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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에세이: 목숨을 건 학문
신년에세이: 목숨을 건 학문
  • 이광규 서울대
  • 승인 2006.01.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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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규·서울대 명예교수 ©
2006년 새해를 맞아 교수 여러분들에게 인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성취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는 세월을 유수와 같다고 하였으며 누구는 비호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빠른 것이 세월인가 봅니다. 빠른 시간을 이렇게 비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0대 세월은 시속 10 킬로이고 30대는 시속 30 킬로이며, 50대는 시속 50 킬로이고 70대는 시속 70 킬로라고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요사이는 아침에 일어나 시내 볼일을 보고 나면 바로 하루가 지나가 일부 일이 마치 하루를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빨리 흐르다 보니 마음은 조급하고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고 그렇습니다.

대학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정년퇴임을 한 후 그전에 읽지 못한 책이나 실컷 읽고 미처 쓰지 못한 저서나 마음 것 쓴다는 정년 초기의 계획이 이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고 세월만 보내고 있습니다. 근년에는 뒤늦게 외교통산부 산하의 재외동포재단이라는 기관에서 공직생활을 하느라 더욱 자유시간을 빼앗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확하게 출퇴근을 하여야 하고 주어진 한계 내에서 고정된 업무만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행이 학교시절 전공한 재외동포를 위한 재단에서 근무하기에 나름대로 보람은 있습니다.

학교를 떠나고 보니 학교생활, 연구생활이 얼마나 귀중하였던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강의를 준비하는 것도 즐거웠었고 연구실에서 시간 가는지 모르고 독서에 빠졌던 시간 그리고 학생들과 같이 시골에 답사 다니던 것들이 좋은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이러한 즐거움보다 실은 아쉬움이 더 많이 남습니다. 가장 아쉽고 차후에도 계속하고 싶은 것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를 다시 정리하여 큰 저서로 출판하고 구조주의에 입각하여 한국사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한 10년 동안 레비-스트로스에 심취하였다가 그의 구조주의가 추구하는 심층구조와 제가 추구하는 한국 문화의 추구 사이에 갭이 보이자 레비-스트로스에서 멀어지기 시작하고 해외 동포로 연구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물론 해외동포를 연구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재외동포를 통하여 한민족이란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에 의한 구조주의 한국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레비-스트로스를 떠난 것이 몹시 아쉽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자기 학문 영역에서 여러 이론을 소화하되 그 중 한 사람을 깊이 연구하여 그 분의 이론을 완전히 소화하고 그 분을 준거로 하여 다른 이론을 비판하는 것이 학문의 방법이라 생각하며 이것을 실천하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 놓는 것입니다.    

교수님들께서는 하루의 일과 중에 연구를 가장 으뜸으로 생각하고 가장 소중한 시간, 가장 많은 시간을 연구에 할애하여 연구하시고 주옥같은 논문과 저서를 내시기 바랍니다. 최근 황우석 교수의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자기 논문에 대하여 학문적인 양심에 비추어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을 때 출판하여야 하고 자기의 이름으로 출판된 것에 대하여는 목숨을 내걸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 학자의 도리라 생각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까지 학계를 동경하고 학자들을 옛날의 선비와 같이 양심의 보루라고 믿고 있습니다. 옛 선비들은 비리와 타협하지 않았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 목숨을 내걸고 임금님께도 간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선비 정신을 가진 것이 대학 교수라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한해는 학계에서 국민들에게 믿음과 밝은 소식을 전하는 해가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교수님들의 연구에 최선을 다하시는 시간이 되시고, 모두 건강과 가내 행복이 가득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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