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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생 마이너 역정…“권위 몰락만 목격한” 46년생
58년생 마이너 역정…“권위 몰락만 목격한” 46년생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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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별로 풀어낸 개띠 교수들의 사연

개띠 교수 중 가장 원로는 22년생이다. 학술원 홈페이지에서 그 회원목록만 보더라도 활동이 왕성함을 알 수 있다. 임원택, 최병희 서울대 명예교수, 여석기, 조성식 고려대 명예교수, 윤세원 선문대 박물관장 등이 22년 개띠이고, 박영식 광운대 총장, 김동기 고려대 명예교수는 34년 개띠다.

그러나 대학에서 한창 활동중인 개띠 교수들은 46년, 58년, 70년생. 이들은 ‘개띠’라는 이유로 하나로 묶일지는 몰라도, 3세대가 겪어온 세월의 격차는 엄청나다. 병술년을 맞아 3세대에 걸친 개띠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58년 개띠’는 개띠 중에서도 유명하다. 이남인 서울대(현상학), 정진상·지승종 경상대(사회학), 홍원식 계명대(철학), 이봉재 서울산업대(과학철학), 신승환 가톨릭대(철학), 김진석 인하대(철학), 김명인 인하대(국문학) 교수 등 현재 학계 중심에서 학문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이들이 많다.

58년생은 베이비붐 세대로 “개떼 같이” 많아, 초등학교 때는 한반에 90명이 넘을 정도였다. 문화적 혜택이라곤 만화방을 드나드는 게 전부였고 TV도 전파상 앞에 서서 어깨너머로 봤던 세대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박정희 대통령 아들 박지만 덕을 본다”라는 소문 속에서 입학시험 없이 학교에 들어간 첫 평준화세대. 또한 박정희 정부가 ‘기술입국’이라 하여 금오기계, 부산기계, 한독기계공고를 만들어 무상교육을 시켰는데 58년생이 그 첫 대상이다.

이때 중학교에서 1등을 했던 58년 수재들은 공고로 차출돼 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핵심세력을 구성했으며, 민주노총의 리더그룹을 형성하기도 했다. 58년생은 유신 말기 가장 엄혹한 시기 대학을 다닌 터라 술로 세월을 보내 몸을 망가뜨린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정성진 경상대 교수는 그래서 “학창시절을 되돌이켜 보고 싶지도 않다”라고 할 정도다.

58년 개띠들의 ‘마이너’적인 삶

▲왼쪽부터 김명인 인하대 교수, 정진상 경상대 교수 ©
흔히 개띠는 ‘냉소적’, ‘비판적’, ‘고집이 센’ 성격이라 하는데, 그래선지 현재 학계에서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 톡톡히 그 몫을 감당해내고 있다. 소설가 은희경이 ‘마이너리그’라는 장편소설에서 58년 개띠들을 ‘마이너(Minor)’로 그렸듯이 이들은 어떤 면에서 ‘마이너’의 삶을 살고 있다. 출신 고등학교로 등급을 매기는 한국사회에서 고등학교 연줄 덕을 볼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격동의 세월 속에 항상 변혁세력으로서 마이너였고, 일반인들의 경우 IMF 때 정리해고 대상 1순위였다. 대학사회에선 유독 58년생 교수가 적은데, 58년 교수들은 “우리가 군대 말년이었을 때 그리고 학위받기 직전에 대학에서 교수를 대거 충원하는 바람에 공부 열심히 했던 동년배들 중 대학에 자리잡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회고한다. 

▲왼쪽부터 김인환 고려대 교수, 조병한 서강대 교수 ©
‘46년 개띠’는 근대화의 초입부터 세계화시기까지 격동의 한국사회를 온몸으로 버텨냈던 이들이다. 경제개발계획이 63년에 시작됐으니 대학 전에는 농촌사회에서 살았다. 대학시절 이후부터 이들은 근대화의 중심에서 70~80년대의 모든 일들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자 또 다시 ‘탈근대’라는 화두를 반강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됐던 세대다. 김인환 고려대(국문학), 정해창 한국학중앙연구원(철학), 이성규 서울대(고대사), 조병한 서강대(역사학), 박삼옥 서울대(지리학), 박한제 서울대 교수(동양사) 등이 46년 개띠다.

이들은 전근대(농업사회)-근대-탈근대 3단계를 몸소 체험했던 “매우 혼란스러운 세대”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조병한 교수는 “일생의 기억이 기존 권위가 무너지는 과정만 목격했던 것 같다”라며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뒤죽박죽 되어있던 자기세대의 정체성을 짚는다. 이들은 또한 “젊었을 때 품었던 뜻을 실행해보기도 전에 벌써 근대를 정리해야 한다니 당황스럽다”라는 심정도 털어놓는다.

사실 58년 개띠 교수들은 46년 개띠 교수들을 “보수적”이고 “상상력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왜냐하면 어릴적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겪었으며 생존의 문제가 시급했다보니 보수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46세대의 생각은 다르다. 정치적으론 독재시기였고 초등학교시절을 ‘반공’과 ‘반일’이념 속에서 지냈지만 반공주의가 허락한 자유주의 정치체제 속에서 70년 유신시절보다는 훨씬 더 자유로움을 만끽했던 것. 그래서 이들은 “58년보다는 자신들이 더 융통성있는 세대”라 말한다.

46년생, 가장 폭넓은 역사적 경험

또한 1964년 6·3사태 등이 있고 대학 첫 시절을 데모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내다보니 진보적인 생각들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 세대는 개띠 가운데 “가장 시야가 넓은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 협소하고 옹졸해질 수도 있을텐데, 역동적인 한국사회가 이들을 유연하게 만든 것.

70년 개띠는 두 세대에 비해 자본주의의 단맛을 확실히 본 이들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새마을운동이 이들 때부터 시작돼 지방에서조차 물질적 풍요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피살사건 당일의 기억을 “속보 때문에 만화방송을 볼 수 없던 게 충격이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46년과 58년에게는 까마득한 세대다. 대학에선 이제 막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이명원 서울디지털대(국문학), 양은경 부산대(동양고고학), 이근욱 서강대(정치학), 윤호근 연세대(미생물), 한상일 연세대(행정학), 류준경 성신여대 교수(고전산문) 등이 70년 개띠다.

그러나 이들 역시 ‘나름’의 혼란스러움을 겪었는데, 자신들을 ‘낀 세대’로 규정한다. 대학에 들어가 중추에 있던 80년대 학번 선배들의 이념을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사회에서 형식적인 민주주의도 목격했던 터라 윗 선배들에게서도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낀세대’ 70년생, 이제 허리 펴나

▲왼쪽부터 고명철 광운대 교수, 하상일 동의대 교수 ©
고명철 광운대 교수(국문학)는 “80년대 끝물로서 선배들의 신념을 무시할 수도 없고 후배 세대들에게도 완전히 섞이지 못한 혼란스런 나날이었다”라고 기억을 더듬는다. 이들은 한마디로 근대와 탈근대 경계선상에 서있던 세대들이었던 셈이다. 현재 70년 개띠들은 사회활동의 허리역할을 맡고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문화분야 급성장에 한 몫 담당했고, 시민운동의 중추세력도 이들이다.

개띠 교수들의 새해 희망을 들어보니, 세대별로 차이가 있긴 하다. 46년 조병한 교수는 “우리 세대가 경험한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비전제시까지는 못하더라도 근대화를 완성할 우리 사회의 방향제시를 하고 싶다”라고 소망을 털어놓는다. 아직 물러나기보다는 뭔가 이뤄야 하는 세대이다. 58년 정진상 교수는 “늘 그렇듯이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소박한 바람을 말한다. 70년 고명철 교수는 “황우석 사태나 쌀개방 문제는 여전히 우리 근대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걸 방증한다”라며 “절차적 투명성부터 제대로 갖춰 나가는 한국사회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얘기한다. 3세대 모두 큰 차원에서 보자면 “근대화를 제대로 이뤄냈으면” 하는 바람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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