재하는 특정 작가의 건축물을 묶어서 등재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국립서양미술관에 빽빽이 걸린 작품들을 볼 때마다 '이 작품들을 모두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도대체 얼마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일본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단순히 비싼 그림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그 컬렉션이 열어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부럽다.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에게 훌륭한 교육의 도구가 됨은 물론이고, 작가들에게는 영감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연구 대상이 되는 작품이 쉽게 접근 가능한 곳에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문제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기 위해 구미로의 유학을 택했다 하더라도 국내에 돌아온 뒤에는 한국미술사로 연구범위를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국에 번역돼 있는 서양미술사 입문서 중 상당수의 책들이 일본인의 저서다.

최근 국립서양미술관은 일 년 반 동안의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시에 지적받았던 것을 계기로 르 코르뷔지에가 지었던 당시에 더 가깝게 복구했고 컬렉션도 보강했다고 한다. 한일 간의 왕래가 예전처럼 자유롭게 되면 꼭 한번 가보실 것을 권한다.

 

노유니아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 

서울대에서 스페인어문학과 미술이론을 전공했고 도쿄대 문화자원학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근현대 한국과 일본의 시각문화에 관련된 글을 쓰고 옮기며 전시기획에도 관여하고 있다. 저작으로 『일본으로 떠나는 서양 미술 기행』(미래의창, 2015), 『가려진 한국, 알려진 일본』(리디북스, 2016). 『East Asian Art History in a Transnational Context』(Routledge, 2019/공저), 『일본 근대 디자인사』(소명출판, 2020/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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