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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천국’ 대한민국 정부의 환경 감수성
‘쓰레기 천국’ 대한민국 정부의 환경 감수성
  • 안상준
  • 승인 2022.06.0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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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안상준 논설위원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논설위원

역사의 아이러니다. 산업화는 인류의 물질생활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사회적 생존의 평등을 실현하는 토대였다. 그러나 인류는 과잉생산 과잉소비의 덫에 빠졌고, 자연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는 지구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 썩지 않는 재료 플라스틱은 생활의 총아로 등장하였지만, 이제는 인류의 악당으로 취급받는다.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까지 단 100초만 남았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자원 절약과 재활용이다. 플라스틱 일회용품 줄이기와 재활용 운동 및 궁극적으로 퇴출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이제 세계인의 공통인식에 도달했고, 각국 정부는 이제 맞춰 갖가지 정책을 시행한다. 

그 대표적 정책이 바로 ‘일회용품 보증금제도’다. 재활용 라벨이 붙어 있는 일회용 컵으로 음료 구매 시 소비자가 보증금을 지불하고, 나중에 반납하면 돌려받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03년에 도입되었으나, 업체의 ‘미반환 보증금’ 편법 사용 등 미숙한 제도운영으로 2008년 폐지되었다. 

하지만 제도 폐지 이후 국내 일회용컵 사용량은 급격히 증가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플라스틱 일회용품 1인당 사용량이 세계 3위다. 생활의 편리성과 위생을 고려하여 한국인의 일회용품 사용은 유별나다. 코로나19 감염병은 이런 추세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정부는 2020년 ‘자원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다시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개정 당시 회수율이 높아지고 재활용이 촉진되면 일회용 컵을 소각했을 때와 비교해서 온실가스를 66% 이상 줄일 수 있고, 연간 445억 원 이상의 편익이 생기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시행기준일(2022. 6. 10) 3주를 앞두고 새 정부의 환경부는 제도 시행을 올해 연말로 유예했다. 

표면상의 이유는 가맹점주들의 반발이다. “보증금제의 친환경적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업체들은 사실 준비된 게 없다”는 설명은 어이가 없다. 재시행하기까지 14년, 법 개정 후 2년이 지났건만 준비된 게 없단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나 하나?

환경부의 이해 당사자 간 조정 능력이 여론의 질타를 받지만, 무엇보다도 새 정부의 제도 시행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친기업적 정책을 강조하는 새 정부의 기조를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이 제도는 2년 전부터 준비돼 왔고…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은 국민은 환경정책을 포기한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한국환경회의의 비난이 참으로 신랄하게 들린다.

환경정책 후진국 대한민국의 오명을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의식이 정책을 바꿀 수 있다. 300원으로 지구의 종말을 지연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가성비 높은 정책인가? 나아가 보증금을 1천 원으로 올리면 효과가 더 확실하리라 본다.

필자는 1990년 초반 독일에서 배낭에 컵을 달고 다니는 대학생의 모습, 녹색재활용 스티커가 붙은 플라스틱 용기와 음료수병을 자전거 뒤에 싣고 마트로 향하는 주부들의 모습, ‘티백 사용 후 종이-실-가루를 분리하여 배출하는 친구’ 등등 녹색운동을 목격했다. 그들의 재활용시스템은 개인과 정부의 혼연일체로 가능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재활용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반환하고 회수하여 재활용하는 사회시스템을 보고 넋 놓고 부러워했다.

자원재활용과 신재생에너지 분야 등 녹색선진국 독일의 시민은 별종이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려는 국민적 합의를 실행하는 중이다.

힘없는 가맹점주들의 불만을 유예의 구실로 삼지 않길 바란다. 지구 종말을 늦추려는 대의를 경제논리로 외면하는 건 다음 세대에게 저지르는 우리 세대의 만행이다. 적어도 우리 모두가 참여해 더 나은 지구 환경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야 하지 않을까?

안상준 논설위원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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