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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33%, ‘若烹小鮮’…순리 따르는 '回黃轉綠'도
교수 33%, ‘若烹小鮮’…순리 따르는 '回黃轉綠'도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6.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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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로 본 2006년 기대와 소망

“마치 생선을 조리하듯이 마구 휘젓지 말고, 차분하게 조심조심 모든 일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12월 8일부터 14일까지 1백95명의 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2006년 한국의 정치·사회·경제 분야의 소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若烹小鮮’(32.8%)을 선정했다. ‘若烹小鮮’은 ‘노자’ 60장에 나오는 글귀로서 원문에는 ‘治大國若烹小鮮’으로 나온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두면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란 뜻이다.

남북관계·과거사규명·대학정책, 若烹小鮮 필요

2006년 한국사회는 묵지근한 자세를 요하는 일들이 많다. 남북, 한미관계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대표적인 사례. 지난 해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으로 북핵 위기가 일단락됐지만 북한인권, 위조지폐, 마약밀수를 둘러싸고 북미 간의 긴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은 주지의 사실. 이념적 갈등 회오리에 휘말리지 않으며 남북, 한미관계를 풀어가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배병일 영남대 교수(법학)는 “남·북한을 둘러싸고 국제적 상황이 너무나 가파르게 고조되고 있다”라며, “국제정세를 조심스럽게, 정확하게 파악해 국정을 운용하기를 빈다”라고 말했다.

묻혔던 진실을 드러내고 바로잡는 일에서도 ‘若烹小鮮’의 자세가 필요하다.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일제시대 친일의 역사,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 독재시대의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등 어두웠던 과거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작업에 착수하면서 커다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 이면에는 과거사 규명이 신중하게 이루어지고, 갈등이 아닌 ‘화해’로 이어지길 소망하는 분위기도 함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정치학)는 “과거사에 대해 정부는 약팽소선하듯 대처해야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내다봤다.

늘 격랑이 이는 대학가 풍경은 ‘若烹小鮮’의 원전에 꼭 들어맞는다. 교육인적자원부나 대학이나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높은 연구 성과를 내도록 새로운 제도와 수많은 규정을 개발하고 시행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지창 영남대 교수(독문학)는 “개혁의 의제설정은 정당하더라도 시행 과정에서는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결국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 © 일러스트: 이재열

교수들은 ‘순리’를 따르다 보면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혜숙 경상대 교수(사회학)는 “2005년은 정치·사회적으로 소모적인 갈등이 많았던 한 해였지만, 세부적인 차이에 연연하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큰 틀에서 순리를 따르면 2006년에는 상생과 화합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황갑연 순천대 교수(철학) 역시 “정쟁, 노사 갈등, 상하계층의 반목 등은 차별성을 긍정하면서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상식을 통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05년의 갈등이 결실로 이어지길

교수들은 초목이 겨울에는 누렇게 물들어 떨어지지만 여름이 되면 다시 푸르러지듯이 2006년은 ‘回黃轉綠’(27.7%)의 해가 되길 바랐다.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사회학)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근대화 과정에서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났던 것”이라며,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차 바람직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어차피 넘어서야 할 통일 문제라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약이 돼야 하고, 노동자와 사용자의 투쟁이 거름이 돼야 하며, 젊은층과 노년층의 반목이 전기가 돼야 한다는 것.

김진업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까지는 사회구성원 전체의 학습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학습이 이루어지고 나면 민주주의가 결국 제대로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시기를 잘 이용하면 災禍도 福利로 된다’는 의미의 ‘因禍爲福’(23.1%)이 나오기도 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2005년의 거짓과 갈등이 더 큰 이념과 희망 앞에 하나로 포용되어 나라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또, 황희경 영산대 교수(철학)는 “인간사회에서 禍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정치적 역량으로 福으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교수들은 2006년 한국사회는 ‘아무리 하찮은 사람에게도 배울 만 한 지혜가 있다’는 ‘老馬之智’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임재영 인제대 교수(나노공학)는 “국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정치인·언론인, 직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나눌 줄 아는 경제인, 학생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교육인들이 이끌어 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는 “사회 주변부에 밀려 있는 외국인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 병역 거부자와 같은 평화 활동가에게 단결과 애타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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