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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퇴계 ‘가서’를 번역하고 출판한 이유
이퇴계 ‘가서’를 번역하고 출판한 이유
  • 이장우
  • 승인 2022.06.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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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퇴계 선생의 생활과 시_(하)

학봉이 주관하고 창설이 완성한 ‘퇴계선생언행록’
언행록과 다른 내용이 담겼어도 가서는 가치 있어

비록 가서의 내용과 다른 점이 많다고 해서, 『언행록』이 아주 무의미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퇴계 선생의 기라성 같은 제자들 중에서 학봉 선생이 그 스승의 『언행록』을 만드는데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이 학맥이 영남에서 가장 두드러진 학파가 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그렇게 됐을까?

 

고려시대의 유풍을 이어 조선 전기에도 계속되어 내려오던 “처가살이”나 “아들 딸 구분 없는 재산분배” 같은 풍속을, 친가 중심의 종법(宗法)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당시 유학자들의 과제였을 것인데, “우리 퇴계 선생 같이 훌륭한 선생님이야 말로 이러한 구습, 또는 누습(陋習)을 바꾸어 가는데 선구적인 모범을 보이셨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완전한 유교국가, 유교사회로 변화시키기를 바란 것이고, 실제로 그 뒤로 점차적으로 우리나라의 풍속에서 “처가살이” 같은 관행은 자취를 감추어 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학봉 선생이 16세기 말에 꿈꾸던 생각이 학봉경당(張興孝)-갈암(李玄逸)-창설(權斗經)로 내려가게 되면, 거의 완전하게 탈바꿈하여 정착되어 갔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어떻든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학봉 선생이 주관하던 언행록이 권창설 선생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을 우리들이 지금 접할 수 있다. 이 분은 퇴계 선생의 유촉지인, 도산의 토계 마을의 땅을 분재 받아서 그곳에서 몇 대를 살고 있던, 의성 김씨로 출가한 퇴계 선생 둘째 손녀의 후손들을 다른 데로 옮겨 가게 하고, 퇴계 선생의 종갓집을 이 마을에 다시 번듯하게 세우는 데, 앞장선 분이기도 하다.

이 일은 그 언행록에서 상정한 친가중심의 종법 실행 선구자로 본 퇴계상(退溪像)을 실제로 퇴계가 사셨던 마을에서 부흥시킨다는 상징적이요, 선언적인 의미를 구현시킨 것이다.

이런저런 사연이 얽히고설키어지면서, 학봉에서 시작돼 창설과 퇴계 후손들의 손에서 완결된 『퇴계선생언행록』의 내용은 이때 와서, 이퇴계 후손들이나, 그 제자의 후손들에게, 나아가서는 전국의 유림들에게 이퇴계 선생님 이해에 대한 유일하고, 독보적인 지침서가 되고, 퇴계 선생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형성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퇴계에 대한 독보적 지침서인 언행록이 뒤부터는 이 언행록과 어긋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권 모 교수는 바로 그러한 기준에서 “몰상식”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하여 편하게 지냈지만, 나는 그러한 상식을 깨어 보려고 하니 매우 떨린다.

다산 선생은 그의 전집 이름을 “여유당(與猶堂) 전서”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 “여유”란 말의 뜻이 무엇일까?“ 겁이 나서 벌벌 떨면서 머뭇머뭇 한다”라는 말이다. 왜 겁이 났을까? 천주교 신자로 낙인찍히면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겁이 난다는 것이다. 나도 퇴계 선생을 모독하는 “사문난적(斯文亂賊)” 소리를 들을까 겁이 난다.

어찌 되었든, 언행록은 언행록대로 매우 의미가 깊은 책이기는 하지만, 언행록의 내용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해서, 퇴계 선생이 손수 써 남기신 국보급 문화재인 이 가서의 내용을 언제까지 숨겨놓고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그 본래의 모습 그대로 정확하게 소개할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 싶다. 요즘 같이 많은 자료가 공개되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 내가 설령 언행록 내용과 좀 다른 이 가서의 내용을 본대로 번역하고, 느낀 대로 글로 써서 소개한다고 한들 어찌 비난받아야만 되겠는가. 

나는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대가 변하고, 공부하는 환경도 변하니, 어느 정도 거기에 맞추어, 새롭게 나타난 자료는 새롭게 읽고 새롭게 이해하여 나가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겁이 많이 나지만 기왕 힘들여 썼던 글들이니, 그냥 버리기도 아까워 이렇게 한 데 묶어 보았다. 언행록도 좋지만, 이 가서의 내용도 좀 차분하게 살펴보아주시고, 또 이이야기도 즐겁게 읽어보시기를 빈다. 

 

 

이장우
영남대 명예교수(중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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