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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DMZ, 체험으로 치유하기…분단트라우마에서 생명적 교감으로
박제된 DMZ, 체험으로 치유하기…분단트라우마에서 생명적 교감으로
  • 박영균
  • 승인 2022.06.06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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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접경지역 기행' 전 9권 출간 화제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DMZ연구팀

다크 투어리즘적 기획의 산물…생태적 DMZ와 생명적 교감
한반도에서 평화〮치유〮생명의 길찾기…통일인문학의 구체화

지난 2022년 4월 29일,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의 DMZ 연구팀은 경인출판사에서 『DMZ 접경지역 기행』라는 제목으로 9권의 책을 출판했다. 이들 책은 독자들이 실제로 DMZ 접경지역에 가서 길을 걸으며 그곳의 다양한 자연 지리나 지질, 생태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인물 등의 자취를 향유할 수 있도록 쓴 ‘기행문(紀行文)’이다.

 

왼쪽편에 끊어진 철길이 보이고 그 옆으로 금강산과 푸르른 동해가 보인다. 고성 통일전망대.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전망대로, 여기서 금강산까지의 거리는 최단 16㎞에서 최장 25㎞이다. 2층 전망대 야외에는 망원경이 있어서 군사분계선 너머 북쪽 풍경을 자세히 볼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일출봉, 월출봉, 채하봉, 육선봉, 집선봉, 세존봉, 옥녀봉, 신선대, 관 음봉 등 금강산의 봉우리들을 볼 수 있고, 끊어진 철길과 경계 없이 푸르게 넘실대는 동해를 볼 수 있다. 사진=박영균

 

기행문은 특정 지역이나 장소들을 여행하면서 겪은 일이나 사건, 감정의 흐름들을 쓴 글이다. 이들 글은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여 동안, 10개의 시군구로 이루어진 DMZ 접경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하고, 군청 관계자나 지역사회 연구자들을 비롯해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서 이루어진 활동의 결과물이자 ‘다크 투어리즘적 기획’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DMZ 접경지역 기행』에는 여행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펼쳐지는 이야기가 있다. 말 그대로 길은 이야기가 되고 내가 만나는 장소는 정서적인 교감의 장이자 체험적 관계가 될 것이다. 그들은 항상 자기를 드러내며 내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우리는 듣지 않는다. 이미 몸이 분단과 냉전으로 코드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DMZ를 만나는 독자들은 ‘평화와 치유’를 통해 DMZ와의 생명적인 교감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소이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평강고원으로, 철원평야와 연결된 대지의 하나됨을 볼 수 있다. 철원 소이산. 철원과 연천에서는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구멍이 뚫린 현무암과 협곡, 주상절리 등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을 만든 것은 50만 년에서 13만 년 전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오리산(鴨山)의 화산폭발로, 여기서는 오리산 뿐만 아니라 백마고지, 낙타고지 등을 포함해 소이산 아래의 철원평야와 북의 평강고원이 하나의 대지로, 평야를 이루면서 연결된 장관을 볼 수 있다. 사진=박영균

 

생태적 순환성 확보의 거점·기제로서 DMZ

분단은 단순히 두 국가의 분단이 아니라 두 개의 자연적이고, 사회적이면서 경제-문화적인 생태계가 대립하면서 서로를 배척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통일은 남북 사이에서의 지리적·자연적·인간적 차원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관계들에서의 생태적 순환성을 다시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통일의 궁극적 목적은 남북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이다. 분단은 그들을 분열시키고, 대립시킬 뿐만 아니라 서로를 미워하고, 적대시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들은 불행하다. 따라서 통일은 남북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 맺기를 회복시킴으로써, 사회적 삶이 곧 자신의 가치 실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행복한 관계들의 리비도적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가진 ‘분단-냉전의 공간으로서 DMZ’는 19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이라는 국제적인 냉전이 분단과 결합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래의 DMZ는 아니다. 원래 DMZ는 ‘De-Militarized Zone’, 즉 ‘비무장지대’로, 서로 간의 충돌을 방지하고 둘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그렇기에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본래의 DMZ가 가진 ‘평화’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 즉, 분단과 냉전에 의해 왜곡되거나 박제된 DMZ 접경지역의 공간적 이미지를 해체하고, DMZ를 본래의 평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DMZ치유하기’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치유된 DMZ’를 만나는 우리는 분단트라우마를 딛고, 남북의 리비도적 흐름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갈 것이다.

 

연천 호로고루. 연천의 당포성, 은대리성과 함께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삼각 형의 대지 위에 만든 고구려의 성이다. 호로고루는 주변 지형이 표주박처럼 생겨 서 붙었다는 설과 고을을 뜻하는 ‘홀(忽)’과 성을 의미하는 ‘고루(古壘)’의 합성어 라는 설이 있다. 호로고루는 자연 절벽을 이용해 쌓은 고구려 최남단의 국경방어 사령부로, 이곳이 삼국시대 중부패권의 격전지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박영균

DMZ에 자신을 개방하기

『DMZ 접경지역 기행』이 나올 때, 함께 출판된 『DMZ 다크 투어리즘과 통일인문학의 공간치유』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책은 연구서로, 우리가 지난 5년간(4년 답사+1년 웹 구축 및 글쓰기 수정 작업)의 작업이 어떤 기획과 방법론 하에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어떤 효과들을 임상적으로 검증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DMZ 접경지역 기행』의 모체가 된 것은 2019년 12월과 2020년 2월에 출시한 여행용 애플리케이션인 ‘ROAD 人 DMZ’이다. ‘ROAD 人 DMZ’는 『DMZ 접경지역 기행』보다 더 많은 자료와 정보들을 가지고 있다. ‘ROAD 人 DMZ’에는 각각의 스폿 정보만이 아니라 같이 보기처럼 훨씬 많은 정보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DMZ 접경지역 기행』이 ‘ROAD 人 DMZ’보다 엄선된 글쓰기로, 스토리의 완성도가 훨씬 높고, 가독성도 뛰어나다. 더 깊고 풍부한 정보를 원하거나 세밀한 교차 읽기를 원하는 독자들은 양자를 상호 참조하면서 보아도 될 것이다.

 

1000미터가 넘는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 안에 아득하게 자리잡은 마을이 보인다.
양구 펀치볼. 본래 이름은 ‘돼지 해(亥)’, ‘편안할 안(安)’ 자를 쓴 ‘해안’이다. 뱀이 많았는데, 어떤 스님이 돼지를 키우라고 해서 마을이 평안해졌다는 이야기로부터 유래한 이름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미종군기자가 화채 그릇과 비슷하다고 해서 ‘펀치볼(Punch Bowl)’이라 불렀고, 이름이 바뀌었다. 지질학적으로는 차별침식의 산물로, 전체 면적은 여의도의 8배가 넘어 장관을 이룬다. 사진=박영균

또한, 『DMZ 접경지역 기행』은 고성군, 인제군, 양구군, 화천군, 철원군, 연천군, 파주시, 강화군, 김포시-옹진군을 각 단위로 하여 출판했다. 이것은 각 지역이 가진 로컬리티의 풍부성을 그 지역의 독특성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족이나 친구 단위의 여행자도, 평화-통일교육에도, 외국인들과의 답사프로그램에서도 매우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이 책을 매개로 하여 DMZ와 독자들 사이에서의 체험적 교감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DMZ의 각 장소와 여행길, 그리고 나 또는 가족이나 여행객들 사이에서 삼중의 대화를 나누면서 DMZ에 자신을 개방하려는 자세가 먼저 있어야 한다.

‘북한군28’이라는 넘버링에 ‘소위 박기철’, ‘1.21사태 무장공비’라는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파주 북한군 묘지. DMZ 전 지역 중 유일하게 ‘치유’를 위한 애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1996년 6월 조성된 묘지로, 원래는 ‘북한군‧중국군 묘지’였다. 하지만 2014년 중국군 유해가 본국으로 송환되면서 ‘북한군 묘지’가 되었다. 이곳에는 인민군만이 아니라 남파한 공작원, 수해 때 떠내려온 북측 주민 등의 유해도 있다. 북쪽을 바라보는 묘지들은 죽은 이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사진=박영균

 

박영균
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교수

정치·사회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및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코리언의 역사적 트라우마』(2012), 『생명·평화·치유의 DMZ 디지털 스토리텔링: 인문학적 통일 패러다임』(2016)(이상 공저)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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