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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조언: 니체의 저작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전문가 조언: 니체의 저작들,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백승영 박사
  • 승인 2006.01.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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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화 이해 필수…‘차라투스트라’는 맨 나중에

‘비극의 탄생’은 니체의 첫 철학적 저작이자 초기 사유의 결정판으로, 두 가지 중심내용을 갖고 있다.

첫째는 비극의 탄생과 종말에 관한 견해다. 즉 비극은 그리스 사상과 문화에 나타난 디오니소스적 현상이 탄생시켰으며, 이성적 낙관주의인 소크라테스주의에 의해 종말을 맞았다.

둘째는 ‘예술가-형이상학’이다. 예술가-형이상학은 인간의 삶과 세계를 미적 현상에 의해 정당화하려는 프로그램이다.

첫째 내용은 그리스문화에 대한 당대의 문헌학적 자명성이 부분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괴테-빙켈만이 형성한 독일고전주의의 그리스문화에 대한 이해와 대립적이다. 둘째 내용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구원의 형이상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두 중심내용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을 키워드로 삼아 정합적으로 연결된다. 즉 순전히 아폴론적인 것도 디오니소스적인 것도 아닌, 디오니소스적 도취감 안에서 아폴론적 형상으로 표현되는 예술양식이 인간의 삶과 세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양식이다. 그리고 이것의 최고형태가 그리스 비극인 것이다.
이런 내용이 담긴 ‘비극의 탄생’을 읽을 때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이 책은 단순한 예술철학서가 아니라, 새로운 철학과 문화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철학적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이는 저술의도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니체는 당대 유럽문화를 염세적 특징을 갖는 위기상황으로 이해했으며, 이 문화를 형성시킨 원인으로 고대 그리스 비극을 사멸시킨 소크라테스주의를 지목한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비극정신을 되살림으로써 당대 문화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는 곧 소크라테스주의에 의해 각인된 유럽의 현대를 ‘음악을 하는 소크라테스’ 형태를 띠는 문화형성 요소를 통해 극복하는 길이다.

둘째, 이 책은 ‘그리스 음악드라마’와 ‘소크라테스와 비극’,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에 나타난 1870년대 초반의 니체 사유를 총결집한 것이기에, 이 글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더불어 그리스 문화에 대한 문헌학적 이해, 특히 뮐러의 ‘그리스 문학사’와 부르트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를 숙지해야 한다.

셋째, 이 책에서 제시된 예술철학적 내용이 니체의 예술철학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 니체는 예술가-형이상학을 ‘비극의 탄생’ 이후 곧 포기해 버리며, 그것의 가치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니체의 철학적 과제인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건설 도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예술가-형이상학 대신 예술생리학을 모색한다.

하지만 예술생리학이 ‘비극의 탄생’의 키워드와 비극성 그리고 디오니소스적 현상에 대한 이해를 발전된 형태로 전개시키는 한에서, 예술생리학의 적절한 이해를 위해서 ‘비극의 탄생’에 대한 주목은 필수적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이 구체화되는 후기철학으로의 본격적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전모를 알려주는 철학서다. 이 책은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 ‘위버멘쉬’, ‘신의 죽음’ 등의 주제를 정합적으로 연결한다. 이런 사유복합체를 통해 존재론과 인식론과 도덕철학이라는 주제들이 재고찰될 뿐 아니라, 유럽의 허무적 현대성에 대한 분석과 해체, 위버멘쉬라는 미래인간의 모습 제시와 미래철학의 건설가능성을 타진하는 거대담론이 진행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아주 친근한 겉모습을 갖고 있다. 이 책의 문학적 양식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진지한 접근을 방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을 유념하는 읽기를 권한다.

첫째, 이 책은 니체철학 입문서나 문학서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니체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이 책은 오히려 니체 철학에 대한 예비적이고도 전반적인 지식을 갖춘 후에 마지막에 읽어야 할 니체 철학의 대표작이며, 많은 인내와 집중을 요하는 난해한 철학서다.

둘째, 이 책은 니체가 획기적인 철학적 전달방식을 사용한 책이다. 여기서 니체는 이론가 대신 예언가와 시인이란 가면을 쓰고 있다. 가면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은 비유, 상징, 패러디다. 따라서 이들의 의미와 맥락, 뒤에 숨어 있는 사유를 추적해가야 하는 고단한 과정이 요구된다.

셋째, 이 책은 구성 면에서도 아주 독특하다. 4부로 되어있고, 각 부는 다시 20여개의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돼있다. 그런데 각각의 이야기들은 체계를 강조하는 구성이라기보다는, 니체의 선호도에 따라 적당히 결합되고 순서 매긴 텍스트로 연결돼있다. 하지만 이야기들은 고유한 사유를 담지하면서 동시에 이 책의 핵심주제로 소급된다. 그러므로 관련없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이 숨기고 있는 주제관련 내용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 책의 가면을 벗겨내는 고단한 작업을 위해, 니체가 남겨놓은 ‘유고’와 ‘선악의 저편’을 함께 읽기를 권한다.

백승영 /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독일현대철학

필자는 레겐스부르크대에서 ‘니체의 해석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등의 저서와 니체 유고 번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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