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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두바이에서 만난 위대한 탐험가들, 이븐 바투타와 정화
[글로컬 오디세이] 두바이에서 만난 위대한 탐험가들, 이븐 바투타와 정화
  • 정진한
  • 승인 2022.06.09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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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명나라 탐험가 정화 초상화 앞에서 필자.       사진=정진한

두바이의 해변과 나란히 달리는 간선 도로의 이름은 아랍에미리트의 초대 대통령 쉐이크 자이드이다. 이 길 위로는 두바이의 중추 메트로 노선인 레드 라인과 총 37개의 정차장이 설치되어 있다. 그 중 유일하게 사람의 이름을 딴 역은 이븐 바투타 역이다. 이븐 바투타 역은 세계 최대 테마 쇼핑센터인 이븐 바투타 몰의 푸드 코트와 연결되고 거기서 다시 대형 최고급 호텔인 이븐 바투타 게이트 호텔로 들어갈 수 있다. 두바이 정부 소유의 나킬(Nakheel)사는 이 공간 전체의 주인공으로 아랍에미리트가 배출한 영웅이나 두바이를 스쳐간 쟁쟁한 인물들 대신 이븐 바투타를 낙점했다.

이븐 바투타는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마르코 폴로와 쌍벽을 이루는 중세 최고의 여행가다. 그는 1325년 지중해와 대서양,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종횡으로 잇는 지브롤터 해협 인근의 탄자에서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난 이래 장장 30년간이나 동으로는 중국과 필리핀, 북으로는 스페인과 러시아, 남으로는 탄자니아와 말리까지 세 대륙을 주유했다. 그 와중에 네 차례 이상 아라비아반도를 드나들었지만, 아랍에미리트는 갈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킬사는 1.4km 길이의 이 거대한 문화 공간으로 전 세계인을 초청할 호스트로 이븐 바투타를 모셨다. 이븐 바투타 몰은 그의 여로를 따라 동에서 서로 실제 지형 순서에 맞춰 6개의 구역, 즉 중국, 페르시아, 인도, 이집트, 튀니지, 안달루스 관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관은 지역별로 이슬람 문명이 배출한 세계적인 인물과 기물들이 절묘하게 배치했다. 예를 들어, 인도관에는 중세 로봇 기술의 정수인 코끼리 형태의 자동 물시계와 무굴 제국의 세계문화유산인 타지마할이, 안달루스 몰에는 인류 최초로 비행사 압바스 빈 피르나스와 알함브라 궁전의 명물 사자의 분수 등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중국관의 중앙은 중국해양사에서 독보적 기록을 남긴 명나라 제독 정화의 함선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고 이를 동쪽 벽에 걸린 초상화 속의 정화가 내려다보고 있다.

운남성에서 마삼보라는 본명을 가진 색목인계 무슬림으로 태어난 정화는 어려서 주원장의 군에게 붙잡혀 환관이 되었다. 하지만 훗날 영락제의 신임을 얻어 정(鄭)씨 성을 하사받고 환관의 수장인 태감까지 진출하였다. 1405년 황명을 받아 317척의 배에 2만 8천여 명을 태운 대함대를 이끌고 출항한 정화 제독은 이후 28년간 7차례에 걸쳐 인도양 곳곳을 순양하면서 현지 왕조와 조공을 맺고 기념비와 모스크를 세웠다. 함대의 모선은 근 한 세기 뒤의 콜럼버스나 바스코 다 가마보다 적재량이 수십 배나 커서, 귀환할 때면 타조나 기린과 같은 동물을 비롯한 이국의 물산을 싣고 돌아왔다. 함대는 당시 무슬림들이 주름잡던 동남아시아에서 인도와 스리랑카 너머 아라비아반도와 케냐까지 순항했고 일부는 정화를 대신해 메카를 순례했다. 이 곳에서 중국인들과 무슬림들은 세계사에서 독보적인 항행을 주도한 중국인 무슬림을 마주하며 자부심이 샘솟고 서로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

두바이 동편의 토후국 샤르자의 해변에는 이슬람문명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유럽인들의 관광버스가 줄기차게 드나드는 이곳에는 이슬람 문명의 정수로 손꼽히는 유물들과 나란히 이슬람의 과학기술 1천년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과 인물을 정리한 연표가 게시되어 있다. 이 표에서 가장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인물은 역시 정화다. 박물관은 아랍에미리트가 배출한 세계적 항해가 이븐 마지드가 아닌 중국인 정화를 전면에 내세워 동서양의 각지에서 온 관람객들을 놀래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 속에는 세계인이라고 내세울 만한 인물이 없을까? 신라에는 동아시아에서 천축을 돌아본 구법승들 중 최초로 이슬람권을 방문한 기록을 남긴 혜초 스님이 있다. 그는 인도에서 서쪽으로 발길을 돌려 당시 스페인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점령한 무슬림들을 이란에서 만났다. 그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의 유일한 잔간본은 동서문명교류의 핵심인 신장 위구르의 돈황에서 잠자고 있다가, 프랑스인 펠리오에 의해 파리까지 건너갔다. 고려 출신인 라마단은 선친이 이미 무슬림으로 개종했고, 본인은 원나라의 공직에 올랐다. 중국 서남단 광서성의 다루가치로 봉직하던 그는 사후부터 오늘날까지 광저우의 무슬림 묘역에서 무슬림 형제들과 잠자고 있다. 또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에서 서른여 무슬림 저자들은 우리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신라에 도착한 무슬림들이 그 자연과 풍속에 만족하여 결코 떠나지 않았다고 증언했고, 고려의 비단이 인도에서도 인기라고 전했다. 우리도 고유의 역사적 자산을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혜초 박물관과 라마단 몰의 무슬림들이 전세계인들을 초청할 날을 기다려 본다.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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