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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위정척사파 아닌 ‘개벽파’를 찾아서
개화·위정척사파 아닌 ‘개벽파’를 찾아서
  • 유무수
  • 승인 2022.06.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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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개벽의 사상사』 강경석 외 10인 지음 | 창비 | 304쪽

개벽은 주체적 실천 강조하는 한국적 근대를 의미
의암의 개벽은 종교적 각성과 사회적 실천이 연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문명사적 충격에 직면하여 당시 한반도의 지식인들은 개방을 주장하는 ‘개화파’와 쇄국을 주장하는 ‘위정척사파’로 대응했다는 것이 교과서의 일반적인 가르침이었다. 이 책에서는 11명의 연구자들이 제3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는 ‘개벽파’의 계보(최성환, 최병헌, 최제우, 안창호, 한용운, 함석헌, 김수영 등)에 주목한다. 

 

박소정 성균관대 교수(한국철학과)는 ‘수운 최제우-해월 최시형-의암 손병회’의 시대로 나누어 ‘개벽’ 개념의 성립·계승·변용을 탐구했다. 

수운은 「몽중노소문답가」(1861)에서 미래의 개벽을 의미하는 ‘다시 개벽’을 언급했다. “수운은 ‘천지개벽’을 ‘다시 개벽’이라는 말로 전환함으로써 개벽을 중국에서 유래한 전통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탈바꿈했다.” 주자학에서 발전시킨 순환론적 개벽은 이 세상의 소멸을 전제로 하며 미래의 개벽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보여주지만 ‘다시 개벽’은 다시 찾아올 태평성세에 대한 전망과 기대를 내포하며 우리가 만들어나갈 미래이다. 

해월은 ‘다시 개벽’을 동학이 창도되기 전의 ‘선천개벽(先天開闢)’과 동학이 창조된 후의 세상을 의미하는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나눔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내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미래에 대한 전망과 실천 방향을 더욱 명확하게 수립했다. “선천과 구별되는 후천의 개벽이란 불가역적인 개벽으로서 선천의 도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 상황을 새로운 해법으로 개척해나가야 하는 새로운 세상이다.”   

수운과 해월에 의해 사유된 ‘개벽’을 계승한 의암의 ‘개벽’은 종교적 각성과 사회적 실천이 긴밀한 관계로 얽혀 있는 개념화로 나아갔다. 의암은 “각자의 성령과 육신을 개벽하라”라고 말하여 ‘개벽’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고, 열린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개벽’이 ‘우리가 바뀌어야’ 하고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문화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게 했다.

동학공동체의 개벽 개념은 미래에 전개될 개벽을 희망적으로 그려내고 지금 여기에서 주체적 실천을 강조한다. 박소정 교수에 의하면 “‘근대’라는 말이 아직 정착하기 전이었던 이 시절에 ‘개벽’은 ‘한국적 근대’를 의미”하였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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