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0:40 (금)
[한민의 문화등반 38] 집단주의에 대한 오해
[한민의 문화등반 38] 집단주의에 대한 오해
  • 한민
  • 승인 2022.06.15 0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민의 문화등반 38

 

한민 문화심리학자

고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했던 수업에서 한 선생님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집단주의 문화에서 학생들을 창의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집단주의 문화에서 창의성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나올 수 있는 의문이다. 질문은 개인주의 vs 집단주의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집단주의는 과연 학생들의 창의성을 억압하는가.

집단주의는 끔찍하게 악마화되어 있는 개념이다. 국내에 몇 명 없는 문화심리학자로서 집단주의 개념의 오염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행위의 준거가 개인에 있는가 내가 속한 집단에 있는가를 구분하는 단순한 기준이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고 개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개념이 된 이유는 사회진화론과 오리엔탈리즘적 사고에 기인한다.

가장 진화되고 발달한 문화는 서양이고 그 외의 지역은 미개하고 불결하며 미성숙하다는 제국주의 시대의 세계에 대한 인식 말씀이다. 제국주의 시절에서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개인주의 vs 집단주의가 서양과 동양을 비교하는 기준이 되면서 서양의 온갖 긍정적인 가치들은 개인주의에 붙고, 동양의 온갖 부정적인 가치들은 집단주의에 가서 묻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행동하기 전에 내 가족과 이웃, 공동체에 속한 이들을 한 번쯤 더 생각해 보는 집단주의가 국가와 사회의 발목을 잡고 개인의 권리와 창의성을 저해하는 원흉으로 둔갑해 있을 까닭이 없다. 

사람들이 집단주의와 가장 혼동하는 개념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개인은 없고 집단만이 존재하는, 개인은 오직 집단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2차 대전 당시의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에서 유행했던 사상이다. 36년의 일제강점기와 그 시대 교육의 영향일까 한국인들은 집단주의하면 자연스럽게 전체주의를 떠올리는 것 같지만 집단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개인주의 vs 집단주의 개념을 처음 제안한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홉스테드는 ‘개인 간 구속력’이 강한가 느슨한가를 기준으로 두 문화를 구분했다. 그가 IBM 연구에서 사용한 집단주의를 측정하기 위한 문항에는 ‘기술향상이나 새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연수 기회가 있을 것’, ‘직장에서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 등이 포함된다. 어디에도 집단주의 문화에는 개인의 기술향상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억압한다는 의미는 없다.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를 심리학으로 가져와 무수히 많은 비교문화 연구를 양산한 그리스의 심리학자 트리안디스 역시 이 개념을 ‘가족에 대한 태도’ 정도로 규정한다. 개인주의는 자신과 자신의 직계 가족(핵가족)만 돌보는 문화, 집단주의는 이른바 대가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이다. 여기에도 집단주의가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거나 전체를 위해 희생을 강요한다는 메시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집단의 목표가 우선시되거나 개인이 집단의 목표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 개인주의 문화에 비해 많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에 대한 억압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익과 가족의 이익이 부딪치면 항상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시는가. 그리고 그것이 행복이라 믿으시는가.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목표와 이익은 항상 다른 이들의 목표와 이익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때는 내 목표를 추구하고 어떤 때는 다른 이들을 위해 내 욕구를 조절해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는 능력은 개인의 양심과 적절한 가정교육, 그리고 보편적 가치에서 오는 것이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아니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 문화의 근간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적인 모든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관건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있다. 현실을 답이 없다고 규정하고 그 다음에 어떡해야 할지를 묻는 것은 옳지 못한 접근법이다. 특히나 후속 세대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라면 그들이 살아갈 현실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현실을 바로 보고 현실에서 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셔야 하지 않을까.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